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그너"라고 새겨진 수압 프레스를 작동시키는 엘레나는 어느 날 공장에 찾아온 낯선 사내들로부터 고대하던 아파트 당첨 소식을 듣는다. 엘레나는 아파트 구경을 갔다가 매트리스에 누워 잠이 든다. 심한 허기를 느끼며 깨어나 냉장고를 뒤지던 그는 빵 한 조각이라도 얻어보겠다는 심사로, 차례차례 이웃을 방문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각자 이상한 것에 집착해 있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다. 강한 조명의 흑백화면 가득 기괴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바그너)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이 즐비한 부조리극이다. "바그너"가 수압 프레스이기 이전에 작곡가 이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는 엘레나처럼, 평생 덧없는 것을 쫓으며 정작 자신의 존재 가치나 꿈을 저버리는 인간들을 풍자하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안드레이 슬라바코프 감독은 극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으로 두루 경력을 쌓았고, 91년부터 95년까지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다큐멘터리 (바다로 가는 객차)로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94년에 역시 다큐멘터리 작품인 (불가리아의 유대인)으로 주목받았다. / 씨네21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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