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대로 걷지 못한다. 여동생은 밥을 떠먹여야 할 정도로 어리다. 입대영장을 받아든 가장 진섭은 막막하다. 자신이 떠나면 두 사람은 고시원에서의 고단한 삶조차 유지할 수 없다. 병무청을 찾은 진섭은 아버지가 살아 있어 군 면제 판정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릴 적 집을 나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아버지를 찾아나선 진섭은 얼마 뒤 “가족을 살리기 위한” 결단 앞에서 망설인다. 천국은 있는가. 아니면 지옥만 있는가. 칼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나선 진섭에게 천국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흉한 몰골을 한 아버지를 어찌하지 못한다. 천국의 문은 더이상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는, 지옥의 제일 밑바닥에서야 간신히 틈을 보인다. 좁다란 고시원에 4인용 식탁이 펼쳐질 때, 천국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지옥은 조금은 살 만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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