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존 슐레진저 (John Schlesinger)

1926-02-16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6.8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6-02-16
  • 사망2003-07-25
  • 성별

소개

대표작 <달링> <미드나잇 카우보이> <사랑의 여로>
비디오 출시작 <미드나잇 카우보이> <사랑의 여로> <부서진 세월> <마라톤맨> <양크스> <홍키 통크 프리웨이> <팔콘과 스노우맨> <빌리버스> <퍼시픽 하이츠> <이노센트>

존 슐레진저는 꽤 심각한 사회의식이 담긴 영화를 만들면서도 관객이 부담없이 감동을 느끼게 하는 데 달인이었다. 연극무대와 기록영화분야에서 기량을 닦았고 60년대 초반에는 영국영화계의 떠오르는 희망이었으며 60년대 후반 이래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슐레진저 영화의 전매특허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정확한 상황 묘사.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마라톤맨>에서 슐레진저와 같이 일한 배우 더스틴 호프먼에 따르면 슐레진저는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천재’다. 그 비결은 슐레진저가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을 믿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식으로 사물을 재는 사람이 아니다. 책도 잘 읽지 않는다. 대신에 거리나 공원에 나가 사람들을 관찰하길 즐긴다.”

26년 영국 런던에서 소아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슐레진저는 연극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살 때 소형 무비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면서 영화에 흥미를 느꼈으며 옥스퍼드대학 재학 시절에는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연기 연출의 기초수업을 쌓았다. 옥스퍼드 재학중에 친구들과 함께 단편영화 몇편을 만들었는데 <하이드 파크의 일요일 오후>라는 단편영화는 BBC 방송망을 타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삼아 슐레진저는 텔레비전에서 일하며 기록영화 20여편을 찍었다. 워털루역의 일상을 담은 <기차역 Terminus>(1961)은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과 영국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슐레진저의 극영화 데뷔작 <어떤 사랑 A Kind of Loving>(1962)은 무료한 일로 먹고살아가는 젊은 노동자 청년이 여자친구가 임신하자 애정없는 결혼관계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며 당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삶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담은 사실주의풍 영화다. 슐레진저는 이 영화로 50년대 말부터 영국영화계에 바람을 일으킨 이른바 ‘프리시네마’ 영화의 리얼리즘 정신을 이어받은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 영화 역시 그해 베를린영화제의 금곰상을 받았다.

줄리 크리스티를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나게 한 <달링 Darling>(1965)은 슐레진저가 처음으로 오리지널 각본으로 만든 영화다. 줄리 크리스티는 신분 상승에 안달이 난 깜찍한 아가씨 다이아나 스콧으로 나오고 지적이고 신사적인 라디오 진행자를 팽개치고 세련됐지만 얄팍한 광고인과 연애하다가 결국 이탈리아 왕자를 잡아 팔자를 고친다. <달링>은 연애영화의 틀을 빌려 한창 계급갈등 문제로 들썩거리던 런던의 현실을 비꼰 고급 코미디영화.

<달링> 이후 슐레진저는 토머스 하디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Far from the Madding Crowd>(1967)를 찍었고 그뒤 미국으로 가서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1969)를 연출했다. 슐레진저의 할리우드 데뷔작 <미드나잇 카우보이>는 크게 성공했다.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심의에서 당시 통념으로 대담한 성묘사 때문에 X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X등급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존 보이트가 연기한 주인공 존 버크는 자기의 건장한 몸만을 믿고 남창으로 성공하겠다며 뉴욕에 온 촌뜨기다. 어리숙한 버크는 뉴욕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기꾼 랏초에게 그나마 갖고 온 돈을 몽땅 사기당하고 거지로 전락한 생활을 꾸리다가 랏초와 재회해 다시 남창일에 나선다. 두사람은 플로리다에서 한바탕 놀 계획을 세우지만 플로리다행 버스 안에서 병든 랏초는 눈을 감는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 슐레진저는 버크의 의식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고향의 기억을 수시로 짧은 호흡의 화면으로 편집해 끼워넣는, 60년대 실험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뉴욕 거리를 기록영화 수법으로 스케치한 화면을 끼워넣는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살벌한 대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박력있게 연기한 메소드 연기의 수재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도 뛰어났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성공으로 일종의 보너스삼아 만든 <사랑의 여로 Sunday, Bloody Sunday>(1971)는 슐레진저의 할리우드영화 가운데 가장 개성이 강한 예술영화였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디며 연애에 빠지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담히 관찰한 이 영화는 폴린 카엘의 표현대로 무너지는 일상에 관한 일종의 영화적 탄원이었다. 슐레진저는 이 영화가 ‘비상업적인 실내악 소품’이며 ‘내가 가장 잘해낼 수 있었던 영화’라고 자평했다. <사랑의 여로> 이후로도 대체로 슐레진저의 70년대 영화들은 수준이 고른 편이었다. <부서진 세월 The Day of the Locust>(1975)은 명성과 부가 손쉽게 보장되는 열락의 땅을 꿈꾸며 할리우드에 입성한 사람들의 허망한 삶을 두루 비판했고 <마라톤맨 Marathon Man>(1976)은 우연히 나치 잔당의 추적을 받으며 고군분투하는 마라톤 주자의 일화를 담은 스릴러영화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의 슐레진저의 영화들, <빌리버스 The Believers>(1987) <퍼시픽 하이츠 Pacific Heights>(1990) 등은 사회적 메시지와 대중적 공명을 함께 전해주는 슐레진저의 명성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슐레진저는 프리시네마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로 상업영화에 꽤 근사한 충격을 주는 영화를 발표했지만 그 자신의 예술적 야망을 장르로 실험하려는 시도를 끝까지 완성하지는 못했다. 예술가에서 장인으로 변해간 전형적인 감독이지만 감독의 이름을 신뢰하게 되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2000년 마돈나가 출연한 <넥스트 베스트 씽>을 연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