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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완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떡하니 새로운 선물이 도착했다. 총 12편의 알짜배기 단편을 모아놓은 이 책은 500조각의 퍼즐과 함께 포장되어 나에게 배달되었다. 이 단편집에는 20년에 가까운 작가의 작품생활을 갈무리하는 단편들이 선정되어 있다. 첫머리에는 1985년 <아홉번째 신화>에 발표된 <그대를 위한 방문자>가 놓이고, 마지막에는 미발표 신작인 <노래하는 돌>이 있다. 1985년에서 2003년, 세기가 바뀌는 시간 속에 놓여진 작가의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김혜린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작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복판에 사람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아주 상식적인 창작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킨다. <그대를 위한 방문자>는 지금 보면 다소 낯선 연출법들이 등장한다. 내적 자아와 대화, 갈등하는 예술가의 모습, 과도한 독백과 내레이션까지. 하지만 이 작품은 솔직한 그대로 80년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경험해야
542페이지의 재미, 김혜린 단편집 <노래하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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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연이 깊은 작가 필립 K. 딕. <스크리머스> <임포스터>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번에는 <페이첵>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 중인 ‘필립 K. 딕의 SF 걸작선’ 시리즈 중 네 번째 책으로, <페이첵>을 포함해 모두 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을 제외하면, 작가의 청년기인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필립 K. 딕 지음/ 김소연 옮김/ 집사재 펴냄]
필립 K. 딕의 SF 걸작선 시리즈, <페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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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히틀러가 부활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면, 만약 빙하가 녹아내려 지구의 땅덩이 대부분이 가라앉아버린다면, 만약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이 제2의 진주만 침공을 감행한다면…. 픽션은 ‘만약’을 사랑한다. 그리고 ‘더 큰 만약’일수록 더 강렬하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가와구치 가이지의 <태양의 묵시록>(대원씨아이 펴냄)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만약’에 속하는 이야기다.2002년 8월10일 오전 10시20분. 강도 8.8의 대지진이 일본 열도를 엄습한다. 곧이어 후지산이 분화를 일으키고, 동쪽, 동남쪽, 남쪽에서 연이어 일어난 거대 지진과 해일이 최악의 재난을 만들어낸다. 급기야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열도의 한가운데가 갈라져 이 나라는 완전히 두 조각으로 분단되는 지경에 이른다. 애초에 섬나라였는데, 섬이 하나 늘어났다는 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러나 파국의 상황을 전혀 감당할 수 없는 일본이 미국과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고, 재해 복구를 빙자하여 열도에 들어선 두 강국이
일본 분단, 지도를 새로 그려라, <태양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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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솔로몬은 악령들을 모두 불러모아 놓고, 그들의 목에 반지로 인장을 찍어 자신의 노예임을 표시했다. 한번은 그가 요르단에서 목욕을 하던 중 그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어느 어부가 잡은 물고기의 뱃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어부가 그 반지를 찾아 솔로몬에게 돌려주기 전까지 솔로몬은 그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반지의 제왕>이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서양 문명에서 양지에 해당하는 기독교나 헬레니즘 전통과는 다른 음지의 전통, 바로 비학(秘學: 오컬티즘)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비학은 문자 그대로 신비 혹은 초자연적 현상을 탐구, 활용하는 것으로, 마법, 연금술, 점성학, 강신술, 관상학, 수비학(數秘學), 유대교 신비주의(카발라) 등을 모두 포괄한다. 기독교 전통에 의해 이단시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그 자세한 전모를 가늠하기도 힘들다.그 생애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저자는 19세
사슴을 새로 변하게 하려면? <마법사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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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만화들이라 부르자. 익숙한 기대감과 서스펜스의 짜릿함을 즐기는 만화들이 아니라 나른하고, 불편하고, 졸리고, 그러다 보면 슬프고 그 안에 내 모습이 있는 그런 만화들이다. 한국 만화의 약점인 다양성을 메워가는 만화들이다.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은근히 많은 팬들과 소통하는 만화들이다. 이향우의 만화는 동화 같고, 일상적이며, 가난하고, 감상적이다. 동화와 일상, 가난과 감상의 낯선 조합이 빛을 발해 이향우의 만화를 만든다. 그가 지닌 감성은 ‘순정’(純情)의 감정을 훌쩍 넘는다. 그의 만화는 그래서 꽤나 아슬아슬하게 지금까지 버텨왔다. <우주인>은 자기 색을 지닌 몇 안 되는 한국 만화잡지 <나인>에 연재된 만화다. 원래는 2개의 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아름다운 색을 입혔다. 작가에 의해 입혀진 색이라 원래의 것처럼 자연스럽다. 최근 복간되는 만화들 중 일괄적인 컴퓨터 작업을 통해 색을 입히는 경우가 있는데, 고려해볼 일이다.<우주인>
비틀비틀 클럽의 친구들, 이향우의 <우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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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아이와 네오의 대화.
“숟가락을 구부리려 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대신 진실을 깨달으려고만 하세요.” “무슨 진실?” “숟가락은 존재하지 않아요.” “숟가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놓고 혜능은 이렇게 말했다. “움직이는 건 바람도 깃발도 아니며 다만 마음이다.” [오윤희 지음/ 호미 펴냄]
<매트릭스,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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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M과 N의 이야기다. M은 미츠루의 M, 과자 만들기가 취미이고 고수머리가 매력적인 고교 1학년의 여학생이다. N은 나츠히코의 N, 수재에 학급대표로 하얀 피부가 눈부신 남학생이다.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 이 정도의 미지근한 설정으로 요즘의 닳고 닳은 독자들을 구워삼을 수는 없다. 사실은 말이다. 여러분도 곧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M은 마조히스트의 M, N은 나르시시스트의 N이었다.<그 남자 그 여자> <타로 이야기> <미운 오리 왕자님>…. ‘다중인격자 러브코미디’라는 신종 장르를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학원로맨스의 분명한 경향 하나가 보인다. 겉과 속이 다른 남녀들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 히구치 다치바나의〈M과 N의 초상〉(대원씨아이)은 바로 그 장르의 틀을 조금 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바깥으로 당기고 있다. 칼끝에 손가락만 닿아도 황홀경에 빠져 에로에로해지는 여학생과 유리창에 비치는 자기 모습만 봐도 실신할 정도로 도취되어
거울아 거울아, 더 때려줘, 〈M과 N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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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무단횡단>을 연출하고 소설 <슬로우 불릿>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진행한 소설가 방현석이, 영화와 소설의 밀접하고도 까다로운 관계를 살폈다. 민중의 오락으로 출발한 비슷한 이력, 문자와 이미지의 이질적인 권능, 같은 서사예술로서 두 장르가 벌이는 경쟁, 누벨 바그나 누보 로망이 시도한 장르의 랑데부를 분석했다. 소설과 영화의 거리를 검토하는 장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화 <프라하의 봄>, 구효서의<낯선 여름>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견주었다. [방현석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김혜리
문자와 이미지의 이질적인 권능,<소설의 길 영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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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1999년부터 대학교지에 만화를 발표하다가 2002년 신문연재소설 삽화를 맡았고, 2003년부터 인터넷 뉴스사이트 프레시안에 <십자군 이야기>를 연재하더니 8개월 만에 프롤로그와 부록을 덧붙여 단행본을 묶었다. ‘유쾌한 지식만화’라는 카피가 이리도 잘 어울릴까. 단숨에 읽어나가는 <십자군 이야기>는 무지하고 완고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역사의 진실이라는 ‘지식’을 선사한다. ‘십자군’이라는 정의의 아이콘이 가장 추악하고 반문화적인 존재였으며, ‘아랍’이라는 ‘악의 축’이 문화적 관용의 존재였다는 점이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뽑아낸 듯한 독창적인 그래픽을 통해 전달된다.불편한 것은 중세의 이야기가 오늘의 현실과 유사하게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군중십자군의 의미없는 학살이나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의 학살이나 무엇이 다를까? 전쟁의 광기에 집착하는 인간에 대해 회의하게 한다. <십자군 이야기>는 ‘반전’을 전면에 내세워 웅변하지 않지만
지식만화의 새로운 발걸음, <십자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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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소년탐정 김전일>이 무대에서 사라진 지 3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범죄를 명쾌하게 해결해온 소년 김전일의 명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의 팬들은 괜스레 ‘김전일 음모론’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책가방 숫자보다 시체 숫자가 많아 보이는 학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연쇄 살인범의 밀집도, 탐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한 것이 아니면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한 트릭. 혹시 이 범죄들의 배후에 김전일 자신이 개입되어 있는 게 아닐까? 왜 그가 가는 곳마다 살인이 줄을 잇는가? 물론 작품 내의 ‘김전일 배후론’은 시니컬한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 바깥에서는 양상이 다르다. 우리는 ‘김전일 바이러스’라는 강력한 균이 수많은 만화가들을 감염시켜 살인의 양산체제를 가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김전일의 신화를 함께 만든 창작자들 역시 바이러스의 항체를 만들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둘로 나뉘어져
김전일의 후계자는,바로 당신!<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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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포콩 지음 I 심민화 옮김 I 마음산책 펴냄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베르나르 포콩(1950∼)에게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말보다는 창조한다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그는 메이킹 포토 혹은 미장센 스타일, 그러니까 연출 사진 혹은 장면 만들기 스타일로 유명하다. 햇빛이 곱게 스며든 방에 개어진 옷가지들이 무지개색 층을 만들며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 예쁜 방 모습 옆에 포콩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언제나 이 생각, 눈만 감으면 될 것 같은, 그리고는 꿈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젊음만 되찾으면 될 것 같은 생각.’포콩이 가장 사랑했던 시간이 유년과 청춘의 시기라는 점,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버려 다시는 살 수 없는 부재의 시간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서의 예쁜 방 외에도 활활 불타는 방, 어질러진 방, 빛이 가득한 방, 영상이 일렁이는 방 등, 다양하게 창조된 순간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
흔적을 통해, 부재를 통해 이야기한다 <사랑의 방 : 베르나르 포콩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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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초능력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추리소설 속에서는 그렇다. 누군가가 밀실에서 죽었다면, 거기에는 트릭이 있다.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염동력이나 바늘을 온몸에 꽂은 인형의 주문에 의해 살인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원래 추리라는 장르는 기괴한 미스터리의 범죄를 ‘이성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수사관들은 이러한 신비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도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면,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이용해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러한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만화들도 없지 않다. <미스터리 극장 에지>는 범행 현장에 남은 물질에서 생각의 잔상을 읽어내는 사이코메트리로 범인을 유추한다.<심리수사관 아오이>에서는 범죄의 마음을 품은 자의 얼굴에서 괴물의 형상을 읽어내는 소년의 도움을 받는다. 이 초능력을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내면 안 될까?시미즈 레이코의 새 연재작 <비밀>
죽은 자는 알고 있다,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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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스(www.comix.co.kr)코믹스가 또 한번 모습을 바꿨다. 1994년 신일섭, 강성수, 오영진이 주축이 되어 무크지 <만화실험 봄>을 펴낸 뒤 1997년 <히스테리>로, 1998년 <지하만화 바나나>로, 1999년 웹사이트 ‘코믹스’로 변신한 뒤 2001년 계간 <코믹스>를 펴내고, 다시 웹으로 돌아와 모습을 바꾼 것이다. 그들은 자존심과 깡으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이겨냈다. 그 중심에는 만화가이자 퍼포먼서인 신일섭이 있다. 나는 그와 그들이 앞으로 10년도 더 넘는 세월이 흘러도 그들이 하고 싶은 ‘코믹스’표 만화를 창작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10년 동안 그와 그들이 보여준 에너지는 앞으로 10년을 보장하고도 남는다.코믹스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독립만화, 비주류 만화의 ‘혼’이다. 그리고 신일섭은 그 혼을 지탱해온 불멸의 에너지다. <만화실험 봄>을 거쳐 <히스테리>로 진행될 쯤, 신일섭은 만화보
비주류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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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
전기처럼 깨지기 쉬운 장르도 드물다. 사실 정보와 작가의 주관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생존 인물이라면 외줄은 더욱 가늘어진다.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의 저자 패트리샤 보스워스는 그런 외줄에 올랐다.
대부분의 전기는 인물의 어린 시절 경험이 이후 삶에 끼친 심리적 영향을 거르지 않는다. 어머니를 학대하고 아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아버지. 젊은 말론 브랜도에게 배우의 길은 그런 아버지를 향해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걸 시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브랜도의 분장사로 40년을 함께한 필립 로즈가 거든다. “나는 말론에게 아버지를 향한 분노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그가 창조적으로 그 분노에 물꼬를 트도록 도와주었다.”
전기 읽는 재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시시콜콜한 일화들이다. 브랜도 특유의 툭툭 끊기는 웅얼거림까지 흉내내는 제임스 딘에게 브랜도는 엄한 표정
분노를 스크린에 옮기다,말론 브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