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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풀을 석방하라, <풀> 이수정 감독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최성열 2025-06-19

<>을 한줄로 ‘대마초 비범죄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축약하려니 그로는 부족하다 싶다. 전작 <재춘언니>에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을 집요하게 좇았던 이수정 감독의 <>은 대마초의 생태적, 치료적 기능에 대해 전하며 비범죄화에 찬성하는 이들의 온화한 표정과 동행한다. 치열한 노동 현장을 분주하게 따르던 그의 카메라가 아주 느리고 친절히 “안녕, 그동안 너의 이름을 선뜻 부르지 못했어”라며 풀에게 인사를 건넨다.

- 대마초가 아닌 풀이라고 영화에서 부르게 된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대마초 하면 일단 그걸 입에 올리는 것부터 터부시한다. 대마가 일년생 풀인데, 해마다 씨를 뿌려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 있는 풀이라는 게 크게 다가왔다.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 풀이 가지는 강인함, 그리고 풀은 민초를 상징하기도 하지 않나. 대마초를 다루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접근을 열어두고 싶었다.

- 비무장지대(DMZ)에서 허가받고 대마를 키우는 천호균 농부나 마당에서 대마를 키웠다는 보리씨의 인터뷰는 대마 재배가 무조건 불법인 줄 아는 사람에게는 낯선 정보다.

대마초도 산업용 헴프와 마리화나가 되는 것은 종자가 다르다. 산업용 헴프는 마약 성분이 거의 없는 대마다. 천호균 농부도 허가받고 접경지역에서 헴프를 재배한 것이다. <녹색평론>에도 “대마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고 나온다. 대마는 비료 없이 몇달 만에 5m가 쑥 자라고 탄소 흡수량이 엄청나다. 삼베 같은 섬유도 만들 수 있고, 대마 줄기로 집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마의 종류가 많고 환경이나 의약품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전부 마약류로 생각하고 금기시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 부분을 친절히 설명하고 싶었다.

- 환경을 위해 대마 농사를 짓는 천호균 농부와 환자에게 대마를 준 이유로 징역을 산 후 대안적 삶을 사는 권용현씨는 다른 줄기의 이야기다.

남북 접경지역에서 대마 농사를 짓는 천호균 선생님만으로도 다큐멘터리 한편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마초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쟁점이 될 수 있는 불법 영역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천호균 선생님과 권용현씨, 보리씨, 대마의 의학적 기능에 대해 말하는 김도씨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게 필요했다.

- 이명현 천문학 박사는 특히 의외의 등장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경험도 있고 대마초 합법화에 긍정적이셨다. 선생님을 통해 칼 세이건 얘기까지 듣게 됐다. 지식노동자 칼 세이건도 공부하고 글 쓰는 데 마리화나를 활용했다고.

- 현행법상 인터뷰이들에게 타격이 갈 수도 있기에 촬영 후 편집도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인터뷰이가 어떤 말을 한 후에는 ‘사용 여부’에 대해 재확인했는데 권용현씨나 빌스택스는 이미 형을 살고 나온 뒤라 좀 자유로웠다. 보리씨는 인터뷰 당시에는 이름도 가명으로 하고 영상을 어디까지 사용할지 판단하지 않은 상태였다. 뒤에 보면 보리씨가 누군가의 신고로 감옥에 갔다고 나온다. 이 친구는 대마는 내 마당에서 토마토랑 같이 자라고 있는 풀일 뿐이고 나는 이 풀을 좋아한다며 숨기지 않으려 했다. 지구에 해가 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다가 시골로 내려간 친구였는데, 농사를 공부하다 대마가 땅에 이로운 뿌리라는 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키운 거였다. 촬영 후 이 친구가 잡혀갔고 풀려난 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싶어 했다. 보리씨를 주인공으로 <> 2편을 촬영하고 있다.

- 보리씨를 비롯해 권용현씨 모두 경계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평온함이 느껴지더라.

경쟁에서 벗어나 흙과 식물을 가까이하는 분들이라 그런 것 같다. 도시의 자본주의 가치가 아닌 아나키즘적인 가치와 평화를 논하는 그들의 평온함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농사짓는 그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무언가 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마음이 움트고 나니 어디에라도 텃밭을 가꾸고 싶어 지난해에는 퀴어 텃밭에 참여해 생태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 오랜 세월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를 좇았다. 대마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약물중독에 대한 기획을 하다가 우연히 대마초를 알게 됐다. 공부하다 보니 뇌전증 환자 등에게 약물로서 이로운 부분이 있었고, 생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노동하기를 권하는 박정희 정권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대마초를 금지시켰다. 왜 우리에게 노동하지 않을 권리는 없을까. 좀 게으르게 살면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 대마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탄압을 받듯이 이 영화 역시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제작 과정이나 배급 과정에서 그런 어려움은 없었나.

많았다. (웃음) 심지어 영화 보면 잡혀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걸 깨고 있는 과정이다. 첫 시사를 할 때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다. (웃음) 4월20일이 세계대마의날인데 그날 시사회를 열어 대마를 석방하라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대마에 찬성하는 분 중에도 의료용 대마만 찬성할 수 있다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의료적으로 약이 되려면 마리화나에 있는 THC 성분이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약인데 CBD라는 대마의 성분은 온전한 약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CBD 100%인 수입 약품 하나만 파킨슨병환자나 뇌전증환자에게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후 치료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THC를 허용하기 위해선 마리화나를 허용할 것인지 등 세부 조항들이 필요하다. ‘대마초는 무조건 안돼’라고 하면서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약까지 포기하고 있는 거다.

- 대마초 합법화 반대측 인터뷰를 중립적으로 넣는 데 고민은 없었나.

그런 조언도 있었고,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계속 찬반으로만 다루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국 사회는 반대 여론이 강하고, 대마초에 대한 무지도 크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그 실상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 대마초에 대한 인식을 바꿨으면 하는 의도가 영화에 있다고 봐도 좋을까.

이 영화는 일방적으로 대마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를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대마는 마약’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가져보자는 거다. 무지해서 두려워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사실에 대해 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그 정도의 마음만으로 이 영화를 봐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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