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속 어린 소녀들의 눈동자는 공허한 듯 맑다. 희로애락에 연연하지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긴장감 등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대강의 스케치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캔버스에 붓을 대고 그려낸 담백하고 부드러운 선과 맑은 색채, 하얀 여백의 트라이앵글이 만들어낸 맑은 시정은 그대로 보는 이를 어린 날 추억의 한 모퉁이로 데려갈 듯 생생하다.<작은 새가 온 날>과 <이웃에 온 아이>는 일본의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와사키 치히로의 시화집 가운데 1차분으로 발간된 책. ‘치히로 아트북 시리즈’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그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일본의 메이저출판사인 지광사를 통해 1년에 1권씩 발표했던 창작그림책이다.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화가’라는 애칭에 걸맞게 그녀의 작품들은 스케치와 유화 등 서양식 기법과 수묵담채, 서예 등 동양식 기법이 접목해 만들어진 독특한 질감과 색감이 돋보이는
이와사키 치히로 시화집 <작은 새가 온 날> <이웃에 온 아이>
-
신문기자라는 자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체로 주의를 요한다. 입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외모가 별로 아니라서 찍히지 않게끔 역시 주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몸조심을 더 해야 한다. 모두 현장에서 뼈대가(아니 어깨가) 굵은 경우라 술김에서 어영부영 시비걸다가는 얻어맞고도 동정은커녕 미련하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하여, 신문사를 가는 일이 있으면 빈자리가 있더라도 혹시 사진기자, 특히 사진부장 자리가 아닌가 꼭 확인해보고 앉는 게 좋다.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회장)는 그 이름도 전설적인 허바허바사진관 사진사 출신으로 노조운동을 하다 쫓겨난 뒤 70년 말부터 데모와 단식, 그리고 분신자살 현장을 누비며 스스로 옥고도 치르면서 사진을 찍어왔으니 정말 사진기자 중 사진기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개)민주화운동 사진 중 50% 이상이 그의 손과 눈을 거쳤다. 청각장애인에 고희가 코앞인데 경찰과 사복형사들의 만류를 어영부영 못 들은 척(사실 못 듣는다
박용수 상 받던 한글날 국립극장
-
서기 2024년,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한 소녀의 이야기. 과연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우리의 만화적 상상력을 빌려보자. 이미 두어번 외계의 침공을 받아 황폐화된 지구, 수백층 고층 빌딩 사이에서 튀어나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정, 명왕성을 지나자 은빛 날개를 접고 웜홀을 통해 은하 저편으로 순간이동하는 거대 로봇…. 하지만 이처럼 상식적인 미래에 대한 우리의 추측은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미래와 그것이 가져올 눈부신 변화가 아니라, 그때쯤에는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할, 그래서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한 과거의 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 <트윈 스피카>(ふたつのスピカ, 세주문화 펴냄)는 신예 만화가 야기누마 고우(柳沼行)가 잡지 <코믹 플래퍼>(Comic Flapper)에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야기누마는 데뷔작 ‘2015년에 쏘아올린 폭죽’과 그뒤의 단편들에서 일본 최초의 유인우주탐사로켓 ‘사자
야기누마 고우의 <트윈 스피카>
-
<Barenaked> 제니퍼 러브 휴이트좀바 레코드 발매<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의 청춘스타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세 번째 음반. 배우가 가수를 겸업하면 인기와 유명세에 기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휴이트의 음반은 기대 이상이다. 어려서부터 노래하길 즐겼다는 그는 TV와 영화에서 경력을 쌓는 한편, 95년에 이미 가수로 데뷔한 바 있다. 메레디스 브룩스와 함께 작업하고, 몇곡에 직접 싱어송라이터로 참여한 신보는 경쾌하고 화사한 <Barenaked>의 미성부터 펑키한 <Avenue Of The Stars>까지를 소화하는 가창력, 얼터너티브와 록의 색채가 짙어진 음악이 한층 성숙해 있다.<시나리오>산수아 펴냄 / 1만원시나리오를 통해 ‘영화를 읽는’ 계간지 창간호. 이번호에서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춘사 나운규 100주년 기념영화 <아리랑> 복원 시나리오 등 4편의 시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음반 외 문화단신
-
-
<난타 O.S.T.>유니버설 발매말이 필요없는 소리의 리듬의 퍼포먼스 <난타>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 <난타>는 97년에 초연됐으며, 주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 요리사의 하루와 결혼피로연 준비를 내용으로 한다.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쉬리> 등의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이동준이 작곡을 맡은 음악은 놋그릇, 국자와 접시 같은 주방도구부터 빗자루, 석유통 등 갖가지 물체를 활용한 갖가지 사운드의 향연과 록, 아프리칸 비트,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신명나는 음악을 들려준다.<보이는 어둠>윌리엄 스타이런 지음문학동네 펴냄6800원베스트셀러 철학서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 윌리엄 스타이런이 1985년 우울증으로 자살직전에 이르렀다가 그것을 극복하고 “눈부신 세상”으로 귀환한 경험을 써내려간 책. 스타이런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은 “절망을 넘어선 언어 너머에 있는 어둠”이다. 언어로 표
난타 OST 외 문화단신
-
고세현이 창작과비평사 사장이 되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어이쿠야, 이젠 놀러가서 개기지 못하겠군…. ‘창비’는 나이 스물여섯에 철딱서니는 그보다 훨씬 적었던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어른들이 있고, 그래서 어른 만나는 재미로, 혹은 어른한테 엉기는 재미로, 술을 얻어먹어도 뭔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재미로 다니던 곳인데 후배가, 그것도 ‘말짱’하고 술도 잘 안 먹는, 깡마르고 얼굴 허연 안경테 사회과학도가 사장에 앉았으니 ‘든든한’ 거점이 하나 없어진 것 아닌가. 그런 큰일이 없었다. ‘치열한 백수’ 생활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정신이 ‘말짱’해지기 전까지, 오늘은 동남방으로 가야 안주좋고 인심좋고 대접좋고, 북서 방향으로 가면 별 볼일 없다, 술 몇잔에 핀잔뿐이다, 그렇게 전파가 자동수신되는 나다.그런데, 고세현은, 젼혀 예상 밖이었다. 기획-편집은 물론 영업까지 과학적으로 꾸려나가는 거야 원래 장기니까 혀를 차면 그만이지만, ‘접대’가 조직적일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 1999-2002
-
나는 자우림의 팬이다, 라고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정규음반 4장에 리믹스 음반, 라이브 음반까지 모두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외에는 한 일이 없다. 공연에 가본 적도 없고, 팬사이트에서 뭔가를 해본 적도 없고, 팬으로서 해야 할 무엇인가를 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팬’으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자우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쓴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고, 듣고, 음반을 산다. 그 탓에 글도 쓴다.나는 자우림을 좋아하고, 김윤아의 보컬을 좋아한다. 그건 내 취향이다. 나는 여성 보컬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전율을 느낀 것은 지금까지 짐 모리슨과 마이클 스타이프 정도밖에 없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늘 여성 보컬에 귀가 쏠린다.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을 달래주거나, 짜릿함을 안겨주는 것은 단연 여성 보컬의 힘있고 블루지한 음색이다. 80년대 대학가요제에서 등장했던, 여성 보컬을 앞세운 수많은 밴드나 그룹에 혹한 것도 그런
자우림 4집 앨범 <4>
-
옛날 영화들은 책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나 요새의 액션영화들은 게임의 흐름을 따라간다. 옛날 영화들은 만남 자체를 설명하지만 요새 영화들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옛날 영화들은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결국에는 어떻게 끝났는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그러나 요새의 영화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다음 싸움꾼을 만나듯, 만남은 우발적이다. 설명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만남/난관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일 뿐이다.최신의 액션영화 <트리플X>는 그렇게 주인공이 우발적으로 만난 게임의 대상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느냐를 영화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최근에는 공식적인 스포츠의 일부가 된 여러 가지 극단적 레저/스포츠의 분야들을 액션과 연결시키고 있다. 스카이다이빙부터 바이크 라이드까지, 미국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하릴없이 목숨거는 그 허공의 스포츠들 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딱 두 단어다. 하나는 스피드, 다음은 힘. 스피드와 힘이 실려 있는 음
<트리플X> O.S.T
-
아름다운 숲 속에 마을 하나가 있다. 스머프의 마을도 보노보노의 놀이터도 아니다. 예쁜 가게와 알록달록한 놀이동산이 있는 이곳은 실바니아 마을. 동물 가족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실바니아 패밀리>는 이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60부작 TV시리즈다. 화별 러닝타임은 2분으로, 오는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KBS TV유치원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특이한 것은 일본 에포크사의 캐릭터를 한국에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제작진 라인업도 든든해서, 코코엔터프라이즈가 기획 및 마케팅, 일신창업투자가 투자, 팡고 애니메이션이 제작을 담당한다. 감독으로는 <아름다운 시절>로 2000년 대한민국영상만화대전 대상을 수상했던 문제대 감독이 활약할 예정이다. 그동안 화제가 됐던 수많은 클레이애니메이션 광고 시리즈를 제작했다. 한편 시나리오는 <아장닷컴>의 오상민, 김희연씨가 맡았다. 5분가량의 영상은 이미
즐거우니 즐겁구나,<실바니아 패밀리>
-
<로보트 킹> 복간 프로젝트1970년대 한국 SF만화를 대표하는 고유성의 <로보트 킹>이 복간된다. 국내 고전만화의 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딴지일보>는 <로보트 킹>의 11부작 전체 시리즈 중 1부 탄생편 3권을 먼저 발간하기로 했다. <로보트 킹>은 외계인의 선진 기술로 만들어진 거대 로봇을 정의의 소년이 조종해 악당을 무찌른다는 전형적인 거대 로봇물의 설정을 따르고 있는데, <게타 로보> <자이언트 로보> 등 일본 로봇만화의 영향을 받고는 있지만 만화가 고유성 특유의 착상과 개그 터치들이 가미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복간본의 발간 형식은 최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내 만화 출판의 새로운 형태인 선주문 방식으로, 오는 10월6일까지 1천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로보트 킹의 설계도, 작품연보, 캐릭터 사전, 박무직의 오마주 만화 등이 들어 있는 <로보트 킹 설정 자료집>이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
-
곽상원의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간다>라는 만화는 웹진 코믹스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거칠고 조악한 데생에 흔히 따르게 마련인 엽기적 이야기 대신 따뜻한 감성이 특이하다. 초록배매직스의 인디코믹스 7번째 작품으로 2000년에 나왔다. 한국만화의 소중한 자산인 이두호의 <객주>는 바다출판사에서, 고우영의 <삼국지>는 북하우스에서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명료한 선’으로 대표되는 <땡땡>의 그래픽은 유럽을 대표하는 시각이미지며 문화적 아이콘이다. 많은 유럽 사람들이 멋진 모험소년 땡땡과 그의 충견 밀루를 사랑한다. 도서출판 솔에서 모두 5권이 2002년에 출판되었다. 우데르조와 고시니 콤비의 <아스테릭스>는 로마에 맞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현실문화연구에서 출판한 프라도의 <섬>은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작품이다. 이야기가 묘하
도서대여점과 만화시장 침체 유감
-
배두나 자신은 그런 직관 때문에 행복하기도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처음 나가본 CF 오디션. 계산없이 늘어져 있다가 “너 참 지루해 보인다”는 ‘평’을 들으며 메인 모델이 됐다. 연기를 계속하게 만들어준 <플란다스의 개>도 봉준호 감독의 “있는 그대로”라는 요구를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벌써 일곱편, 많이도 찍은” 지금은 가끔 걱정된다. “저는 정말 연기력에 자신이 없거든요. 나이 먹으면 어떤 모습일까 무섭기도 한데, 그래서 생각 안 하려구요. 연극하신 엄마도 연기 가르쳐달라고 조르면 아직 때가 안 됐다고만 해요. 경험이 쌓이면 눈이 떠질 때가 있겠죠.” 뉴욕에서 보낸 3주일의 휴가. 돌아다니는 것보다 가만히 쉬는 게 좋아 공원 벤치에 늘어져 있거나 자전거를 타고 놀면서도, 빨리 돌아가 일하고 싶었던 것은 그 깨달음의 시기를 앞당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저 너무 행복해 보여요? 남들이 얄밉게 보인다고 그러지 말랬는데. 쉽게 만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주세요.” 욕심이
조태일 시집 <식칼론>
-
지구를 지켜라! 거창한 외침이 들려온다. 한데 이게 웬일. 정작 지구 수호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는 주인공 병구 역의 신하균은 양봉할 때 쓰는 모자를 쓴 채 꿀병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꿀이 외계인의 침략을 막는 비밀병기인가 하면, 이것도 완전히 헛다리 짚는 얘기다.강원도 영월군 함백산 웃자락에 차려진 <지구를 지켜라!>의 촬영장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답게 늦여름 햇살만으론 시린 팔뚝을 가리기 어려운 곳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믿고 있는 병구가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강 사장(백윤식)을 납치한 뒤 벌이는 소동을 담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주배경인 이곳에는 1억2천만원을 들였다는 병구네 집 세트가 지어져 있었고, 벌통 50여개도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이날 촬영분은 강 사장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는 추 형사(이재용)가 병구를 의심하면서 대결을 펼치는 내용.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
콜드플레이 신보
-
<아메리칸 뷰티>로 일약 최고급의 감독 대열에 오른 샘 멘데스 감독의 후속작 <로드 투 퍼디션>은 갱스터 무비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할리우드치고는 비교적 진지하게 미국인의 삶을 바라본 역작이었다. 영국 태생이라서 그랬나,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샘 멘데스는 이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상을 탔다. 너무 미리 찾아온 명성을 등에 업고 만든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여전히 신인감독인 그에게는 과할 정도의 버젯과 캐스팅이다. 톰 행크스, 폴 뉴먼, 주드 로, 이렇게 세 명배우가 그의 영화를 위해 연기한다. 그가 이번에 마주한 시대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시대, 대공황의 시대이다. 감독은 청부살인업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최악의 시대를 거칠게 살아온 미국 사람들의 ‘거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감독은 오히려, 그 최악의 시대를 통해 미국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확인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또다시 냉정하다.음악은 <아메리칸
<로드 투 퍼디션>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