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2월 혁명은 사회주의를 향한 러시아 프로레타리아들의 첫번째 승리였다. 이 승리로 러시아를 350여년간 지배해 온 전제체제는 무너지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인 임시정부가 탄생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생활개선을 원했던 노동자와 농민들은 4월 3일 망명지에서 귀국해 임시정부의 타도와 반전을 외쳤던 레닌과 함께 대규모의 시위를 펼쳐나간다. 임시정부는 실세였던 '소비에트'와 연합정부(제2기 임정)를 구성하게 되지만 농민들은 정부의 토지정책에 여전히 만족할 수 없었고 레닌은 계속투쟁의 의지를 밝힌다. 제2기 임정의 전쟁장관이었던 케렌스키는 레닌을 공격, 체포령을 내리고 제3기 임시정부의 수반이 된다. 그러나 제3기 임시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우파, 육군참모총장 꼬르닐로프장군은 쿠테타를 일으키게 되고 이것은 임시정부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볼셰비키의 세력을 크게 신장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때 국가의 혼란을 틈타 레닌은 볼셰비키의 트로츠키와 함께 군사쿠테타를 계획하고,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의 자격으로 군대를 동원, 10월 25일 드디어 역사적인 볼셰비키 군사혁명인 "10월 혁명"이 발발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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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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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10월혁명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 도에 넘치는 형식적 유희의 과잉으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위대한 형식주의자 에이젠슈테인의 왕성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17년의 노동자 봉기와 동궁 습격을 다룬 줄거리는 숨막힐 듯한 스펙터클이지만 케렌스키 정부의 무능을 표현하기 위해 공작새, 조각상이 든 화한, 사원의 우상, 가면, 흙으로 빚은 인형 등을 몽타주한 장면같은 것은 특히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지적 몽타주의 맥락에서 파악하더라도 이 장면의 몽타주는 너무 앙상한 개념에 의지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월)로 인해 영화예술이 새로운 형태를 갖춰가는 다음 단계로 진일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more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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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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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블라디미르 닐센
블라디미르 포포브
에두아르드 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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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애드먼드 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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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바슬리 코프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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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소브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