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우주적 불륜드라마
“아직도...지구다.”공무원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시인 연우는 외계인이다.
지구인 아내와 소통이 단절된 채 오랜 권태기로 고통스러워 하던 연우는 우연히 자신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여인 세아를 만나게 된다. 한 편 지구인 아내 혜린은 남편에게 자신이 비밀정부요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생활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첫 암살지령이 내려진다. 암살 상대는 연우와 묘한 관계에 빠진 세아. 혜린의 상사이자 불륜 상대인 한실장은 갈등하는 혜린을 재촉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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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대한 의문…그리고 영화의 시작more
일상에 너무나 익숙해지면 그것이 일상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하늘에서 개구리비가 내린다면 그건 일상일까, 일상에 끼어든 판타지일까. 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은 바로 이런 의문점에서 출발한 영화다. 2005년 오사카에서 열린 한일 엔터테인먼트 영화제 독립영화 섹션 시사회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시간에서 다음 작품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안슬기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상의 판타지는 많잖아요. 전 오히려 일상이 아닌 것을 일상처럼 느끼게 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평소 본인 스스로를 ‘일상’과 ‘진짜’에 대한 오랜 숭배자라고 이야기 할 만큼 일상에 대해 강한 매력을 느끼는 안슬기 감독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 문어대가리의 외계인이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도 일상으로 느껴질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상에 스며든 판타지, 즉 비일상적인 것이 일상 속에서 드러났을 때의 낯섦과 특별함, 그리고 그것들을 한 꺼풀씩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한 영화의 시작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가며 <지구에서 사는 법>은 탄생하게 되었다.
지구인들에게 가장 달콤한 일탈의 유혹, 불륜을 이야기하다
안슬기 감독 영화의 출발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장편 데뷔작 <다섯이 너무 많아>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대안가족을 이루게 되는 해프닝을 유쾌하게 풀어냈고, 두 번째 장편 <나의 노래는>에서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주인공에게 남아 있던 가족마저 해체되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세 번째 장편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는 가족이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조금 더 범위를 좁혀 들어가 한 부부와 그들 각자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연우(박병은 분)와 혜린(조시내 분)은 권태기를 맞기 시작한 30대 중반의 부부다. 이들에겐 아이도, 소통도, 심지어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소조차 없다. 각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이 있는 것조차 낯설고 어색할 만큼의 거리가 생겨버렸다. 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애인까지 생겨버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떠한 액션을 취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 될 것이다. 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은 소통이 없는 권태기 부부의 사랑과 관계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이자, 결혼생활이 따분해진 이 시대 모든 부부들에게 지구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이다.
이제껏 보지 못한 범우주적 불륜드라마의 탄생!
불륜에 스타일을 입히고, 상상력의 날개를 달다
불륜을 그린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금기된 사랑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일탈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서 지금까지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현실에 발을 디딘 리얼리티를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은 불륜이라는 말랑한 내피에 SF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외피를 덧입혀 기존 불륜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며 이 영화만의 유니크함을 획득하고 있다. 외계인 남편과 지구인 아내의 불륜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그 동안 보아왔던 불륜영화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지구 밖으로 마구 뻗어나가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 머무는 판타지를 쫓다 보면 어느 새 스크린 안에서 현실 속의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외계인과 지구인 부부의 불륜을 통해 그려내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아주 특별한 멜로 <지구에서 사는 법>.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범우주적인 불륜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기존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한국영화계의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이름, 안슬기
올해 <워낭소리>,<낮술>,<똥파리> 등 한국 독립영화는 각종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세계의 이목을 끔과 동시에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화제가 되었다. 독립영화는 무겁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신선하고 기발한 스토리와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감성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며 입 소문을 탄 것이 흥행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안슬기 감독은 2009년 하반기 이런 참신한 독립영화의 계보를 이어 줄 대표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슬기 감독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있으며 늘 방학을 이용해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감독의 독특한 이력을 제쳐두고서라도 안슬기 감독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인간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다. 안슬기 감독은 전작 <다섯은 너무 많아>와 <나의 노래는>을 통해 인간사이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편 모두 보편적이고 평범한 인생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 감독 특유의 위트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신작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 안슬기 감독은 조금 색다른 외도를 선택한다. 불륜이라는 소재에 SF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뻔한 이야기들을 낯설게 그리고 통속적으로 꾸며 놓는다. 소통과 관계라는 전작의 주제를 이으면서도 그 주제를 독특한 형식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은 새롭게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다. 일상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이나 일상의 판타지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잘 보여주는 미셸 공드리의 작품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새로운 형식미로 변신을 시도하며 안슬기 월드는 점차 확장하고 있다. 바로 안슬기 감독의 신작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