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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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명Friðrik Þór Friðriksson
- 다른 이름프리드릭 소 프리드릭슨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4-00-00
- 성별남
소개
프리드릭 소 프리드릭슨은 영화 불모지였던 아이슬란드에 새 바람을 일으킨 선구자다. 프리드릭슨은 정식으로 영화학교에 다닌 적이 없지만 고전영화와 예술영화의 관객을 넓히는 시네마테크 운동을 했고 아이슬란드 최초의 영화잡지를 만들어 발행인, 편집인, 평론가 1인3역을 했으며 78년에는 레이캬비크 국제영화제를 창설해 영화제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됐다.
54년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16mm 단편영화를 만든 프리드릭슨은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 영화전통에 그다지 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난 스칸디나비아 영화전통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는 이들과 짝을 맞춰 좋은 영화들을 보며 영화를 배웠다. 이런 개인적인 영화관람, 이게 곧 영화학교였다.” 레이캬비크영화제도 프리드릭슨의 경험에 큰 도움이 됐다. 영화제 초기 초청손님으로 온 <베를린 천사의 시>의 독일 감독 빔 벤더스에게 프리드릭슨은 깊은 영향을 받았다. 벤더스의 대다수 영화처럼 로드무비 구성인 프리드릭슨의 대표작 <자연의 아이들 Children of Nature>(1990)에도 벤더스의 영향이 얼마간 묻어 있다. 프리드릭슨은 27살 때부터 기록영화를 연출했는데, 아이슬란드 지방의 괴짜 발명가를 주인공으로 한 <대장장이>(1981), 아이슬란드의 뉴웨이브 로큰롤을 다룬 <레이캬비크의 로큰롤>(1982)을 발표했다. 서구문화 탓에 변해가는 아이슬란드 시골지방을 다룬 <아이슬란드 카우보이>(1984) 등을 만들었다. 기록영화감독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쌓인 후 만든 첫 장편 <하얀 고래 Skytturnar>(1987)는 고래잡이배에서 일하는 그리머와 바비 두 선원의 모험담을 그린 것으로 꽤 웃기고 양식화된 드라마였다. <하얀 고래>는 아이슬란드영화의 존재를 해외에 알린 첫번째 영화이며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프리드릭슨은 어떤 소재로 영화를 찍어도 대체로 기록영화 분위기를 풍긴다. 텔레비전 영화 <한계 없는 창공>(1989)은 날고 싶다는 꿈을 실현시켰던 1세기 전의 한 아이슬란드 젊은이의 이야기다. 기록영화풍의 독특한 연출과 정통파 각본에서 조금 어긋나게 플롯을 짜는 솜씨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프리드릭슨이 아이슬란드 영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두번째 극장 장편영화를 만든 것이 대표작인 <자연의 아이들>(1990)이다.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 뿌리를 찾으려는 두 노인의 사랑얘기인 이 영화는 기록영화풍 분위기와 드라마게임 같은 소재와 초현실주의적 분위기가 야릇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영화 후반 로렐라이 언덕 전설에 나오는 듯한 벌거벗은 여인이 바닷가의 암석에 서 있는 장면은 압권이다. “초자연풍으로 만들었다. 초자연적인 것 속에 자연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한가운데서 그 길을 보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었다. 보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영화 속 두 노인처럼 자기가 어떤 길을 발견할 것인지는 각자 생각해야 할 문제다.”
<자연의 아이들>은 50여개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았으며 20여개의 상을 받았다. 프리드릭슨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94년 유럽영화제에서 인기상을 받은 <영화의 시대 Biodagar>(1994)는 아이슬란드판 <시네마천국>이다. 프리드릭슨은 자기네의 문화적, 역사적 뿌리에 관심이 많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변하며 프리드릭슨은 그 변화를 영화로 담고 싶어한다. 프리드릭슨은 할리우드로 오라는 제의를 여러차례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후대에 아이슬란드의 자취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능력있는 감독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