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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 시씨의 운명

Sissi - Schicksalsjahre einer Kaiserin Sissi - Schicksalsjahre Einer Kaiserin

1957 오스트리아,독일

드라마, 멜로·로맨스 상영시간 : 108분

감독 : 에른스트 마리쉬카

출연 : 로미 슈나이더(시씨) 칼하인츠 뵘(프란츠 요셉) more

오스트리아의 황비 시씨에 관한 3부작 중 제3부.

대공비 조피는 오스트리아 황제와 황비의 행복한 부부생활에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일에는 항상 발벗고 나선다. 요제프 황제가 정사를 돌보느라 빈에 묶여 있는 동안, 시씨는 헝가리로 간다. 그녀의 충복인 안드라시 백작의 지원으로, 시씨는 혁명적인 바티야니 백작으로부터 오스트리아의 왕권을 얻는 일을 성공한다. 그러는 사이 조피는 그녀의 아들에게 안드라시 백작이 시씨에게 마음이 있음에 대해 얘기했다고 얘기를 한다. 그러나 요제프 황제는 한마디도 믿지 않고 아내에게로 간다. 그러나 심한 폐렴에 걸린 시씨는 코르푸 섬에서 오랫동안 요양을 하게 된다. 남편과의 재회는 공식적인 행사가 된다.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된 방문은 베네치아의 마르쿠스 광장으에 화려하게 등장함으로써 황제와 황비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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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오스트리아의 인형에서 프랑스 비극의 화신’으로 불리는 로미 슈나이더 주연의 ‘시씨’ 3부작 가운데 3편이 소개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

영화는 해피엔딩을 끝을 맺고 있지만 실제 황비 시씨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황제와의 사이에 시씨는 4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녀에게 심각한 병이 있다는 진단과 함께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빼앗겼고,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궁정을 떠나 그녀가 그렇게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황제는 그녀를 매우 사랑했지만, 과도한 집무와 당시에 복잡하게 퍼져가던 전쟁으로 그녀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1857년엔 딸 소피를 잃었고, 1889년엔 아들 루돌프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면서 그녀의 불행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남편 요제프 황제마저 딴 여자와 바람이 나면서 시씨는 빈의 화려한 궁정 생활을 영원히 등지고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후 시씨는 검은색 옷만 걸치고 다닌 것으로 전해지며, 말년에는 지나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영양실조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녀는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초상화를 단 한 점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는지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시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소개하자면, 시씨는 유난히 가는 허리를 좋아해서 무리하게 허리를 조이는 페티코트를 착용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심하게 허리를 조인 나머지 페티코트에 있던 철심이 배를 찔러 피가 드레스에까지 젖어 나왔으나 너무 오랜 동안 허리를 조이고 있었기 때문에 피부에 감각을 잃은 시씨 자신은 정작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드레스 밖으로 피가 묻어난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서 시씨에게 다가갔으나 정작 자신은 배에서 피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위한 치장을 하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반나절을 다 소모했다고 하며, 머리가 긴 것을 좋아해서 검은머리를 발끝까지 길러 늘어뜨리고 다녔다고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외국으로만 떠돌던 시씨의 마지막은 역시 오스트리아는 아니었다. 1898년, 스위스 제네바 호에서 몽트뢰로 가는 증기선으로 올라타던 시씨는 24세의 한 무정부주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지고 만다. 이때도 무리하게 조인 허리의 페티코트 때문에 배의 감각을 잃어 자신이 칼에 찔린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놀라서 자신의 주위로 오는 것을 보고 “나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라고 되물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 60세... 궁정을 떠나 자유인으로 남고자 한 그녀였지만, 당시의 사회 정황에서 시씨는 퇴폐적인 군주제의 잔재로 여겨질 뿐이었다. 현재 시씨의 무덤은 빈, 카푸친 성당(Kapuzinerkirche, 오페라 극장 뒤에 있는 관광안내소 바로 뒤에 있는 성당)에 자리해있다. 비록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으나, 살아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된 시씨의 흔적은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을 붙인 건축물들도 수없이 많으며(특히 부다페스트), 그녀의 일생을 다룬 영화와 뮤지컬도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호프부르크 왕궁, 쇤브룬 궁전 등 그녀가 머물다 간 곳이라면 어디든지 ‘시씨’가 최고의 화제다. 시씨는 아름다운 용모뿐 아니라 그리스 고전에도 능통하였다고 하며, 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왕이라는 자신의 직분(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는 헝가리를 통치하며 왕위도 함께 겸했는데, 시씨가 당시 헝가리의 왕이었다.)에 걸맞게 헝가리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등 매우 지적인 여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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