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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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명István Szabó
- 다른 이름Stephen Taylor;이스트반 사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8-02-18
- 성별남
소개
이스트반 자보는 헝가리와 독일이 공동제작한 <메피스토 Mephisto>(1981)로 삽시간에 세계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메피스토>에 이어 <레들 대령 Colonel Redle>(1985) <하누센 Hanussen>(1988) 등 서구자본과 합작한 80년대의 자보 작품들은 다 평판이 좋았다. 60년대 중반부터 활동했고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으니 자보는 뒤늦게 국제적으로 알려진 편이었다. 그때까지 헝가리영화의 대명사였던 미클로시 얀초 감독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자보는 꾸준히 헝가리 사람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작품을 찍었다. 자보는 스탈린주의의 세례를 받고 자라나 57년 헝가리 민중봉기의 좌절을 지켜보고 그뒤에는 또 스탈린주의를 버려야 했다. 이념의 격동기를 겪은 동유럽 예술가의 혼란스런 현실관이 그의 영화 안에 녹아 있다.
이스트반 자보는 3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었던 자보는 나치의 인종청소를 피해 44년에서 45년까지 부다페스트의 한 다락방에서 숨어지냈던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선대부터 물리학으로 유명한 가문의 후손이었던 자보는 전쟁이 끝나자 물리학 교육을 받았지만 16살 때 학생연극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연기를 하려 했으나 자질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후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부다페스트 연극영화 아카데미를 61년에 졸업했다.
자보 스스로 정의하는 자신의 초기 영화는 ‘내 동년배 세대의 체험을 적은 일기’다. <아버지 Father>(1966)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발랄한 영상으로 잡아냈고 <사랑에 관한 영화 A Film about Love>(1970)는 56년 헝가리 봉기를 다루고 있다. <25명의 소방관의 거리 25 Firemen’s Street>(1974)는 나치 점령기의 기억을 표현했다. 60년대와 70년대 자보 영화는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향을 받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이었으나 점차 드라마가 위주인 사실주의영화로 방향을 바꾼 것. 그러나 자보 영화의 주제는 일관되게 ‘어떤 강력한 힘이 세상을 다스리는 세상에서 자기의 안전을 지키려는 개인의 갈등’을 다뤘다.
<메피스토>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자보 영화의 결정판이다. <메피스토>는 줄거리, 주제, 스타일과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가 맡은 주인공 회프겐의 연기 조화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의 소설이 원작인 <메피스토>는 배우 헨드릭 회프겐의 성공과 몰락을 담았다. 회프겐은 원래 함부르크에서 민중극을 공연하던 배우였는데 명성이 높아지면서 도라 마틴이라는 배우의 도움을 받아 베를린으로 간다. 베를린에서 회프겐은 자기 연기를 숭배하는 선전부 장군(요제프 괴벨스를 모델로 한 인물)의 총애를 받는다. 회프겐의 출세가도에는 가속도가 붙고 마침내 국립극장의 예술감독 자리에 오른다. 동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베를린으로 왔던 회프겐은 전혀 딴판인 사람으로 변한다. 유대인 친구를 배신하고, 나치에 반대해 망명한 그의 아내와 헤어지고, 무명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흑인 애인을 저버리면서도 자신을 비정치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그리고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 연기로 생애의 절정을 맞이한다. 장군이 ‘나의 메피스토’라고 말할 정도다.
회프겐은 자신은 배우니까 정치에는 관심없는 장님이라고 스스로 속이면서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인 자보는 회프겐의 그런 위선을 비웃는다. 총리는 새로 지은 스타디움에 회프겐을 데려가 운동장 한가운데 세우고는 회프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회프겐은 눈을 뜨지 못하는데 장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회프겐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난 그저 연극배우일 뿐인데….” 이 장면은 특출한 조명효과로 충격을 준다. 스포트라이트의 강렬한 빛이 점점 화면을 밝게 비추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환해졌을 때 끝자막이 오른다. 회프겐의 타락한 자아를 암시하기 위해 자보는 영화 내내 역광 조명 효과를 썼다. 회프겐이 타락하는 만큼 빛의 강도도 세진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황실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황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다 스러져가는 레들 대령의 일대기를 담은 <레들 대령 Colonel Redle> (1985)에서도 레들의 내면을 비추는 장치로 조명이 효과적으로 쓰였다. <메피스토> <레들 대령>과 히틀러 시대의 마술사 이야기를 담은 <하누센 Hanussen>(1988)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중유럽 3부작’은 자보 경력의 정점이었다.
이후 자보는 파리에서 <탄호이저>를 지휘하러 온 동유럽 오페라 지휘자의 갈등을 담은 <비너스 Meeting Venus>(1991), 90년대 헝가리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준 <엠마와 부베의 사랑 Sweet Emma, Dear Bobe-Sketches, Nudes>(1992) 등을 만들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묘사한 <비너스>는 자본에 포위당한 예술작업의 조건을 쓸쓸히 성찰하는 점에서 자보의 후기 영화를 요약하는 자전적 초상이기도 하다.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보여줬던 자보 영화는 동구권 역사 속에서 망가져가는 인간을 집요하게 탐구한 ‘중유럽 3부작’으로 전성기를 지났다. 그러나 자보의 영화는 잔인하리만치 사회 시스템에 좌절해 몰락하는 인간의 조건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역동적인 초·중기작을 거쳐 후기작으로 오면서 볼 수 있는 자보 영화의 비관적인 정조는 그것 자체로 곧 쇠락한 동유럽영화 시스템에서 작업하는 예술가의 초상이며 시스템과 개인의 대립이라는 자보 영화의 주제를 스스로 요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