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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타인을 이해한다는 (불)가능성 앞에서, <레슨> 김경래 감독
문주화(영화평론가) 사진 최성열 2025-07-03

<레슨>은 김경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자 첫 극장 개봉 영화다. 영화를 시작하고 20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극장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영화는 타인을 가르치고 배우는 ‘레슨’이라는 행위가 빚어내는 관계의 복잡하고 미세한 변화를 탐색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불)가능성 앞에 선 감독은, 그럼에도 지금은 동료들과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마냥 즐겁다고 고백해왔다.

- 세 번째 장편영화 <레슨>으로 첫 극장 개봉을 하게 되었다.

앞선 두편의 장편, <레슨 중>과 <올 겨울에 찍을 영화>는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다. <레슨>은 극장 개봉을 하게 된 첫 영화이면서, 유일하게 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출한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시나리오 공모에서 채택되어 제작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물리적으로 꽤 오랜 시간이지만 개인적으로 단단해진 시기에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 올해 초 이종수 감독의 <부모 바보>를 시작으로, 최근 박중하 감독의 <잔챙이>가 자체 배급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자체 배급은 분명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형이자 동료인 백재호 감독(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이 예전부터 자체 배급을 하고, 배급 교육까지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존 시스템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봐왔다. 자체 배급이 가지는 한계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꽤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 앞선 두편의 장편과 <레슨>을 비교해보면 어떤 변곡점을 지나온 것 같나.

분명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힘든 부분들을 스스로 극복해온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레슨>은 기본에 충실한 영화다. 과감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처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 <레슨>은 주인공 경민(정승민)이 겪는 관계의 미세한 변화를 담고 있다. 이런 소재에 이끌리게 된 이유가 있다면.

아마 외동으로 태어나서 그런 것 같다. 부모와의 관계를 제외하고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모든 관계가 나에게는 처음 맞닥뜨리는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기도 한 것 같다. 그런 나의 무의식적 습관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인물의 심리묘사와 느린 호흡은 이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속도감을 어떻게 찾게 되었나.

심리묘사는 함께 각본을 쓴 정승민 작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말 섬세한 사람이다. 평소에도 사유를 길게 하는 유형이라서, 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영화의 호흡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전혀 느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촬영본을 확인해보니 느리긴 하더라.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현장에서 연기 디렉션을 할 때 천천히 말해달라고 계속해서 주문했다. 연출자로서의 감에 충실했던 것 같다.

- 영화는 주인공 경민의 꿈으로 시작하고, 오래된 연인인 선희(전한나)와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한 플래시백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경민은 꿈과 기억 사이를 오가는, 말하자면 현실에는 정착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영화의 구조를 무한으로 순환하는 루프의 형태로 만들고 싶었다. 경민이 영화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정착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구조에 착안하게 된 계기는 우리는 모두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을 자는 패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돌고 돈다. 오프닝 시퀀스의 형상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경민이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소외되는 패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 외국어와 피아노를 각각 가르치고 배우는 ‘개인 레슨’이라는 행위는 이 영화의 주요한 플롯이다. 모르는 것을 더 알고 싶은 욕망은 인물들을 연결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기술적 습득을 가능케 하는 ‘레슨’과 달리 영화는 타인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서로를 완전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대상을 완전하게 알게 되는 순간이 과연 존재할까?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설령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완벽하게 안다고 했을지라도, 그 관계는 그 순간부터 고정되어 썩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계속되는 변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안다’라는 확신보다 ‘알아간다’라는 진행형으로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 경민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영원(이유하)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를 본 분들이 그 얘기를 많이 하신다. 영원의 캐릭터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쉽게 파악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영원의 캐릭터를 위해 설정한 로케이션들 때문에 비현실적인 감각이 전달된 것 같다.

- 영화는 관계 맺음에서 오는 ‘간격’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경민은 책상을 사이에 둔 채로 영어를 가르치고, 영원과는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선희와는 멀어지고 싶어 한다.

우리가 맺고 있는 각각의 관계들은 미세하게 간격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원하는 간격을 정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대에게 끌려가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를 찾아간다. 경민은 아마도 선희와 영원의 중간 어디쯤의 간격을 원했지만, 그 간격의 명확한 좌표는 본인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관심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때로는 인정을 바라고 영화를 만들 때도 있었다.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즐겁게 찍는 행위 자체가 원동력이 된다. 이 또한 언젠가 바뀌겠지만 지금은 일단 내가 마주한 이 변화를 즐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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