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컨설팅을 해온 벵상(오렐리엔 르코엥)는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것처럼 차를 타고 나온 뒤 이곳저곳 헤매다 밤이 되면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것이다. 얼마 뒤 그는 저개발국에 투자하는 유엔기구로 직장을 옮겼다고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로부터는 별도의 사설펀드를 만들 계획이라며 돈을 모은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급기야 밀수에까지 관여한다. 이런 행각의 출발점은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였지만, 막상 자신이 벌려놓은 것들로부터 떠나기에는 그를 붙잡아 매온 끈들이 너무 질기다. 새로운 세계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벵상은 거짓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서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아내에게 거짓 전화를 계속 해대는 벵상에게서, 굴레가 돼버리고 만 가족의 이중적 모습이 섬뜩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주인공의 대책 없는 거짓말 행각의 이면에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만 또 한편에서 이전의 관성을 따르려 하는 부르주아의 심리를 중계한다. 하지만 막상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 다른 컨설팅 회사에 취직하고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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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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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아웃>은 199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결말만 바꿔서 각색했다. 한 중년 가장이 해고당한 사실을 숨겨오다가 가족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주인공은 각박한 일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다가 스스로를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들어간다. 그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다. 로랑 캉테는 벵상을 통해 실제로 우리가 지금까지 속해온 세계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 다루고 있다. 실제사건과 달리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는 걸 해피엔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엄연한 비극이다. <타임 아웃>의 불어 제명은 <시간의 사용자>다. 직장에서는 시간의 고용자이지만, 해고된 뒤에는 시간의 사용자가 된다. 그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존재의 기쁨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간결한 대사와 차가운 블루톤의 화면과 더불어 <타임 아웃>은 계급과 시대를 바꾸면서 훨씬 냉정해진 21세기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영화의 무게감은 개인의 실존 쪽에 더 실린다. 로랑 캉테가 주목하는 건 구체적인 사회문제이기보다 인간과 사회라는 근원적인 요소의 관계다.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