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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타비아니 (Paolo Taviani)

1931-11-09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7

/

네티즌8

| 수상내역 1

기본정보

  • 다른 이름P. Taviani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1-11-09
  • 성별

소개

타비아니 형제는 피사 지방의 산 마니아토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2년 터울을 두고 태어났다.(비토리오는 1929년 9월 20일, 파올로는 1931년 11월 9일.) 유복한 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비토리오는 피아노, 파올로는 바이올린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는 형제를 데리고 자주 오페라를 보러 가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음악에 대한 교양은 형제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 깊은 영향을 끼친다.
고등학교 시절, 오후 수업을 빼먹고 극장에 몰래 들어갔던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을 보게 된다. 이 영화는 형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들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타비아니 형제는 피사대학에 진학하였는데 비토리오는 법률을, 파올로는 미술을 전공한다. 1950년 형제는 피사 영화 클럽에서 사회주의자 발렌티노 오르시니를 만났다. 타비아니 형제는 오르시니와 함께 1963년까지 공동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오르시니는 형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피사를 떠나 로마로 간 형제는 영화에 전력투구하며, 교대로 조감독, 스크립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겸했다. 1956년, 형제는 그들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19944년 7월 산 미니아토>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형제가 유년시절 고향에서 경험한 독일군의 학살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형제는 1959년에는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3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이탈리아는 가난하지 않다>를 찍는다. 이들 형제는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관심을 돌렸으며 1962년 오리시니와 함께 첫 장편 극영화 <불타는 남자>로 감독에 데뷔한다.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장편 극영화 시대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타비아니 형제의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과 표현주의, 그리고 브레히트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로 이후 그들의 영화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한 선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60년과 1970년대를 거치면서 타비아니 형제는 상업적인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특히 1977년작 <빠드레 빠드로네>는 깐느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과 비평가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고 타비아니 형제를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 거장으로 거듭나게 한다. <로렌조의 밤>으로 다시 깐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들은 헐리우드에서 G.W. 그리피스에 대한 오마쥬인 <굿모닝 바빌론>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