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을 뒤흔든 숨막히는 첩보게임!
1. 1941...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 가던 1941년, 일본은 대동아 건설의 야욕을 키우며 태평양 패권을 넘본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일본의 군수물자 해상보급로를 차단하게 되고 두 나라 사이에는 전운이 감돈다. 일본은 미국을 선재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그 첫 시발점을 진주만으로 잡는다. 폭풍전야를 예고하듯 하와이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영사관은 조용히 철수를 감행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공습이 예견되는데...
2. The Spy_01
하와이에 거점을 둔 한인독립단체 SKPL 요원인 한길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 해군정보부 요원으로 일한다. 일본의 기밀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는 이중스파이로 활동하는 그의 목표는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켜 조국의 독립을 얻어내는 것. 함께 활동하는 SKPL 요원들에게까지 비밀로 한 채 하와이 내 일본 영사관에 침투한 그는 정보장교인 요시카와의 신임을 얻어 일본의 앞잡이가 된다.
3. Two Women
영사관에서 일본의 진주만 해상지도 제작을 돕던 한길수에게 총영사의 현지처인 미에코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한길수는 미에코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대신 요시카와의 약혼녀이면서 영사관 직원인 나나미를 마음에 두게 된다. 처음엔 신임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접근이었지만, 그녀가 조선인이란걸 알게 되면서부터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선인이 왜, 일본인 장교와 결혼하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접근에 부담을 느낀 나나미는 한길수를 차갑게 대한다. 여러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 한길수는 나나미의 신원을 미 해군정보부에 부탁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가족을 외면하고 조국을 택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한길수는 그런 나나미와 함께, 그녀의 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 박목사를 찾아가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듣게 해준다.
한편, 미에코는 한길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총영사의 현지처로 살아가는 자신의 참혹한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한길수에게 모든 것을 던지기로 마음 먹는다.
4. The Spy_02
어느 날 일본의 우익세력이 새로 발간했다는 평화협정이란 소설을 극우파 단원 와타나베에게서 받아 본 한길수는, 자신이 하고 있는 해상지도 작업과 일련의 상황들을 유추하며,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길수는 일단 이러한 사실을 미 해군 정보부 하와이 지국장인 마이크 대령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마이크 대령은 더 구체적인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며, 한길수의 보고를 묵살한다. 마음이 다급해진 한길수는 진주만 공습시 꼭 있어야 할 일본의 중간 급유지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나미에게 이중 스파이인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총영사실에서 해야 할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잠깐 당황한 나나미는 곧, 그를 돕기로 하고 진짜 해상지도를 가짜와 바꿔치기 하는 작전에 가담하게 되는데...
5. 전 미국을 놀라게 한, 최초의 한국인
한길수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일이 다가오는데도 해군 정보부에서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자, 워싱턴으로 날아가 이 사실에 대응할만한 정부의 인물을 찾는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한길수의 행동이 미국의 대 외교정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길수 체포령을 내린다. 업친데 덮친 격! 이제 미국에게까지 쫓기게 된 한길수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시 가장 유명한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CBS의 에릭 세르게이를 찾아가 정보를 제공한다.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친 한길수는 결국, 워싱턴의 한 골목에서 미국 정보원에게 체포되고 만다. 유치장에서 초조한 날을 지내던 한길수... 하지만 폭격 당일까지 CBS에서는 일본의 진주만 습격 경고에 관한 어떤 정보도 기사화 하지 않게 되고, 한길수는 절망한다.
결국...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7시 55분...
평화롭던 진주만의 하늘은 일본의 폭격기로 해가 뜨지 않게 된다.
이미 폐허가 된 진주만을 뒤로 하고, 그제서야 전 미국의 언론은 한길수의 진주만 공습예견을 대서특필한다.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유치장 문을 나서는 그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질문들에 대해 그는 ‘이 전쟁이 끝나면 알게 될 것’이란 한마디로 일축한다.
동영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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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more
광복 60년, 돌아온 영웅 “한길수”
미국인이 코리아를 알게 된 계기는 6.25 전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코리아를 미국 전 언론에 알린 인물이 있다. 바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미 정부에 수 차례 경고했던 한국인 한길수다.
영화 ‘HAAN한길수’는 제목 그대로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대한 진실을 밝혀낸 한길수, 세계를 향해 나가다!
1900년 5월 31일 태어나 5세 때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한 한길수는, 구세군 컬리지 과정을 마치고 1921년 구세군 장교로 발령 받는다. 그 후 미국 내 한인회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미국 내 한국인들의 위상과 안위를 위해 노력(32계주 90개 도시를 순회하며 169회의 강의와 7번에 걸친 방송출연을 통해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알림)했다.
아주 오랜 시간 미국 정치계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1933년부터는 정식으로 일본의 공격상대가 미국임을 경고하는 편지를 미 국방장관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이때 한국이 일본에 항쟁할 수 있도록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1938년 미국 내 독립운동단체인 중한민중대동맹(SKPL)의 실질적인 HEAD가 되면서 한인회와 미국 정부 내에서의 파워 또한 커지게 되었고, 미국과 일본 이중첩자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용 해상지도 제작에 관여하여 전쟁의 진실을 미리 알게 되었다.
1941년에는 8번에 걸쳐 일본의 진주만 공습 경고일지를 미국 정부에 보냈다. 이 일지에는 정확한 날짜와 장소까지 지목되어 있었다. 계속 미국 정부에서 의례적인 답신만을 받게 되자 CBS, 워싱턴 데일리뉴스 등 미국 주요 언론과 접촉해 전쟁에 대해 경고했다.
그가 없었다면, 일본에 대한 미국의 보복도 없었다!
진주만 공습 이후, 한길수는 전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미국이 일본을 제압함으로써 조국의 독립을 유도했다는 평가가 역사학자들 틈에서 신빙성 있게 주장되어지고 있다.
1976년 7월 25일 76세로 사망한 그는 현재, 산호세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한국이 독립할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 한길수... 우리는 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파란만장한 그의 첩보활동과 실질적인 성과는 영화적으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다. 60년 만에 밝혀진 그의 이야기가 2005년 9월, 드디어 스크린에 펼쳐진다.
Production Note
진주만 공습,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한 사건은,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우리는 그 해에 독립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태평양 전쟁과 조선 독립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 속에 한국인 이중첩보원 한길수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한길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 의한 조선의 독립을 도모해 왔다. 그는 조선 스스로 독립을 이끌어 내기에는 자금과 병력면에서 모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통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민들도 독립에 대한 희망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의 도움 없이는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게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과 미국의 평화협정이 현실화되기에 이른다. 두 나라간 협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미국은 일본의 조선 점령에 대해 함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길이 바로 이중첩자다. 한길수는 하와이에 위치한 일본 영사관에 위장 근무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도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일본이 미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꿈을 꾸고 있을 때, 그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답을 제시했다. 미 해군의 전초 기지인 진주만을 공격 타깃으로 잡고, 일본의 편에서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그가 하와이의 일본 영사관에 위장 취업한 것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진주만 공습에 실질적인 작전지령이 되었던 해상지도도 한길수가 작성했다는 설이 일본에서는 신빙성 있게 주장되어 지고 있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즈음, 그는 이제 미국쪽에 이 정보를 흘리기 시작한다. 사실 한길수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계획만으로도, 미국이 일본을 공격할 명분은 충분했기 때문에 사전에 그 사실을 알리려 했다. 한길수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기획하면서 고려했던 것도 만약의 사건에 대한 대비였다. 일본의 공격이 현실화 될 경우 미국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했던 것.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한길수의 정보를 무시했고, 진주만 공습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독립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1941년, 하와이 재현에 모든 역량을 쏟다!
순 제작비 60억원을 투입한 첩보액션 블록버스터의 매력은 역시 사실감이다. 진주만 공습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 투입되었고, 긴장감 넘치는 첩보 활동을 스케일이 큰 화려한 영상으로 구현해냈다.
또한 모든 영화적 배경이 하와이였던 당시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1941년 하와이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사이판과 괌 현지 로케를 선택했다.
는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낙원의 낭만을 화면 가득 담아 영화적 볼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할 계획이다. 세트 외에도 실제 원주민 마을과 이국적인 바닷가 풍경 등이 고스란히 스크린 속으로 옮겨졌으며, 그 작업을 위해 스탭들은 2004년 겨울과 2005년 봄을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지냈다. 무더웠던 여름, 그 열정적인 촬영의 후반작업을 마친 가 2005년 9월, 오랜 기다림 끝에 관객들과 대면한다.
007 시리즈, 본 아이덴티티에 버금가는 한국형 첩보액션 선언!!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첩보원으로 활동했던 실존인물 한길수를 표현하기 위해 첩보 액션 장면은 필수! 사이판 바다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추격씬과 군사용 해상지도를 몰래 바꿔치기 하는 장면 등은 손에 땀이 날 만큼 긴장감과 스릴이 넘친다.
007에 최첨단 장비가 있다면,에는 얇은 비단자락도 깨끗이 베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일본도와 의상 및 세트 전반에서 흘러나오는 동양미, 그리고 온몸을 던지는 실전 액션이 있다.
주인공 한길수로 2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안재모 역시 완벽한 첩보원으로써의 변모를 위해,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몸 만들기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서 펼쳐진 첩보장면은 물론 사이판 현지에서의 자동차 액션, 그리고 몸으로 부딪히는 육탄액션에 이르기까지 모든 액션을 그는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냈다.
이제 우리는 지적이면서도 육감적인 한국형 첩보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The Partner
이 작품에는 독특한 한국형 여성 캐릭터가 있다. 첩보원 한길수를 도와 임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정신적 교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여주인공 ‘나나미’가 바로 그 주인공.
‘007’의 ‘제임스 본드’에게 ‘본드 걸’과 대조적으로 한길수와 그녀의 관계는 남녀의 감정보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파트너다. 조선인이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일본인으로 살아가던 그녀. 한길수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자, 목숨을 걸고 한길수와 뜻을 같이 하는 나나미의 캐릭터는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할 숨은 진주인 셈이다.
생사의 고락을 함께하던 나나미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더 큰 사명을 위해 자신을 묻을 수밖에 없는 한길수...
두 캐릭터의 감정몰입은 촬영장 전체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길수에 대한 헌정 _ 5년의 자료 수집, 2년의 준비...
광복 이후 60여년 가까이 역사 속에 묻혀있던 한길수는 한국의 한 프로듀서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 프로듀서는 5년에 걸친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한길수에 대한 방대한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5년 동안 한길수가 있는 곳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와이, 일본, 워싱턴, 뉴욕... 그리고 그 파일은 지난 2002년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수요기획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5년 동안 한길수를 뒤쫓던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한길수는 극영화로 다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그 프로듀서가 바로 영화의 이인수 감독이다. 그 후로 다시 2년, 그의 집요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한 권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한길수의 가장 화려한 첩보활동 시기를 조명한 영화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기나긴 세월 7년... 이인수 감독은 그 시간을 실존 인물 한길수와 영화에 바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