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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미넬리 (Vincente Minnelli)

1903-02-28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3-02-28
  • 사망1986-07-25
  • 성별

소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전성기를 살았던 감독들 가운데, 빈센트 미넬리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번성을 누리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인 감독 중 하나였다. 그는 <파리의 아메리카인 An American in Paris>(1951) <밴드 왜건 The Band Wagon>(1953) 등 뮤지컬의 걸작을 연출한 감독으로 이름이 높지만,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도 당대의 빼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넬리는 스탠리 도넌과 함께 뮤지컬의 대가로 쌍벽을 이루면서 MGM이라는 ‘대기업’과 26년간이라는 유례없는 장기계약을 맺고 영화를 만들어준 성공한 직업감독이었고, 그러면서도 시스템 안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의 작품세계를 지킨 감독이었다. 그러나 당대에는 개인적으로 감독으로보다 당시의 최고 스타였던 주디 갤런드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고, 이 때문에 그녀와 헤어진 상처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빈센트 미넬리는 감독이 되기 위한 끼와 조건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미넬리는 아역배우로서 형제들과 함께 ‘미넬리 브러더즈’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던 엔터테이너 집안의 아들이었다. 성장하여 시카고 예술학교를 졸업한 미넬리는 한동안 브로드웨이의 세트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및 음악감독으로 실제 경험을 다진 후, 1940년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나중에 미넬리가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요, 미장센의 대가로 인정받은 데에는 이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제작 경험이 녹아 있음은 물론이다.

처음 할리우드에서 미넬리의 재능을 높이 산 곳은 파라마운트였다. 그러나 파라마운트와의 계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곧이어 MGM으로 옮긴 후부터 <하늘의 오두막 Cabin in the Sky>(1944)을 필두로 주옥같은 뮤지컬의 명편들을 내놓는다. 미넬리의 영화는 컷과 컷이 연결됨으로써 의미가 생성되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지극히 양식적인 세트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연기자들의 춤과 노래가 그들의 동작 선과 함께 움직이는 단절이 없는 카메라로 유명하다. 때로 카메라는 연기자들과 함께 섞여 청중의 호흡을 대신한다. 전체적인 시각적 구성의 통일에 따른 복잡함과 색상과 조명의 표현적인 사용은 그의 작품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었다.

미넬리의 가장 뛰어난 대표작인 <파리의 아메리카인>(1952)은 전형적인 미넬리의 특징을 형상화하고 있다. 제목과 동일한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이 흐르는 20분간 지속되는 정교한 백일몽의 발레 시퀀스에서, 변화하는 무대장치는 여러 화가들― 르누아르, 루소, 툴루즈, 로트레크, 뒤피, 반 고흐, 마네― 의 양식들로 이루어졌다. 그의 예술적 세계 안에서 역동성의 극치를 이루는 진 켈리의 무용은 미국적인 힘과 우아함을 가지고 각각의 화가들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감정을 재현하게 된다. 미넬리의 재능은 드라마에서도 발휘되었다. <보봐리 부인 Madame Bovary>(1949)은 문학작품을 다루는 그의 솜씨를 보여주었고, 세트는 할리우드에서도 손꼽는 것이었다. <악당과 미녀 The Bad and the Beautiful>(1952)는 할리우드의 이면을,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열정의 인생 Lust for Life>(1956)은 가장 뛰어난 예술전기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악당과 미녀>는 어떤 면에서 <시민 케인>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영화는 할리우드의 제작자 조너선 실즈에 관한 이야기로, 영화의 인물과 사건 중 많은 부분이 사실과 소문에 근거한 것이었다. 영화는 황홀한 매력과 야망, 불신과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약점, 할리우드의 성공과 관계된 부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전반적으로 로 키의 색조와 강한 조명의 대조에 의해서 놀랄 만한 흑백화면이 환상의 창조에 공헌한다.

<열정의 인생>은 미넬리가 선호하는 와이드 스크린의 컬러영화였다. 영화의 상당부분은 반 고흐가 살았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의 지역에서 현지 촬영되었고, 실제 풍경으로부터 유명한 그림으로 그리고 다시 풍경으로 옮겨가는 영상은 명료한 감수성과 이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영화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할리우드의 가장 가치있는 표본의 하나이기도 했다.

<밴드 왜건 The Band Wagon>과 <지지 Gigi>는 미넬리가 마지막으로 완전히 성공을 이룬 뮤지컬의 수작이었다. <밴드 왜건>은 연극인들에 관한 영화로 그곳에 만연해 있는 이기주의는 비록 풍자적이어도 일년 전 미넬리가 보여주었던 <악당과 미녀>에서보다 훨씬 관대하고 애정에 넘치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의 제목 <밴드 왜건>은 1931년 주인공 프렛 아스테어가 주인공으로 나온 브로드웨이의 시사풍자극이기도 했다.
<지지>로 빈센트 미넬리는 9개의 아카데미를 받는다. 이 작품은 제작자 아서 프리드 그룹에서 보냈던 미넬리의 초기 작품들과 유사한 공통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여전히 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미넬리의 기호, 엘런 제이러너의 각본, 레슬리 캐론 주연, 그리고 컬러, 와이드 스크린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넬리는 코미디에서도 스펜서 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공연한 <신부의 아버지 Father of Bride>(1950), 루실 볼을 기용한 슬랩스틱 코미디 <기나긴 트레일러 The Long, Long Trailer>(1954) 등의 수준작을 남기는 등 거의 종횡무진으로 시대와 장르를 주름잡았다. 미넬리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 대부분은 예술과 인생을 함께 다룬 것이다. 예술과 연관된 인생, 그리고 영화가 이루어놓은 현재에 대한 것을 영화의 존재 앞에 뚜렷이 반영한다. 심각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강렬한 감정의 작용을 증폭시키고 강화시키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그의 뮤지컬들을 일종의 창조의 경지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의 삶에 대한 영화적 진술은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통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그러나 우아하게 옮겨갔다. 개인적으로는 주디 갤런드와 이혼 등 행복한 삶 자체는 그를 빗겨갔지만, 그의 영화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삶에 관한 그 나름대로의 해석을 보여준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간 긴장을 조성하고 영화와 삶과의 관계에 반성적 비판을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에 대한 환상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1976년 주디 갤런드 사이에서 낳은 딸인 라이자 미넬리와 잉그리드 버그만을 출연시킨 은퇴작 <시간문제 A Matter of Time>를 내놓은 후 조용한 만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