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8-10-22
- 성별남
소개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했던 도스 산토스는 아마추어 극단에도 참여하면서 좌파적인 문화운동에 투신했다. 이미 조지 아마도나 그라실리아노 라노스 같은 브라질의 대표적인 작가 대열에 낀 그는 이때부터 열성적인 영화마니아로 영화제작에 관심을 보인다. 1950년대에 그는 조감독으로 브라질 영화산업에 뛰어든다. 독학으로 16mm제작의 기초를 익힌 그는 감독뿐 아니라 배우, 편집, 제작, 각본까지 도맡아 브라질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영화들을 선보이게 된다. 그는 두번째 영화 <리오, 40도 Rio, 40 Graus>(1954)에서부터 네오리얼리즘적인 기법을 차용하여 브라질에 만연한 가난의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었고, 이 영화는 브라질영화사의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덧붙여 스튜디오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소자본 저예산 제작방식으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브라질영화계에 하나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사랑의 형식 Fome de Amor>(1968)과 <영매 Azyllo Muito Louco>(1970)에서부터 네오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 기법을 벗어나서 여러가지 예술적 형식을 실험하기 시작한다. 인류학적 픽션을 정치적 알레고리로 형상화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 <내 작은 프랑스 친구는 얼마나 맛있는가 Como Era Gosostoso O Meu Frances>(1971)는 투피남바 인디언의 식인 풍습을 통해 브라질의 식민지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문제작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서 도스 산토스는 브라질의 대중문화를 그려낸 인기있는 영화 네편을 만든다. <오굼의 부적 O Amuleto de Ogum>(1975)은 아프로 브라질 지역에 움반다 마법에 걸린 갱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며 <기적의 천막 Tenda Dos Milagres>(1979)과 <주비아바 Jubiaba>(1987)는 조지 아마도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이었다. <Na Estrada da Vida>(1980)는 인기있는 국민가수 듀엣의 실제생활과 상상의 모험을 섞어놓은 흥행작이었다. 이후 그라실리아노 라모스의 소설을 각색한 <황폐한 삶 Vidas Secas>(1963)은 시네마노보 운동의 이정표로 가뭄과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에 맞서는 한 소작인 가족의 삶을 그려낸 걸작이기도 하다. <감옥의 기억 Memorias Do Cicere>(1984) 역시 라모스의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자신의 불법 투옥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도스 산토스는 자국영화를 지켜내고 육성하려는 강한 의지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브라질영화계의 대부로 통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대표적인 국민감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