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9-00-00
소개
조셉 로지는 할리우드 출신이지만 뛰어난 유럽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할리우드에 휘몰아친 50년대에 할리우드를 떠난 유명감독 중 영화경력을 꾸준히 이어갔으며 작품세계에 일가를 이룬 감독으로 로지에 필적할 이는 없다. 60년대 중반부터 타계하기까지 로지는 유럽의 가장 훌륭한 영화감독이었다. 로지의 영화는 정교한 촬영과 편집으로 유미적인 단아함을 풍기지만 좌파적 정치관이 배어 있는 대단히 지적인 주제를 진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09년 미국 라 크로세에서 태어난 로지는 하버드대학 영문학 학위를 받은 뒤 뉴욕에서 연극일을 했다. <리빙 뉴스페이퍼>라는 정치적인 연극집단에서 활동했던 로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아 부르주아 사실주의보다는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반사실주의 미학을 실천했다. 연극일 틈틈이 영화에 관심을 보인 로지는 35년에 옛 소련으로 건너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에게 사사받았고 38년부터 록펠러 재단에서 돈을 대는 교육용 기록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로지의 첫 장편극영화 <녹색머리의 소년 The Boy with Green Hair>(1948)은 전쟁에서 받은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파랗게 변해버린 한 소년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청색공포증이 소재였으며 반전 주제를 말하면서도 심리분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51년까지 로지는 다섯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왕성한 생산성을 과시했다. 모두 겉으로 보면 평범한 할리우드 장르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적인 관점에서 진보적인 영화들이었다. <무법 The Law-less>(1950)은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멕시코계 미국인의 얘기를 다룬 스릴러였고 <빅 나이트 The Big Night>(1951)는 10대들의 광폭한 범죄를 도덕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게 바라본 작품으로 전투적이지 않지만 좌파적인 관점이 농후했다. 로지가 미국 시절에 만든 마지막 작품은 프리츠 랑 영화의 리메이크인 <M>으로, 매카시즘이 몰아치던 당시의 정치적 광란 상태를 암시하는 집단 히스테리를 반영했다. 그리고 곧 로지는 할리우드의 빨갱이를 색출하려던 매카시 의원 일당의 견제를 받았다. 매카시는 옛 소련 시절에 로지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밑에서 공부한 경력을 문제삼았는데 로지는 의회 증언을 거부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할리우드를 떠나 유럽에서 활동했다.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각본을 쓴 <하인 The Servant>(1963) 이후 로지와 핀터는 <돌발사고 Accident>(1967)와 <중개인 The Go-Between>(1971) 등의 걸작을 발표했다. 세 작품은 로지 스타일의 정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저택 안에서만 전개되는 <하인>에서 영화 초반에 자주 나오는 집안 장소는 거실과 복도다. 하인 바레트와 애인 베라는 아래층 부엌에 거주하고 있다. 주인 토니가 거주하는 2층이 권력과 특권을 나타낸다면 아래층의 부엌은 2층의 권력이 짓누르는 아랫것들의 연약함을 대변하는 장소. 그런데 바레트의 애인 베라와 주인 토니가 관계를 맺고 난 후부터 위계관계는 뒤바뀐다. 성적으로 무능한 토니는 하층계급의 그 왕성한 생명력 앞에 위축당한다. 그리고 그 심리적 위축감은 곧바로 이 집안 내부의 위계관계에 자그마한 변화를 일으키며 하인 바레트가 주인 토니를 압도할수록 계단을 오르내리는 토니와 바레트의 상하 위치는 조금씩 역전되며 궁극에 바레트는 다른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내려다보는 각도로 촬영되어 가장 하인답지 않은 인물로 등장한다. <트로츠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Tro-tsky>(1972)과 <인형의 집 A Doll’s House> (1973) 등의 영화로 만년의 명성을 이어가던 로지는 76년 이후 프랑스로 이주해서 영화를 찍었는데 알랭 들롱이 제작하고 주연한 <미스터 클라인 Mr. Klein>(1977)은 이 시기의 걸작이다. 냉정한 미술상 로베르 클랭이 우연히 이름이 같은 유대인으로 신분을 오해받으면서 미묘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을 그려낸 이 영화 이후에 만년의 로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으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로지의 필생의 염원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영화로 만드는 것. 그러나 해럴드 핀터가 각본을 탈고했는데도 로지는 결국 영화를 찍지 못하고 85년 세상을 떠났다. 로지는 일생을 야인으로 살면서 국외자의 눈으로 세상을 예리하게 영화로 담았다. 그의 영화의 주제는 진보적인 좌파의 정치관을 반영했지만 이야기 형식도 다차원의 열린 구조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앞서가는 것이었다. 조셉 로지의 영화세계는 인물의 심리와 현실의 복잡한 층위를 고루 포괄하는, 현대 영화가 가닿을 수 있었던 세련된 유산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b><font size=4><FONT COLOR="666666">[씨네21 영화감독사전]</font></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