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신나게, Let’s JAZZ!!
“우리들에게는 재즈가 전부야!”열정 가득한 다섯 남자의 재즈 이야기!
제 2차 세계대전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도쿄. 미 제국주의의 음악으로 재즈가 엄격히 금지되던 때, 재즈에 빠진 뮤지션들 중 몇몇은 몰래 옷장 안에 숨어서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듣곤 했다. 점령된 일본에서 재즈는 그들에게 안식처와도 같은 것이었다. 종전 후 그곳엔 코카콜라, 햄버거, 아이스크림 등 생전 처음 본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고 그들은 미국의 문화와 음악에 젖어 든다.
그 무렵 재즈를 사랑하는 다섯 젊은이들은 ‘럭키스트라이커’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미군들이 모이는 EM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재즈를 연주한다. 어느 날 미군부대에 뛰어난 섹소폰 연주자 러셀이 부임해온다. 전쟁 중에 동생을 잃고 일본에 대한 증오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던 그는 ‘럭키스트라이커’를 돈만 밝히는 저속한 집단으로 취급한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리더 겐타로와 러셀의 팽팽한 신경전 가운데 사이는 점점 악화되가는데…
상반된 성격의 형제와의 갈등, 마약의 유혹, 전쟁 중 잃어버린 동생 찾기 등 각자의 사정이 겹치면서 멤버들은 와해되고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난다. 해체 위기에 놓였던 밴드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 뭉치게 되고 러셀 역시 그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하며 점차 변화해간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러셀의 한국 파병이 결정되자 러셀은 자신이 작곡한 ‘out of this world’라는 곡을 밴드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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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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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발단은 9.11more
처음 시작은 9.11이었다. 영화제작 중에 뉴욕 테러 발발. 배우들과 스탭들은 “이것으로 그냥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본능적 직감을 했다. 그리고 반년 후, 이라크 전쟁이 개시. 그 직감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라크 전쟁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어째서 어른이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느끼고 있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알기 쉬운 재료를 찾고 있을 때, 미국 진주군에 출입하고 있던 재즈맨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영화로 만들어볼까라는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또한, 일본 빅터(Victor)에서 3년 전에 기획된 <Occupied Japan>기획 입안에 영향을 받은 것 중에 하나다. 당시 진주군이 불렀던 아메리카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와 간단한 일본어 넘버를 수록한 두번째 CD도 있다. 불에 탄 들판과도 같았던 그 시대, 가진 것 하나 없는 빈 몸이지만 희망과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군중 극을, 진주군에서 연주하고 있는 재즈맨과 연결해 붙였다. “마침내 그때까지 쓸데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무리들이라도 악기 하나라도 있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별다른 수단에 의해, 서로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요소가 인간에게는 산(山)만큼 있다.”
난항을 겪은 시나리오의 시대 고증
설정은 58년 전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헌팅을 위해서는 타임머신이 필요했다. 거기서 당시의 매니저와 지금도 현역의 삭스 단원과 만나 많은 에피소드를 취재했다. 사카모토 감독의 가장 큰 관심사는 “조금 전까지도 적국의 사람들 캠프에 가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패전국의 국민 감정으로 어땠을까?”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적국의 재즈음악은 공개적으로 들을 수 없게 금지되어 있어서 숨어서 몰래 듣곤 했다고 한다. 더욱이 취재 중에 당시 진주군 밴드를 주관하고 연주했던 멤버들이 동창회적인 콘서트를 통해 <클럽 진주군>이 매년 열렸으며, 거기서 당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천 명 정도 모인다는 것을 알고 2002년 8월 15일에 열린 콘서트를 향해 취재를 나갔다. 그 곳에서 눈으로 목격한 것은, 과거 대학생과 잔뜩 멋 부린 젊은이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지만 아메리카 문화를 호흡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세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청춘 시대에 아무것도 없는 불에 탄 들판에서 빛이 비추고 있었음이 틀림없었을 거라는 시나리오 착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엑스트라 오디션
엑스트라 응모 총수는 약 천명. 전원을 찍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일본인만으로 500~600명 정도를 모았다. 어른과 아이 역은 머리를 잘라야 했고, 염색하지 않은 검은색 머리의 사람이 절대조건이었다. 또한, 전후에 음식이 궁핍하던 시대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 남성,여성 모두 파리한 모습이어야 했다. 약 이백 명의 머리를 잘라야 했기 때문에, 메이크업 담
Production Note
당의 가위 날이 빠지고만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한편, 미국인 엑스트라는 인터넷으로 응모를 걸러냈다. 10일 이상 촬영장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미군 기지에 근무하는 병사와 영어 회화 학교의 교사 등 상당 수가 모여들었다. 때마침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시기여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받아들여 줄만한 사람의 참여가 많았다고 한다.
재즈를 좋아하는 GI는 요코다 기지에서 몇 번이나 와서 촬영에 참가해주었으나, 7월에 이라크를 가라는 명령에 따라야 해서 이 영화가 언제 공개될지에 대해 신경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펜타곤까지 넘겨져 이 내용에 요코다 기지의 군악대가 참가해서 영화를 구성해도 좋은지에 대한 요청을 넣었으나 대답은 NO. 그러나 군악부의 군장은 “문화적 영화에 어째서 참가하지 못하는가. 자신들은 자유 의지로 해 보이겠다” 라고 참가 의지를 견고히 해주었다는 경위가 있다.
또한 흑인 클럽에서의 난투장면에 “싸움은 그만! 우리들은 이제부터 전쟁에 간다!”라고 중재를 넣었던 흑인병사는 실제로 이라크 전선에 가기 직전이었다. 원래 각본에 있었던 대사가 아니라 연기 중 문득 떠오른 대사였다고 한다. 자신의 심정이 잘 담겨있는 그 대사는 흑인병사의 애드립이었으나, 사카모토 감독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미술, 시대적 배경을 철저히 재현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제작 당시 수집한 사진만으로는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클럽과 종전 직후의 풍속을 살리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다. 수소문 끝에 EM클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픽션을 가미해 영화에 등장하는 클럽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폐허가 된 거리의 오픈 세트는 기타마현의 모토아츠 코다마시에서 재현되었다. 전후 직후의 거리에 대한 자료는 신문이나 비디오, 사진 자료 등이 제법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모두 흑백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색감은 과연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불에 탄 들판에 새빨간 이불을 말리고 있거나, 선명한 색의 기모노를 입거나, 살아 있는 것 같은 잉어의 연이 올라가 있는 등, 색채가 풍부한 영화의 색감을 살리며 종래에는 없는 전후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또한 엄선한 고재 만을 사용, 더욱 풍화된 것처럼 공을 많이 들인 소재로 세트를 만들었다. 복잡한 동서양의 절충이 특징인 클럽 체리의 세트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것에 있어서도, 폐물을 이용한 막사(타다 남은 깡통, 주석 등을 조잡하게 세워서 만든 작은 가게)다운 모습을 내기 위해, 세워진 건물을 중기로 무너뜨리거나, 아마추어들에게 만들어 세우게 하는 공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소도구에도 이러한 조건을 빠뜨릴 수 없었다. 극중 '럭키 스트라이커'가 연주하는 악기들은 전부 194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에는 상당히 보기 힘든 악기들인데 이 악기들 역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입수된 것들이다. 또한 가로수가 펼쳐진 거리의 모습과 그 당시 제작된 코카콜라 병에 이르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종전 직후의 모습을 세세한 부분까지 리얼하게 재현하고 있다.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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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오카 켄타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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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시마 쇼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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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 카즈시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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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노 아키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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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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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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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 료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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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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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모토 케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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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제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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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이 유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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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사카모토 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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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카사마츠 노리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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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타치카와 나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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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카노 도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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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쇼치쿠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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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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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코랄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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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
http://www.clubjazz2007.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