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작고 평화로운 집시마을 글로드. 열일곱 살 소녀 카르멘은 아버지를 도와 매일 가게와 술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을을 떠날 꿈을 꾼다. 어느날 미국의 변호사들이 마을에 찾아오고 이 마을에서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을 촬영했던 코메디언 보랏에게 소송을 걸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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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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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은 루마니아 산기슭에 위치한 외진 마을 글로드에 살고 있는 17세 소녀다. 다른 곳 같았으면 정규교육을 받아야할 나이지만 집시 공동체의 일원인 그녀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와 잡화점에서 일하면서 주로 집안일을 돕는다. 무언가 다른 일, 다른 곳 그리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그녀는 스페인 TV드라마를 통해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그 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가난한 ‘어느 산골 소녀’는 어떻게 보랏을 만났을까?more
보랏은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전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된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의 주인공. 진짜 다큐멘터리인 <카르멘, 보랏을 만나다>는 차츰 카자흐스탄 배경의 <보랏>이 실제로는 카자흐스탄이 아닌 카르멘의 마을에서 촬영되었음을 드러낸다. 아무런 설명 없이 카자흐스탄 사람들로 둔갑시켜놓고는 섹스광, 무면허 엉터리 낙태시술자, 술주정뱅이, 폭력적이고 지독한 잔소리꾼 등으로 묘사해 놓은 영화 <보랏>을 보고난 후,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화 제작진한테 오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그런데 어느 날 유태계 미국인과 독일인 변호사가 <보랏>의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을 준비하자며 마을을 찾아온다. 카르멘 아버지의 꿈대로 이 마을은 집단 소송에서 이겨서 부자마을인 ‘보랏마을’로 재탄생할 것인가? 카르멘 또한 그녀의 꿈대로 한방에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카르멘, 보랏을 만나다>는 산골 소녀 카르멘의 일상과 글로벌 문화 상품 <보랏>을 둘러싼 사건을 흥미롭게 배열하면서 세계화 시대에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예리하고도 성찰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윤리는커녕 타자를 착취하고 의도적으로 그들을 오현함으로써, 그리고 전근대적 요소와 가난을 팔아치움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는 지구적인 연예 기업 자본과, 그러한 자본의 움직임 속에서 파생하는 이익에 기생하는 국제 변호사와 미디어들의 속성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 소녀의 욕망은 그러한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고 좌절되고 협상됨을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다는 것 역시 다큐멘터리 <카르멘, 보랏을 만나다>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