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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슈호의 <헬로우 블랙잭>의사라는 직업은 만화 주인공의 숙명인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극적인 능력의 소유자인 의사는 검객과 총잡이와 같은 살인청부업자의 정반대편에서 숱한 명작의 주인공들이 되어왔다. 전설의 명의(名醫) ‘블랙잭’의 이름을 단 사토 슈호의 <헬로우 블랙잭>(서울문화사 펴냄) 역시 그 반열에 끼기 위해 지금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 근래 보기 드문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국내에서도 점차 독자를 넓혀가고 있는 이 작품은 과연 새로운 의사만화의 전형이 될 수 있을까?의사만화에는 보통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블랙잭> <닥터K>와 같은 천재 외과의가 초인적인 능력으로 무수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프로페셔널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닥터 고토 진료소>와 같은 변두리의 따뜻한 의사생활을 그린 휴머니즘 만화다. <헬로우 블랙잭>은 그 두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대 의학계의 문제를
선생님,그럼 고래심줄로 꿰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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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위대한 선물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2년,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했다. 7년 만의 신작에서 하루키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돼… 너는 귀를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면 돼’라고 말한다. 그 세월 동안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일까? 그건 전혀 아니다. 여전히 하루키는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는 미세하게 변화했다. ‘사물이 계속 훼손되고, 마음이 계속 변하고,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도망치기를 원하는 심정은 동일하지만, 결국은 돌아간다. 세계의 폭력성은 여전하지만, 돌아가서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된다.<해변의 카프카>는 15살 생일을 맞은 소년의 가출에서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의 소년’이 되기를 원하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카프카라 짓는다.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고, ‘부조리의 파도가 밀려오는 해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해변의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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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신문의 만화담당 기자를 만났다. “윤태호씨의 <야후>가 20권으로 완간되었는데, 작가와 대담 한번 하시죠.” 순간 머릿속에 우아한 포즈(이를테면 낙엽이 지는 거리를 걷고 있는)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좋죠.” 짧게 답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전화가 몇번 오가고 날짜가 잡혔다. 7월16일.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다시 <야후>를 읽기 위해 책장을 뒤졌더니, 몇권이 빠진다. 16권부터는 아직 사지 못했다. 각각 2개의 공간으로 분리된 만화책장을 뒤져 이빨을 맞춰도 빠지는 권수가 많다. 다음날, 시내 대형 서점의 만화코너를 찾았다. K서점. 없었다. <야후>가 없었다. 그보다 만화매장이 더 넓다는 Y서점. 있다. 하지만 역시 이빨이 빠져 있다. 뒷부분 몇권을 채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다. 먼저 제일 큰 온라인 서점이다. 있다. 그런데 막상 주문을 하니, 5일 이후나 배송
풍자와 재담으로 감싸인 탁월한 서사,분투 끝에 구입한 <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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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죽어서 전설이 된 사람들이 있다. 3J라고 불리는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이 바로 그들인데, 60년대 록음악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고 찬란하게 산화해버린 이 전설의 인물들을 차치하고, 60년대 록음악을 거론하면서 자주 튀어나오는 이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에릭 클랩튼. 그의 초기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록(과 블루스)의 고전격인 음반들이 유니버설에서 재발매되었다(유니버설에서는 최근 마스터피스 시리즈를 통해, 그간 절판되어 구입하기 힘들었던 24장의 걸작 앨범들을 재발매했다).60년대는 에릭 클랩튼이 솔로로 활동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의 활동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위드 에릭 클랩튼, 블라인드 페이스, 데릭 앤 더 도미노스, 그리고 크림이라는 이름이다. 에릭 클랩튼은 각각의 밴드에서 한두장 정도의 앨범에만 참여했지만 매번 ‘슈퍼밴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70년대 초반, 약물중독으로 침체기를 보내던 그는 74
백문(百文)이 불여일청(不如一聽),유니버설 명반 재발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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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이니 <내 남자 친구 이야기>의 연재가 끝날 즈음이다. 일본의 한 잡지에 야자와 아이로서는 매우 놀랍게도 ‘시리어스한 미스터리’라는 카피로 <하현의 달>(下弦の月)에 대한 예고가 나왔다. 귀엽고 발랄한 여자아이들의 웃음과 꿈을 줄곧 그려온, 말하자면 인생의 가장 밝은 부분을 (실체감 있는 한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그려온 만화가로서는 놀라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 그녀의 외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려왔지만, 후속작 <나나> <파라다이스 키스>가 한참이나 진행되고도 이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어번 해적판이 나와 속아서 이야기할 뻔도 했다. 그러나 6년을 기다린 뒤, 뒤늦게나마 정식으로 국내에 번역되었고, 이제 야자와가 말하는 ‘심각함’의 실체를 이야기해볼 수 있게 되었다.고등학생인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미즈키. 그녀는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동생이, 이미 그녀의 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햇빛이 만든 그림자,야자와 아이의 <하현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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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7. 12. 한영애 콘서트 <Full Moon>통유리 창 밖으로 내내 조용히 비내리는 오후, 그렇게 낮이 밤보다 편하고 밤이 낮 속에 스며들고 모종의 정서가 고이고 안온한 내 집이 너무도 대견하여 푹 빠지듯, 적셔지듯 한잠 자고 싶은 시간 다소 황망한 소리로 걸려온 전화가 모든 것을 산산조각냈다. 전에 댁으로 찾아뵌 적도 있는데요, 전인권씨 팬클럽 일로, 지금은 한영애 팬클럽인데요, 오늘 한영애씨가 콘서트를 하는데요, 좀 와주십사, 초청장 미리 못 보내드려서 죄송하구요, 전 현경애구요, 한영애가 아니라….한영애와 두세번 스쳐 지나듯 인사를 했지만 한영애가 직접 그런 전화를 할 리도 없고 더군다나 공연 당일날 목매달 일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 굳이 한영애가 아니라고 부연설명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하도 구분이 다급한지라, 나는 그냥 어버버댄다는 게 그만 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린 셈이 되어버렸다.성균관대 새천년홀은 무대가 깊어 공연장소로 적합해 보였다. 객석의 규모
이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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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만화가 전설 호에로 펜> 1∼3권“스스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오늘도 펜을 불사르는 만화가의 이야기를 그린 <열혈 만화가 전설 호에로 펜>(시마모토 가즈히코 지음/ 북박스 펴냄/ 3천원)이 나왔다. <허리케인 죠>를 연상시키는 극화풍 그림체에 고풍스럽기까지 한 열혈 대사들은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이 만화에 묘사되는 주인공인 만화가 호노오 모유루의 일상은 꽤 사실적이다. 이미 하나의 마감을 끝냈지만 또 다른 마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어시스트들은 사정이 생겨서 남아 있지 않고, 작품은 안 풀리고 도망치고 싶어도 그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수를 쓰기엔 시간도 체력도 허락하지 않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2년 전 다른 출판사에서 <울어라 펜>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원피스>
[만화계 뉴스] <열혈 만화가 전설 호에로 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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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만화’의 고루함을 돌파하다학습만화라 불리는 상당수의 만화들은 4×6배판의 큼지막한 크기에 좋은 종이를 쓰고 컬러로 인쇄한 모양새를 갖고 있다. 이 학습만화들은 ‘학습’이라는 강박증에 시달려 만화의 재미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잘 본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은 이미지 언어에 대해 우호적이기 때문에 잘 보는 것이지 어정쩡한 학습만화가 재미있어서 보는 것은 아니다. 학습 강박증은 만화의 완성도를 곧잘 무시하곤 하는데, 몇 페이지에 한번씩 학습코너를 집어넣으면 만화 자체의 완성도를 대거 상쇄할 수 있다는 완곡한 믿음, 혹은 뻔뻔스러움을 발견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만화에 학습만화란 있을 수 없다. 만화는 그냥 만화다. ‘학습’이라는 당혹스러운 접두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학습소설? 학습영화? 학습노래? 어울리는가? 당연히 어울리지 않고, 이런 발상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만화에만 학습만화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확산된 것
박시백 <만화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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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내 방식, 나의 인생, 나의 운명, 어차피 내가 갈길 뒷걸음질은 싫어. 내 운명 죽음이라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뮤지컬 <카르멘> 중 ‘내 길을 갈 뿐’) 이 여인, 참으로 대담하고 거침없다.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그 틀에 얽매이는 법없이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하다 마지막 감정의 방울까지 말라붙는 순간 가차없이 다른 사랑을 찾아 날아가버리는 여자 카르멘. 1845년,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중편소설 <카르멘>에서 태어난 집시 여인 카르멘은 1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대담하고 치명적인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빌표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소설 속의 카르멘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일 것이다.1875년에 나온 이 오페라는 스페인 세비야 지방을 무대로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매혹적인 집시
설레는 음악과의 동침,창작 뮤지컬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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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 새로운 질감한영애는 참 천연덕스럽다. 물론 청중과 마주한 채 음악과 실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공연 무대에서 뮤지션들은 어떤 형태로든 천연덕스러워지겠지만, 그는 유난히 그래 보인다. 지난 7월11일과 12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Full Moon’ 콘서트에서도 그는 여전했다. 담양에서 공수해왔다는 대나무와 달을 배경으로, 청록과 보랏빛 조명 아래 만월의 숲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사뿐히 즈려 밟고’ 걸어나온 한영애. 그가 신묘한 의식을 치르는 샤먼처럼 요령을 흔들며 서서히 객석을 향해 몸을 틀고 “아름답고 소중해 단 한번 열고 닫는 무대/너와 나 둘이는 멋진 주인공이네” 하는 <감사의 마음>을 부르는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는 주술을 걸어온다. 몸 속 어딘가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양 깊고, 허스키하면서 시원스레 뻗어나오곤 하는 음색. 그래서 드럼 비트를 반주삼아 마임 같은 몸짓을 해도, 그 흔한 안녕하세요, 한마디 없이 7∼8곡을 내리 불러도, 객석의 눈과
한영애의 트로트 리메이크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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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전사가 아니고, 소녀는 천사가 아니야만화에서 배우고 만화로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 그 만화들은 편안하고 익숙하다. 장르의 규칙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반면에 인생에서 배우고 만화로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 그 만화들은 거칠고 낯설다. 우리를 만화 속에 빠뜨리지 않는다. 잠깐 적셨다가 인생으로 돌아가게 한다. 나는 어느 쪽이 좋다고 단정짓지 않는다. 다만 그 앞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사토시의 단편 연작집 <소년 소녀>(북박스 펴냄)는 둘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압도적이지 않은 쪽에 조금 기울어 있다.<소년 소녀>는 여름방학과도 같은 만화다. 거친 연필선이 느껴지는 목차의 오프닝에서부터 분명하다. 여름 어느 날 자전거를 탄 소년들이 버려진 저택을 찾아온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서로의 등을 떠밀며 안으로 들어간다. 깨진 창으로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정체불명의 엔진, 인체의 해부도를 보여주는 책, 그리고
후쿠시마 사토시의 <소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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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히긴스 트리오 <Dear Old Stockholm>에디 히긴스 쿼텟 <My Foolish Heart>눅진하게 들러붙는 장마철 밤 공기를 위한 처방전. 1) 샤워를 하고 깨끗한 면옷으로 갈아입는다. 2) 서늘한 음악을 틀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눕는다. 이 글은 바로 그 서늘한 음악을 고르는 하나의 가이드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쉽게 즐길 수 있는.주로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해온,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Dear Old Stockholm>과 에디 히긴스 쿼텟(리드 피아니스트인 에디 히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가 모두 다르다)의 <My Foolish Heart>가 강앤뮤직에서 발매되었다. 피아니스트이자 트리오와 쿼텟을 리드하는 에디 히긴스는 1932년생 할아버지로, 오래 71살이 되었다. 에디 히긴스는 50∼60년대의 런던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당시 ‘런던 하우스’에서 하우스 트리오를 1
스탠더드가 주는 감동,에디 히긴스 트리오·에디 히긴스 쿼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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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에 침을 뱉으마<나인>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여자만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사, 평론, 패션화보에 폭넓은 스타일의 만화까지를 보여주었던 그야말로 ‘잡지’였다. 젊고 새로운 시도는 빛이 났었다. 상업적 만화의 독법에서 벗어난 만화들도 대거 소개했다. 그런데 이 잡지가 너무 빨리 시장에 나왔었을까, 독자들이 점차 잡지를 외면했다. 결국 <나인>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폐간되고 말았다. 좋은 친구를 잃는 기분. 한달의 즐거움을 빼앗기는 기분. 그보다 더 큰 앞으로의 희망을 차압당하는 기분이었다.하나의 잡지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낯익은 연재작들에 대한 기대가 사리지고, 완결을 보지 못하는 서운함과 이 잡지를 통해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많은 작가들의 앞날에 대한 당혹감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체리듬을 떨어뜨린다. 그깟 잡지쯤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타박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잡지는 다양한 만화가
<영점프> 종간과 한국 만화시장 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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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도 없다. 종횡무진하며 인물과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비춰주는 카메라워크도 없다. 시신경이 느슨해질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끄럽게 건너뛰는 현란한 편집도, 록시의 허름한 방에서 벨마의 쇼 무대, 어두운 감옥, 변호사 빌리의 고급스런 사무실과 법정으로 자유자재로 바뀌는 세트도 없다. 하나의 세트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와 시공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영화 <시카고>는, 같고 또 다르다. <시카고>는 1920년대의 시카고, 각각 다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보드빌 스타 벨마 켈리와 스타 지망생인 록시 하트, 두 여성의 재판과정을 통해 쾌락과 욕망의 베일에 쌓인 당시 미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화려한 재즈 선율과 역동적인 춤의 언어로 풀어낸 쇼. 7월2일부터 8월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런던 투어팀의 내한공연으로 뮤지컬 <시카고>가 무대에 오른다.알려져 있다시피 뮤지컬 <
올 댓 시카고,뮤지컬 <시카고> 런던팀 내한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