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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프 샤힌 (Youssef Chahine)

1926-00-0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5

/

네티즌6.9

기본정보

    }
  • 원어명Youssef Chahine
  • 다른 이름유세프 샤인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6-00-00
  • 사망2008-07-28
  • 성별

소개

대표작 <땅> <참새> <알렉산드리아… 왜?> <이집트인 이야기>
비디오 출시작 없음
유세프 샤인은 제3세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이집트의 국민감독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사회 문제를 애국적인 관점에서 다루지만 그가 동의하지 않는 정부 시책에 대해서는 언제든 비판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랍영화계의 거목이다.
그의 절충주의적인 영화만들기나 코스모폴리탄적인 태도는 다양한 교육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알렉산드리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민족주의정당인 와프드당을 지지하는 명망있는 변호사였다. 기독교식 교육을 받았고, 미션계 학교에서 수학 후 알렉산드리아대학 재학중에 부모님을 설득, 미국 LA의 패서디나연극학교에서 2년간 드라마를 공부했다.
그가 돌아올 당시 이집트는 영화산업의 기초가 다져지는 시기였고, 1948년 고국으로 돌아와 이집트영화의 개척자인 알비시 오르파델로 프로덕션에서 이집트영화계를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데뷔작부터 이집트의 근대화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에 관한 물음을 던지면서 이집트의 사회정책을 비판하는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었고 1963년에는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나세르의 요청으로 대작 <살라딘 El Naser Salah el Dine>을 감독하기도 한다. 그러나 1965∼67년에 이집트 정부와의 갈등으로 시리아로 망명했으며 <참새 El Asfour>(1972)는 이 시기의 작품 중 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1978년 <알렉산드리아… 왜? Iskindria… Leh?>는 사라져가는 옛 이집트에 관한 생생한 묘사와 자전적 요소를 뒤섞은 펠리니와 보브 포스의 융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를 일약 세계에 알린 명작이다. 영화는 1942년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결국은 자신들의 땅에서 영국인을 몰아내주리라고 고대했던 롬멜군대를 기다리는 이집트인들을 그려내고 있다. 영국 군인과 이집트의 애국자들, 귀족들과 부르주아들, 열정적인 젊은이들과 부패한 기성세대를 전쟁과 러브스토리 속에 엮어 넣으면서 지나친 국수주의와 시오니즘을 조롱어린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할리우드 뮤지컬과 런던 전쟁박물관에 소장된 뉴스릴의 장면들을 교차편집한 기법은 명확한 분위기의 대조로 영화의 대담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샤트야지트 레이나 레스터 제임스 피어스 같은 1950년대 등장한 주요한 제3세계 영화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그후에 상업영화에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샤인은 서구의 비평가로부터 경멸받던 이집트의 상업영화들을 거부하지 않고 상업영화의 관습을 따르는, 즉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고 흥행이 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스타일이 담긴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다소 개인사적이고 사다트의 정책을 옹호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결코 접근하기 힘들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법이 없었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려 했던 그의 노력은 제3세계 영화의 한 모범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