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대표작 <낡은 우물>

오천명(우티엔밍) 감독은 중국에서 ‘5세대 감독의 대부’로 불린다. 장이모, 첸카이거, 티엔주앙주앙 등 문화혁명이 끝난 뒤 78년 새로 문을 연 베이징 영화학교 동기생들로 이루어진 5세대 감독들은 사회주의리얼리즘을 고수하는 당정책에 반기를 들고 형식미에 집착하거나 좀더 개인적인 감정에 몰두하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나갔다. 오천명은 이들이 데뷔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중국영화를 이끌었던 4세대 감독 가운데 한사람이다. 60년대에 영화교육을 마쳤지만 문화혁명의 여파로 데뷔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뒤늦게 감독이 된 이들 4세대 감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영화의 미학과 양식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지만 서구 영화를 접할 기회는 별로 갖지 못했다. 1979년 데뷔한 오천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그는 <부표 없는 강 沒有航標的河流>(1982) <인생 人生>(1984) <낡은 우물 老井>(1984) 등의 영화를 찍었고 이중 <부표 없는 강>은 중국문화부 선정 최우수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또한 <낡은 우물>은 도쿄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4세대 영화의 대표작.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서의 성가를 올리는 데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미학을 주창하며 올라오는 5세대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쏟았고, 이때문에 중국 정부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오천명은 1983년 노동자들에 의해 서안스튜디오 소장에 선출되면서부터 열악한 스튜디오를 개선하고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작가를 차례로 서안스튜디오에 불러모았다. 1986년 서안스튜디오는 티엔주앙주앙의 <말도둑>을 제작했고, 1987년 첸카이거에게 <아이들의 왕>의 연출을 맡겼다. 오천명은 자신의 영화 <낡은 우물>의 촬영을 장이모에게 맡기는 한편 이듬해 장이모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이 나오도록 힘썼다. 5세대 감독들이 오천명을 자신들의 대부로 받드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오랫동안 좌시하지 않았다. 오천명은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5세대 감독들에게 반동적인 영화를 만들게 했다는 이유로 문책받게 되고,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로부터 5년 만에 홍콩 쇼브러더스와 베이징 청년영화스튜디오의 합작으로 만든 영화가 한국에서도 개봉된 <변검 The King of Mask>(1995)이다. 순식간에 얼굴가면을 바꿔쓰는 변검술로 평생을 살아온 한 광대의 파란많은 삶에는 오천명 자신이 겪어온 중국 현대사 고비고비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