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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크리스토퍼 놀란) 바꿔 말하면 카메라 이외에는 다른 장치의 힘을 빌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궁리를 짜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아날로그에 대한 애착은 각별하다. 그는 영화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로 만들어낸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일례로 <테넷>에서는 보잉 747 비행기를 실제로 폭파시킨 장면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를 찍는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고집을 직접 스크린 위에 안착시키는 것은 특수효과감독 스콧 피셔의 몫이다. 특수효과란 무엇인가. 스콧 피셔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말을 이어받아 이렇게 답한다. “카메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위한 밑 작업”이라고.
스콧 피셔는 <인셉션>(2010)을 시작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까지 <테넷>을 포함
'테넷' 스콧 피셔 특수효과감독 - 제한적으로, 가장 창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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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불확실함이 창의력을 돋운다. <인셉션>(2010), <덩케르크>(2017)에 이어 <테넷>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세 번째 협업을 한 의상감독 제프리 커랜드는 2019년 1월 처음 <테넷> 시나리오를 읽고 “시간과 장소가 불명확한 미래적 공간”을 떠올렸다.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특정해 기성복에 의지하기보다 오직 캐릭터를 생각하며 각자에게 어울리는 옷을 디자인했다.”
1970년대에 영화 의상 일을 시작해 90년대까지 우디 앨런 감독의 오랜 파트너로, 2000년대에는 <에린 브로코비치>(2000), <오션스 일레븐>(2001), <고스트버스터즈>(2016) 등의 대표작으로 커리어를 공고히 한 제프리 커랜드는 연륜에서 나오는 직관을 믿었다. 그가 본 주도자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완벽히 준비된,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마이클 케인이 분한 크로스비 경으로부터 고급 슈트를 맞출 수
'테넷' 제프리 커랜드 의상감독 - 언제, 어디서든 살 수 있는 남자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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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인도, 우크라이나, 노르웨이 등 방대한 로케이션 촬영, 첩보물, 시간을 역주행하는 인버전, 특수효과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춘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이 <테넷> 시나리오를 읽고 “기술적인 도전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다.
“시나리오는 복잡한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했고, 서사는 매우 새로우면서도 열려 있었다. 우리는 창의적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 동시에 현실적이고 믿을 만한 이야기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촬영, 미술, 특수효과, 시각특수효과 등 모든 기술 파트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게 놀란의 현장에서는 필수였다. “크리스토퍼와 일하는 게 좋다. 가슴이 흥분된 채 신선한 컨셉과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의지가 강하고, 그래서 그의 작업은 도전과 책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와 일하려
'테넷'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 - 카메라는 역방향, 연기는 순방향…과학 프로젝트 같은 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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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이 세달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부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전 회차 확대 상영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아직도 관객이 <테넷>을 보고 놀란의 세계관을 곱씹고 있는 상황에서 <씨네21>은 <테넷> 핵심 스탭들의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 제프리 커랜드 의상감독, 스콧 피셔 특수효과감독, 앤드루 잭슨 시각효과감독, 루드비그 예란손 음악감독 등 놀란 사단의 핵심 멤버 5명으로부터 들은 <테넷>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음 장부터 공개한다.
'테넷' 핵심 스탭 5인과의 인터뷰 머릿말 ①~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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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코로나19 확산 이후 극장가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개봉영화가 사라졌고 OTT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상반기에 주목할 만한 사건을 두 가지 꼽는다면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을 두고 벌어진 분쟁과 최근 수입배급사협회의 OTT 서비스 중단이있었다. 위기 상황을 겪으며 시장이 강제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진통들이다. 또 하나 지표로 삼을 만한 건 코로나19로 당장 시험대에 오른 것이 영화제라는 점이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들이 온라인 개최를 진행 중인데, 이것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시환 지자체에서 영화제를 지원하는 첫 번째 이유는 지역 홍보다. 지역 경제와 문화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한국 영화제들의 존립 기반이다. 물론 그것이 허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중요한 건 코로나19로 인해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가 왜 필요한지
[스페셜②] 코로나19 이후 극장의 변화와 OTT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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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신작 개봉이 줄줄이 밀렸고 그만큼 OTT와의 접촉면이 넓어졌다. 물론 전에 없던 것들이 갑자기 생겨났다기보다는 변화의 징후가 감지되었던 것들이 단번에 촉진된 상황이다. 이 와중에 한국영화의 면면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결론부터 말해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물론 지난해부터 제작된 것이 올해 공개되는 거지만 요 몇해 동안 규모 있는 한국 상업영화의 면면과 비교해볼 때 올해 특별히 나빠진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반적인 만듦새는 나아진 것 같다. 의미 있는 시도도 있었고, 장르적으로도 좀더 다양해진 게 아닐까 싶다.
안시환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는 게 유의미한 것 같진 않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올해 여름영화인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 등을 놓고보면 실망스럽다. 전작의 흥행에 기댄 속편들인 셈인데 다음 연작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기대감을 주는 데도 실
[스페셜①] 한국 상업영화에 떠도는 개연성이란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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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을 찍어와라. 사진반 동아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름방학 숙제로 황당한 과제를 내어준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인 네 소녀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고 고민에 빠진다. 세상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설사 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각자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친구가 1호선 전철의 종착역인 신창역까지 가보자는 제안을 하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소녀들은 길을 떠난다. 물론 그곳이 세상의 끝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소녀들도 알고 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납득 가능한 타당한 과정이라는 것을,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 소녀들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관문이다. 실현 불가능한 과제를 받아들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어떤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를 묻는 과정. 앞으로 계속 부딪치게 될 통과의례. 끝인 줄 알고 달려갔는데 도착하고 나면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미션들. 삶은 그렇게 철로 위의 열차처럼 처음 만나는 역을
'종착역' 권민표·서한솔 감독 - 네개의 눈으로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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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1882일째. 선인가구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연이어 졌고, 이들의 투쟁 경비도 바닥이 났다. 싸움을 끝낼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상황. “고공(농성)이나 한번 더 할까?”라고 무심히 뱉었지만 사실 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잠시 쉬고 돌아오라는 리더의 말에 집으로 향한 재복(이봉하)을 따라가는 <휴가>는 연극 수업에서 만난 아시아계 이주 여성의 경험담을 빌려 만든 단편 <파마>로 제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제26회 함부르크국제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이다.
2016년에 발표한 단편 <천막>에서부터 이번 영화 <휴가>까지, 그가 해고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은 8년 전. “2012년에 우연히 콜드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가 공연하는 걸 봤다. 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3년 후 그들을 직접 찾아갔다. 그전에는 그들이 만든 인터넷
'휴가' 이란희 감독 - 발로 뛰어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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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의 기다림으로 공주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려 했던 병사는 99일을 버텼다. 100일째 되는 날, 그가 공주를 떠난 것이다.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왜 병사가 떠났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100일째에도 공주와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가지 않았을까.” 임정은 감독이 <아워 미드나잇>에서 비추고 싶었던 시간이 바로 병사의 100번째 밤이다. “문제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아도, 심지어 상황이 더 안 좋아져도, 모든 순간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버티는 청춘들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건국대학교 영화과,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단편 <사랑의 무게> <인형뽑기> <새벽>을 만든 임정은 감독도 어쩌면 그런 청년이다.
앞서 만든 단편들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디포럼, 그리스 드라마국제단편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지만 언제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감독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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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의 1987년작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다. 한 남자(안성기)의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이유빈 감독이 데뷔작 <셔틀콕>(2013)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기쁜 우리 여름날>은 권태기에 접어든 오랜 연인이 어렵게 여름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다. “원래 스포일러를 담은 제목이었다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인 <기쁜 우리 젊은 날>에 영감을 받아 바뀐 것”이다.
찬희(지수)와 세영(이주연)은 불안정한 현실 때문에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20대 커플이다. 한때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찬희는 카메라 매장에서 카메라를 판다. 세영은 네일숍에서 일한다. 자신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가 세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 찬희는 세영의 마음을 돌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여행 갈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은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둘은 길 위에서 다투고, 사과하고
'기쁜 우리 여름날' 이유빈 감독 - 연애가 사치인 시대의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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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를 소망하는 인간과 살기를 염원하는 안드로이드가 하나의 육신 안에 공생한다. <인간증명> 속 혜라(문소리)의 아들은 그런 존재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 영인(장유상)을 되살려낸 혜라는, 얼마 못 가 안드로이드가 아들의 뇌 생체 조직 회로를 차단해 뇌사 상태에 이르게 했다는 깊은 의심에 빠진다.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기계의 존재는 결국 법정에 호출돼 애원하기에 이른다. “계속 산책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어요.”
김의석 감독의 <인간증명>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다. SF 앤솔러지 <SF8>의 일부로 공개된 50분 분량에서 나아가 90분 장편 버전을 공개했는데, 두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의 차이 또한 흥미롭다.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주제와 자연광을 살린 미니멀한 미장센까지, 새로운 SF에 대한 형식적 고민을 거듭한 김의석 감독과 작품의 면면을 탐색했다.
-장유상
'인간증명' 김의석 감독 - 존재의 딜레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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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지나는 기차 소리에 귀를 막곤 하던 세 소녀는 어느 날 그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출한다. 기꺼이 소음에 몸을 실은 이들은 각자짐을 싼 스타일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진 동급생 강이(방민아), 소영(한성민), 아람(심달기). 집을 떠나 고약한 여름을 보낸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보려 애쓰다 서로를 헤집어놓는다. 아직 세상도,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이들 곁에서 동행하며 쓴 듯한 사실적 각본이 섬세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연출을 만나 영화로 완성되었다.
<파수꾼>과 <우리들>이 그랬듯, 깨질듯한 아이들의 세계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태도가 빛나는 이 영화는 단편 <송한나> <애드벌룬> <서울생활> 등을 만들며 인물의 도약을 지켜봐온 이우정 감독의 첫 장편이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이 작품으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이우정 감독을 만나 강이, 소영, 아람과 함께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 다름을 드러내고 상처를 위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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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도 개막식도 없다. 오직 영화와 관객만이 존재할 뿐이다. 25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첫날 풍경은 낯설기 그지없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애초의 일정보다 2주 연기된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개최 시기를 조정했을 뿐 아니라 개·폐막식, 오픈 토크를 비롯한 일체의 야외 행사가 취소되었고 마켓이나 포럼 행사들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해외 영화 관계자 초청이나 리셉션 및 파티도 사라졌다.
하지만 부산영화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하나가 있다. 바로 극장 상영이다. 평균 300편의 영화를 2, 3회가량 상영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68개국 19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예년에 비해 현격하게 축소된 편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횟수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영화의전당에서 물리적으로 소화 가능한 최대 횟수라고 봐도 좋겠다. 21일 개막 첫날, 영화의전당은 여전히 영화제가 준비 중인 것처럼 한산하고 고요했
올해 부산영화제가 주목한 7인의 한국영화 감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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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우리가 나고 자란 공간 위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이다. 홍콩의 정신은 도서관에 꽂힌 역사서 안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홍콩 위에 발 디디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깃들어 있다.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1950년부터 2020년까지 홍콩의 다양한 이야기를 시대별로 7편의 단편에 담아낸 옴니버스영화다. 한평생 영화에 헌신해온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홍콩을 기억하고 애정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개인의 기억이자 홍콩의 역사이며 과거인 동시에 현재다. 홍콩의 전설적인 감독 7명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도한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두기봉이다. 프로듀서와 감독을 맡은 두기봉에게 <칠중주: 홍콩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매번 대답할 때마다 ‘내’가 아닌 ‘우리’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진심이 맺혀 있다.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임영동, 서극 그리고 당신까지 7명의 감독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시작된
[부산은 영화와 함께⑤] “당신의 인생에서 기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