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9-02-03
- 사망2016-07-02
- 성별남
소개
대표작 <디어 헌터> <천국의 문>
비디오 출시작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도적> <디어 헌터> <시실리안> <광란의 시간>
평론가 로빈 우드에 따르면 마이클 치미노는 ‘미국영화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가장 멋진 형식의 혁신자다. 평론가들이 치미노가 만들어낸 구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바로 이 혁신성 때문이다’. 치미노는 무성영화 시대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처럼 위대한 걸작을 만들었으나 할리우드에서 유배당한 불운의 감독이었다. 그의 걸작인 <천국의 문 Heaven’s Gate>(1980)은 35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든 대작이었으나 잔인하게 공격당하고 흥행에서 재앙을 맞아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파산으로 몰고 갔다. 할리우드 역사상 영화 한편 때문에 스튜디오가 문을 닫는 사상 초유의 사건 당사자가 된 치미노는 이후 좀처럼 재기하지 못했고 시스템에 눌린 불행한 감독의 표본이 됐다.
39년 뉴욕 태생인 치미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그넘 포스 Magnum Force>(1973)의 각본작가로 영화계에 들어섰으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이스트우드의 발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도적 Thunderbolt and Lightfoot>(1975)으로 데뷔했다. 버디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데뷔작으로 성공을 발판삼아 두번째로 만든 <디어 헌터 Deer Hunter> (1978)는 아카데미를 휩쓸면서 ‘천재’ 치미노의 명성을 드높였다. <디어 헌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철강도시 클레어튼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 징집되면서 겪는 삶의 파란을 형상화한 대작으로 초반 방대하게 이어지는 결혼식 장면에서부터 기승전결의 이야기 전개라는 고전적 방식과는 정반합의 갈등구조로 이야기를 몰고 가는 치미노의 재능을 증거하는 작품이다. 클레어튼-베트남-클레어튼-베트남-클레어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각 단락의 길이가 줄어들면서 행복했던 공동체와 인간성이 무너지는 비극의 현장 전장터의 대조를 통해 장대한 역사와 인생의 비유를 직조해낸다. 치미노는 이상적인 미국의 개념이 해체되는 순간, 짧은 행복과 긴 불행의 시기를 묘사하면서 희망없는 미국의 현대 삶을 우울하게 그려냈다.
치미노가 데뷔 당시부터 꿈꿨던 프로젝트인 <천국의 문>은 일찍이 미국에 도착해 기득권을 가진 농장주들과 뒤에 도착한 이민 농부들 사이에 일어난 백인들끼리의 전쟁을 다룬 수정주의 서부극의 걸작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원죄의식을 장쾌하게 묘사했다. 유럽에서는 절찬했지만 미국에서는 악의적 비난만을 산 이 영화는 그대로 치미노의 원죄가 돼버렸다. 평단을 비롯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서부의 어두운 역사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멜로드라마적 감상마저 배제한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외면했다. <천국의 문> 이후 치미노는 계속 비틀거렸다. 올리버 스톤의 각본으로 만든 <이어 오브 드라곤 Year of Dragon>(1985)은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주의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극장 흥행에서 참패했다. 미국에서 발붙이기 어렵게 된 치미노는 유럽시장을 노리고 디노 드 로렌티스의 제작으로 <시실리안 The Sicilian>(1987)을 연출했으나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형편없는 연기가 조롱거리가 되면서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광란의 시간 Desperate Hours>(1991) 역시 치미노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졸작이었다. 오랜만에 연출했던 <선체이서 The Sunchaser>(1996)도 범작에 그쳤다.
치미노의 몰락은 할리우드 르네상스의 몰락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의 몰락으로 할리우드는 새로운 표현법과 이상주의를 이식받을 뻔한 기회를 놓쳤다. 로빈 우드는 “치미노의 이상은 현대 문명이 폐기처분해 버렸지만 여전히 숭고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에 대한 탄식을 만들어낸다”고 평했지만 치미노의 영화는 시대의 호흡을 놓쳐버렸고 그것은 할리우드의 큰 손실이 됐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