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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 (Jean Vigo)

1905-00-0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8.2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5-00-00

소개

대표작 <니스에 관하여> <품행 제로> <라탈랑트>
비디오 출시작 없음
4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장 비고는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의 대가 영화감독으로 손꼽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장 강렬한 시적 리얼리즘(poetic realism)의 영상을 창조했던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개봉 당시엔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고, 관객들에게 외면당했으며, 제작자들과 극장주들의 횡포와 검열의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예술영화운동이 발흥했던 194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비고의 작품들은 재발견됐고, 마침내 그 영화들의 서정적인 리얼리즘과 시적인 단순성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허약한 육체로 예술적 열정을 끌어안으려 했던 비고의 삶 자체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고는 1905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던 병약한 아이 비고는 병원과 요양소를 들락거렸고, 정치 운동에 깊숙이 관련된 그의 부모들은 아이를 맡아볼 시간이 없었다. 좌익 정치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 미구엘 알메레이다는 1차세계대전중 반역자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재판도 받기 전에 감방에서 누군가에게 교살당했다. 비고는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을 밝히려는 운동에 연루되었지만, 재발되는 병으로 인해 그런 노력들은 무산되었다. 그가 아버지를 따라 무정부주의적 이상을 체현한 것은 다름아닌 그의 영화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비고는 소르본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오던 중 1928년 파리에서 클로드 오탕-라라와 제르멘 뒬락을 만남으로써 촬영감독 레옹스 앙리 뷔렐의 조수로 일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즈음 그와 만나 의기투합한 보리스 카우프만(러시아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은 비고의 영화들에서 촬영을 맡았다. 비고와 작업한 이로 또다른 중요한 인물은 작곡가 모리스 조베르이다. 비고의 두 극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한 그는 내러티브와 스타일의 요구에 맞도록 영화음악을 만들어내면서 시적 리얼리즘 운동에 공헌했다.
<니스에 관하여 A Propos de Nice>(1929)는 비고가 구입한 드브리 카메라로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비고의 첫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리비에라 휴양지의 게으른 유한계급의 모습과 니스의 빈민층을 병렬적인 이미지로 담고, 풍자적인 과장들과 성적 이미지들을 이용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도시 교향악을 만들어냈다. 그의 다음 영화 <수영 챔피언 장 타리 La Nata-tion par Jean Taris Champion de France> (1931)는 다소 완화된 초현실주의적 방식으로 한 유명한 수영선수의 모습을 그렸다.
프랑스 어느 지방의 기숙학교에서 권위에 대항하는 네 학생의 반항에 대한 이야기 <품행 제로 Z o de Conduite>(1933)는 비고의 첫 극영화이다. <품행 제로>는 전위적인 매체 이용과 공격적인 사회비판이라는 비고의 주요 관심사를 보여준다. 비고는 학교를 권위주의와 보수주의로 물든 하나의 견고한 세계로 보고 학생들의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반란 행위를 통해 그 갑갑한 사회에 맹공격을 퍼붓는다. 비고는 그러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형식주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희화화와 극사실주의적인 묘사 사이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한다. 당시 검열 당국에선 이 영화의 반란정신이 공공질서를 위협한다고 간주했고, 1945년까지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금지되었다. 병이 극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비고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라탈랑트 L’Atalante>(1934)를 만들었다. 시적 리얼리즘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이 영화는 비고의 유일한 장편 극영화이기도 하다. <라탈랑트>는 시골 처녀와 유람선 선장 사이의 관계에 대한 평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면서도 인민주의적인 관점을 거치며 서정성과 신랄함이라는 정조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배급업자들은 영화를 제멋대로 자르고 재편집해 상영했다. 1990년에야 개봉된 복원판 <라탈랑트>는 영화사에서 두드러진 업적으로서 재차 상찬받았다. 장 르누아르, 오슨 웰스, 그리고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이 계승하고 수정할 만한 새로운 영화 스타일을 창조하고자 고심했던 비고는 1934년 10월26일 파리에서 결핵성 폐질환으로 숨졌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