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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1974-11-11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9

/

네티즌7.7

| 수상내역 5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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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어명Leonardo Wilhelm DiCaprio
  • 다른 이름레오나르도 빌헬름 디카프리오
  • 직업배우
  • 생년월일1974-11-11
  • 성별
  • 신장/체중183cm
  • 학교존 마샬 고등학교

소개

지금까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올린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1997)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어주었지만, 그 성공은 그가 호평을 받았던 일련의 어려운 역할들을 통해 차근차근 일구어낸 것이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의 혈통을 받은 디카프리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만화책 도매업자였고 어머니는 법무 보조원이었다. 그가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임신 중이던 그의 어머니가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뱃속에서 그의 발길질을 느꼈고 그래서 그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는 텔레비전 극 [커져가는 아픔](1991~1992)에서 집 없는 소년 역을 맡아 큰 성공의 기회를 얻었고 이어서 찬사를 받은 몇 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한 <길버트 그레이프>(1993)로 겨우 열아홉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디스 보이스 라이프>(1993)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연기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1996)은 그를 핀업 스타로 만들었고 <타이타닉>은 그런 그의 입지를 정상까지 밀어올렸다. 그는 우디 앨런의 <셀러브러티>(1998)에서 또한 그는 자신의 스타덤을 풍자하기도 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알렉스 갈란드의 베스트셀러를 대니 보일이 영화화한 <비치>(2000)에 출연했지만 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의 스티븐 스필버그, 특히 <갱스 오브 뉴욕>(2002)과 <에비에이터>(2004), <디파티드>(2006) 세 편을 함께 한 마틴 스콜세즈를 비롯하여 할리우드의 가장 막강한 감독들과 함께 작업했다. 또한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로 세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셔터 아일랜드>(2010)등에 출연, 2010년<인셉션>(2010)으로는 그의 경력에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2010년 이후, 디카프리오는 “아피아 웨이 프로덕션”이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고, <가드너 오브 에덴>(2007), <오펀: 천사의 비밀>(2009), <레드 라이딩 후드>(2011) 등의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에서 악역 ‘캘빈 캔디’ 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으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 ‘제이 개츠비’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의 ‘조단 벨포트’를 연기하며, 인간 본성의 탐욕적인 모습과 뇌성마비 환자의 모습등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2014년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