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의 모든 것
거물 스타 다케시, 단역 배우 기타노와 만나다연예계의 대스타 비트 다케시의 일상은 바쁘고 화려하다. 안팎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르며 무서워하지만, 아름다운 정부와 충성스런 매니저를 곁에 둔 그의 인생은 부족할 것 하나 없어 보인다.
한편, 그와 똑같이 생긴 금발의 기타노는 별볼일 없는 배우로서 수도 없이 오디션에 떨어지며, 편의점 직원으로 겨우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사건은 우연히 기타노와 비트 다케시가 만나면서 발생한다. 오디션 탈락이 줄 잇는 가운데, 기타노는 점점 비트 다케시가 연기하는 영화세계에 휘말려 가는데….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한 비트 다케시의 영화 세계에서 기타노가 맞이하는 충격적 결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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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완성된 12번째 작품 <다케시즈>more
기타노 다케시가 <소나티네>를 완성시킨 무렵부터 구상해오던 오랜 기획이 있었다. ‘프랙탈’이라는 가제 아래 기타노 감독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껏 기대감을 부풀게 했던 이 기획이 12년 동안 설정과 스토리의 무수한 변화를 걸쳐 마침내 실현되었다. 가제 ‘프랙탈’은 반복되는 패턴을 의미하는 단어로,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과 자기순환성(Recursiveness)을 가지는 것이 특징. 영화의 제목 <다케시즈 TAKESHIS’>는 오타가 아닌, 복제된 수많은 기타노 다케시가 등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외형만 같은, 분열된 완전히 다른 자신들을 만나게 된다는 기이함이 흘러 넘치는 영화 속에서 ‘기타노 다케시 되기’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케시즈> 베니스 영화제를 뜨겁게 달구다!
2005년 9월, 베니스영화제의 이례적인 서프라이즈 상영작으로 선정된 <다케시즈>. 상영 당일까지 일절 비밀에 부쳐져 있었기에 화면에 기타노 오피스를 뜻하는 K 로고가 등장하고 영화가 시작되자 상영관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은 5분이 넘는 박수갈채를 통해 영화에 대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주연을 겸한 기타노 다케시는 물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배역을 연기하고 현실과 허구,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제트코스터처럼 진행되는 영화는 전세계 영화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일본 개봉 시 ‘유럽과 일본에서 100여명 정도와 인터뷰했지만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6명 정도밖에 없었다’라고 말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을 혼란시키고 싶었기에 의도가 적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언어보다는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하고, 언제나 새로운 영화적 기법에 대해 고민하는 기타노 다케시가 12년의 고민을 담아 내놓은 <다케시즈>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불순물 제로! 기타노 다케시의 500퍼센트를 체감한다!
스쳐간 단어 하나, 우연한 사건들이 꿈에 갑자기 등장하고, 한겹 한겹 겹쳐져가는 꿈은 끝나지 않는다. 누구의 꿈인지 조차 섣불리 규정지을 수 없는 넌센스한 상황의 연속.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은 아름답지만 나의 꿈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라는 감독 자신의 공언처럼 기분 나쁜 악몽에 쫓기는 인물의 감각이 피부에 그대로 전해져 오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재미를 체감케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기타노 다케시 본인이 있다. 영화 속 대스타 비트 다케시가 결코 감독의 실제 모습과 같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감독은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설정했을 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캐릭터에서 창조해냈다’라고 설명하지만 모든 것이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된다!
언뜻 탈구성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이지만 기타노 감독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작업 중에서 가장 철저히 각본을 쓰고 모든 것을 고려하여 촬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조각조각 내어 파편을 긁어 모아 맞추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런 치밀한 계산 아래 완성된 영화 <다케시즈>는 과거의 작품들에게 끊임없이 눈길을 돌리며 <그 남자, 흉폭하다>로 시작된 기타노 다케시 영화 역사에 커다란 방점을 찍는다. 기타노 군단 배우들의 총 출동, <소나티네> <자토이치> <하나비> 등 명장면들의 끊임없는 인용이 이어지고 감독은 생(生)과 사(死), 동(動)과 정(靜)으로 대표되던 세계관을 스스로 해부 분석한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라스트 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과거의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비워내고 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리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를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가능성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작가로서의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집결된 작품인 <자토이치> 이후 <다케시즈>를 만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다. 감독이 이전부터 늘 하고 싶어했던 기획이었지만 모리 마사유키 프로듀서는 <자토이치> 이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즐길 요소가 충만한 엔터테인먼트로서 만들어진 작품 뒤에 비트 다케시와 기타노 다케시라는 두 개의 인형을 정밀히 조종하는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감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감독이 무엇이든 그림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다케시즈>는 감독이 생각하는 비주얼을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정확한 방법론을 체득한 다음에야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토리는 알려주어도 비주얼에 대해서는 결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법이 없는 감독의 촬영 방식이 <그 남자 흉폭하다>로 구축되기 시작해 <다케시즈> 안에 응축되어 완성된 것이다. 자기반복으로 가득찬 <다케시즈>는 ‘파괴’의 의미가 아닌 자신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출발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영상으로, 소리로 체감하는 영화
감독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고 감동시키는 것, 그 사진의 움직임에 색, 음악이 더해져 있지만 지울 수 있는 것을 지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통해 언어로 승부해왔던 그이기에 언어 이상을 표현할 힘을 영상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성영화 시절 대사가 없어도 모두가 이해했던 것처럼, 영화 본래의 가능성을 되찾기 위해 여분의 대사, 과장된 음향효과는 모두 배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집한 것은 색의 배분. 감독은 각본을 쓰는 단계부터 이미 ‘블루’와 ‘레드’의 구분에 대한 확연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단역 배우 기타노의 허름한 아파트 속에 숨겨진 의도적인 블루와 레드의 대비는 지극히 현실적인 그림 속에 숨겨진 기타노의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언제나 여분의 색을 철저히 거부해왔던 그간 기타노의 영화들과 달리 화려한 색감으로 무장한 꿈의 세계가 기타노식 판타지를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편집과 사운드로 완성된 템포감. 수십 번에 걸친 편집을 통해 철저하게 계산되어 완성된 영상 위에 감독은 140BPM의 음악이라는 테마를 정해 덧입혔다. 제트코스터처럼 질주하는 스토리와 함께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영화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