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에서 시계를 팔아 살아가는 이강생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파리에서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젊은 여인이 영화의 세 축을 형성한다. 이강생은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사간 한 여인에게 왠지 모를 연모를 품지만 그녀는 파리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파리가 대만보다 7시간이 느리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강생은 눈에 보이는 시계마다 파리의 시간으로 고쳐놓는다. 남편과 사별한 이강생의 어머니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49제에 열을 올린다. 고인이 된 남편을 위해 매일 밥을 차리는가 하면 벌레나 물고기가 남편의 환생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강생에게 시계를 산 뒤 파리로 떠난 여인은 어울릴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나날을 보낸다. 극도의 외로움은 우연히 만난 홍콩 여인에 대해 난데없는 동성애를 부추긴다. 이들 모두는 관계의 틀 안에 있지만 동시에 관계 안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거기에는 심리적, 물리적 위안을 삼기 위한 집착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강생은 파리의 시간에 집착하며, 어머니는 죽은 남편의 환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 집착은 또한 고통을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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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대만보다 7시간이 느리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강생은 눈에 보이는 시계마다 파리의 시간으로 고쳐놓는다. 남편과 사별한 이강생의 어머니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49제에 열을 올린다. 고인이 된 남편을 위해 매일 밥을 차리는가 하면 벌레나 물고기가 남편의 환생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강생에게 시계를 산 뒤 파리로 떠난 여인은 어울릴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나날을 보낸다. 극도의 외로움은 우연히 만난 홍콩 여인에 대해 난데없는 동성애를 부추긴다. 이들 모두는 관계의 틀 안에 있지만 동시에 관계 안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거기에는 심리적, 물리적 위안을 삼기 위한 집착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강생은 파리의 시간에 집착하며, 어머니는 죽은 남편의 환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 집착은 또한 고통을 재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