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다양한 관심사를 읽어내는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이 글쓰기에 관한 책 두권을 펴냈다. 제목 그대로 세상의 모든 글쓰기를 망라한 <전방위 글쓰기>와 영화 리뷰에 초점을 맞춘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영화 리뷰 쓰기>가 그 책들. 전자는 블로그를 알차게 꾸미고 싶은 사람부터 논술을 통한 입시·입사 준비생까지 두루 참고할 만한 책이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글쓰기의 핵심 원칙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한다. 시작은 언제나 독서. 초고는 뜨겁게 쓰고 퇴고는 냉정하게 하기. 글을 밑받침하는 철학을 갖고, 세계를 움직이는 경제를 알 것. 쓰고 싶은 거리를 찾아내 자기 세계로 풀어낸 뒤 다른 사람이 읽기 좋게 다듬는 과정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그에 비해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영화 리뷰 쓰기>는 영화평론가, 리뷰어는 물론 영화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 지침서다.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에서 글을 시작하라든지 통계와 산업이 중요하
김봉석의 글쓰기책 두 권
-
세개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누나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막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폴 그레이브스의 이야기, 그 작가의 연작소설에 등장하는 늙고 지친- 수십년간 뒤쫓은 절대 악당을 이젠 감당할 여력이 없어 보이는- 형사 슬로백의 이야기, 50년 전 친구 페이예를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며 폴을 대저택에 초대한 앨리슨 여사와 저택 사람들 이야기. 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린 채 연결되어 있다. 슬로백은 그레이브스의 누나를 죽인 동명의 악당을 추적하며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폴의 분신이며, 페이예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날수록 폴은 누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전진하는 동안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과 죽음의 이미지가 등장인물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다.
<밤의 기억들>은 오랜만에 접하는 느린 박자의 서스펜스물이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참신한 결말도 없지만
누아르영화로 보고 싶군
-
세계 어디를 가든 내 손에는 론리 플래닛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든 론리 플래닛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여행객을 만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살짝 눈웃음을 친다. 여행자의 바이블 론리 플래닛을 손에 든 객들은 같은 책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서로가 반가운 법이다.
<론리 플래닛 스토리>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가난한 히피 부부 모린 휠러와 토니 휠러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여행 가이드 론리 플래닛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뭐 별거 있겠는가. 이들은 자기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여행 정보를 좀 공유하자는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라리 책을 하나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란다. <론리 플래닛 스토리>에는 탄생 설화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 350명의 필진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가이드북 회사가 된 지금에 겪는 새로운 고민들도 가득하다. 모든 여행자들이 언제나
론리 플래닛에 궁금한 모든 것
-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면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는가. <탑>을 위시한 작품이 실린 초기 단편집을 생각하며 “황석영”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테고, 90년대 대학가에서 연애할 때 단골로 등장하던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입시준비생이라면 가장 만만한 이름 “오 헨리”를, 머리 희끗한 왕년의 문학도라면 “모파상”을, 독서 트렌드에 예민한 독자라면 “레이먼드 카버”를. 나이와 경험, 그리고 시대 분위기에 따라 기억하는 이름, 아끼는 이름이 다르다는 말이다. 존 치버라는 이름을 낯설어하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가 위치하는 지점은 문학적 지형도에서 레이먼드 카버 곁이다. 레이먼드 카버와 술친구였던 그는 미국 단편소설 중흥기를 열었다. 하지만 시대적, 물리적 가까움과 달리 두 작가의 단편소설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치버는 정서적인 추락의 풍경을 그 누구보다 잘 그릴 줄 아는 작가다(레이먼드 카버는 유명한 몇몇 단편에서 잊을 수
존 치버의 책이 무려 6권이나!
-
-
식민지 시대 최대 잡지이자 근대지성사의 보고였던 <개벽>에 대한 본격 연구서다. 글쓴이는 검열·출판과 유통·편집체계와 사상·문학 등 매체의 핵심영역을 훑으며 <개벽>의 문학잡지로서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이 책에 주목하는 데는 그 독특한 시각과 독법도 한몫한다. 매체가 단순한 시험관이 아니라 담론이나 문학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실재였고, 따라서 <개벽>이라는 매체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발상(매체론적 시각)은 매체 연구의 현주소에 비추어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본격 연구서이지만 어렵지 않고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을 던져 답을 내놓는다.
실증은 글쓴이의 강력한 무기이자 이 책의 또 하나의 덕목. “자료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라고 말하는 글쓴이는 <개벽>의 모든 부문을 바닥부터 헤집어 명증한 시계열적 통계와 분석을 내놓는다. 실증의 직접적 부산물인 <개벽> 관련 화보와 10개의 부록(<개벽> 총목차·<
문학잡지 <개벽>의 모든 것
-
김훈의 이야기는 해부학 수업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감각을 꾹꾹 눌러쓰는 그의 이야기에는 추위와 배고픔, 사랑과 이별, 질병의 고통이 저릿하게 담겨 있다. 읽다보면 인간의 몸이 가진 냄새와 감촉뿐만 아니라 내장의 운동까지 경험한다. 에세이를 모아 엮은 <바다의 기별>에서도 해부학 수업은 계속된다.
‘바다의 기별’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체취가 정맥을 타고 흐르고,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는 아버지의 몸에 밴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가 하면 김지하 시인이 출감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교도소 앞을 지키던 고 박경리 선생의 모습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발의 냉기가 느껴진다. 김훈의 몸을 향한 애정과 집착은 몸이 아닌 것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화가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그린 작품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태어난 곳이 아닌 지금 내 몸이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를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라고 적는다. 인간을 객관화시키는 세상에
당신에게 다가가는 인기척
-
한 소녀가 있다. 소녀에게는 백혈병에 걸린 언니가 있다. 안나는 ‘맞춤아기’로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제대혈, 림프구, 골수를 언니 케이트에게 기증해왔다. 그리고 열세살이 된 안나는 합병증으로 신부전까지 걸린 언니를 위해 신장을 기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부모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언니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며 안나에게 희생을 요구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해온 안나는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인 동시에 가장 좋은 일이 될 언니의 죽음을 앞두고 부모를 상대로 의료해방 청구소송을 시작한다.
도발적인 주제를 다룬 <쌍둥이별>의 원제는 <My Sister’s Keeper>다. ‘내 언니를 지키는 사람’은 안나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나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의 이유가 되어준 케이트를 말하기도 한다. 소설은 한 가족이 매 순간 선택한 최선이 합법적이었는지 윤리적이었는지 잔인하지는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살 권리와 죽을 권리, 자율적으로 의료
맞춤아기, 소송을 걸다
-
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명사라고 할 이영도 작가의 첫 작품 <드래곤 라자>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양장본으로 선보인다. 그와 함께 이영도 작가가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그림자 자국>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드래곤 라자>와 <그림자 자국> 합본 박스 세트가 10여만원의 고가에도 예약접수 2분 만에 1천 세트 매진, 추가 판매된 1천 세트도 매진 행진을 기록해 화제가 됐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하지만 <드래곤 라자>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인간과 드래곤을 잇는 역할을 하던 드래곤 라자와 마법이 잊혀진 상태다. 엘프 이루릴은 거대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바이서스의 한 예언자를 찾는데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극중 등장하는 그림자 지우개는 제목과 공명하는 흥미로운 무기인데,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존재가 사라지면서 미래가 바뀌고, 그 미래의
한국 판타지 소설의 자존심
-
어느 작은 마을의 이발사가 실종된다. 그는 사라지기 전날까지 평소처럼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저 평범한 동네 주민이었던 이발사의 실종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 마을 전체에 퍼지고, 불안이 전염병처럼 온 마을을 뒤덮는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이발사를 더이상 기다리지 않게 될 즈음, 두 번째 실종자가 발생한다.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처녀 귀베르진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이제 서로를 의심하고 추궁하기 시작한다. 표적으로 몰린 마을 청년은 끝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을 잠식하는 건 존재에 대한 불안이다. 사람들은 지인들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의 실존을 확신하지 못한다. 불안은 확장되고 변주된다. 시간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과거와 현재는 뒤섞이며, 사람들은 몇개의 다른 삶을 산다. 그러나 불안에서 비롯된 광란의 축제가 끝난 뒤,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실종된 이발사가 살던 어지럽고
호들갑스럽되, 씁쓸하여라
-
판타지 작가 닐 게이먼은 그야말로 능란한 ‘구라’쟁이다. <스타더스트>로 판타지를 모르던 독자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그의 대표작 <신들의 전쟁>은 그런 그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휴고상을 수상했다. 닐 게이먼이 ‘여행자를 위한 경고’라는 짤막한 권두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책에서는 놀랍게도 “단지 신들만이 진짜이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 많은 신들이 이주해온다. 각국의 신들이 각국의 이민자를 따라, 즉 자신을 믿는 자들을 따라 미국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이나 추상적 개념어를 이름으로 가진 고대 신들과 달리 미디어, 월드, 타운 같은 이름을 가진 현대의 신들도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섀도라는 수감자. 폭행 사건으로 3년간 감방에서 지낸 그는 가석방을 앞두고 좋은 소식(“오늘 당장 출소해도 좋다”)과 나쁜 소식(“당신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을 듣는다. 멍한 상태로 악천후를 뚫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옆자리에 앉는 남자는
어느 신이 가장 강할까?
-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이상용은 가장 성실한 영화평론가 가운데 하나다. 2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영화와 연을 맺은 이상용 평론가는 오래도록 직업적 영화 글쓰기를 해오며 인문학적 바탕 위에서 텍스트를 꼼꼼히 두번 세번 읽고, 진득한 자기만의 문체로 영화의 안과 밖을 살펴왔다.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은 스스로 ‘묵은지’라 말하는 글들을 거짓말, 웃음, 환상, 시간, 앨프리드 히치콕 등 12개의 키워드로 나눠 헤쳐 모은 첫 번째 개인 영화평론집이다. ‘웃음’에서 우디 앨런의 심오한 위트와 최근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이터널 선샤인>과 <러브레터>와 <중경삼림>을 이어 ‘시간’과 ‘사랑’의 의미를 되짚으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 말하는 히치콕의 현재적 의미와 영향력을 분석하며 꽤 너른 장르와 세대를 오가며 영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정연한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꽤 정교한 배치라고나 할까. 다르
12가지 키워드의 ‘묵은지’
-
요시나가 후미의 감각은 항상 예민했다. “휘핑크림이 듬뿍 스며들어 촉촉하기 그지없는 쇼콜라 클래식” 따위의 케이크를 군침나게 대접한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이 너무나 극명한 예일 뿐. <오오쿠>에서 미즈노는 은빛 문양만을 새긴 검은 예복으로 “휘황찬란한 무리 가운데 고고히 시선을 잡아끌”었고, <달과 샌들>에서 고바야시는 애인 토요를 위해 햄 파니니와 니스풍 샐러드를 함께 넣은 듬직한 “러브 도시락”을 챙기지 않았던가. 요시나가의 남자들은 미소를 띠는 일이 드물어도 때론 굳게 다문 입술만으로 우리 마음을 서늘하게 베어내곤 했다.
<어제 뭐 먹었어?>는 이른바 요리만화다. 생활비 몇푼에 파트너를 달달 볶는 자린고비지만 실은 음식 해먹이는 걸 즐기는 40대 게이 카케이가 주인공이다. 그의 나직한 손길과 목소리를 좇아 “자반연어를 꺼내 잘게 찢고 다시마도 채썰어서 다시 밥솥에 넣고 통깨를 듬뿍 넣은 연어우엉밥”같이 정성어린 가정식들이 소개된다
그 가정식, 요리하고 싶어진다
-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의 여덟 번째 장편은 칠순 맞은 노모를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1장은 작가인 큰딸 이야기, 2장은 큰아들 이야기, 아내의 손을 놓고 지하철에 오르고 한 정거장을 지나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던 남편의 회한은 3장으로 이어진다. 가족은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종종 엄마를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들려오지만, 실종 당시의 엄마 모습이 아닌 기억 속의 엄마의 환영인 양 진술되어 죽음을 암시한다. 시간이 흐르고 실종이 상실로 받아들여질 즈음 감정은 증폭한다. 어떤 고통은 충격이 지나가고 한발 늦게 찾아오는 것처럼 가족은 잘못한 일만 떠올리며 뒤늦게 가슴을 친다. 그리고 신파로 흐를 법한 이야기는 애끓는 절절함으로 독자의 손을 재촉한다.
4장은 엄마에게도 사랑과 꿈이 있었다고 말한다. 겉도는 남편 대신 마음 붙일 곳을 찾았던 엄마의 비밀은 세상사를 초월한 듯한 독백을 따라 흘러나온다. 무엇보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구절은 탄식을 자아낸다. 작가
엄마도 엄마가 필요했구나
-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임상수, 김지운. 동시대 한국영화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일곱명의 감독이 비평가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이 읽히고 분석된 적이 어디 한두번이겠느냐마는 그 주체가 외국 비평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영화감독 7인을 말하다>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비평가 8명이 합심하여 분석한 한국영화의 일곱 초상이다.
한국영화의 현재에 대한 안팎의 시선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만든 이 책은 감독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보다 평론가 개개인이 제시하는 다양한 분석론에 무게를 둔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기에 달리 보이는 지점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박찬욱 감독을 예로 들면, 그의 성장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 평론가(김영진)는 “거대 서사나 이념에 대한 짙은 부정”을 그의 특징으로 꼽으며 한국영화사 안에서 그가 점유하는 위치를 말하는 반면, 이탈리아 평론가(마르코 그로솔리)는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너무 엄격하지 않
한국영화의 일곱가지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