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배우
- 생년월일1941-01-14
- 성별여
소개
1960-70년대 가장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의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의 본명은 도로시 페이 더너웨이. 군인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여러 기지들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플로리다 대학에 들어갔다가 보스턴 대학에서 예술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62년에 링컨 센터의 레퍼터리 극단에 들어가 장기간의 연극무대 경험을 쌓았고 영화로도 유명한 <4계절의 사나이>와 아서 밀러의 <타락 이후> 등의 무대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67년에 영화 데뷰를 한 그녀는, 여배우치고는 늦은 데뷰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명연으로 첫 주연작에서 일약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비평가들과 관객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로 꾸준한 활약을 보인 그녀는, 1974년 <차이나타운>으로 일생 일대의 명연을 보였으나 아카데미상에서는 후보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2년만인 1976년에 마침내 <네트워크>에서 냉정하기 그지없는 방송국 간부로 아카데미상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많은 작품이 소개된 배우라고 하겠는데, 그녀가 주로 개성이 강한 연기파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만큼 그녀의 연기나 개성이 우리나라 관객들의 정서에도 제법 들어맞을 만큼 동양적인 면모도 갖추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때로는 차가울 정도로 이지적이고 냉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운명에 흔들리는 가녀린 여인 역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뜨거움과 차거움이 섞인 개성이 그녀의 매력이며, 여기에 뛰어난 연기력이 그녀를 정상으로 올려놓았다고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