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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쳇 레이모는 37년간 같은 길을 걸어 직장인 스톤힐대학으로 출퇴근했다. 그 길엔 100년 묵은 집들이 늘어선 거리가 나오고 숲과 들을 지나고 개울을 가로질러 오래된 과수원과 마을 정원을 통과한다. 레이모는 그 1마일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특별한 산책으로 독자를 이끈다. 천문학자로서의 지식, 나이든 학자로서의 지혜,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길을 우리가 걸을 수 없으므로 무슨 소용이겠는가 묻는다면, 이 책을 읽는 것으로 그 길 위에 설 수 있다고 말하겠다. 그가 본 것을 글로 쓰면 나는 상상해 풍경을 그려낸다. 숱한 꽃이름과 새이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스팔트킨트로 살아온 게 못내 아쉽다.
<1마일 속의 우주>에는 대단한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천동지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산책자의 발걸음으로, 그 느릿한 속도로 주변을 둘러보고, 본 것에 대해 찾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담았다.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연못
[도서] 출근길에 우주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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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독서라는 핵심 키워드를 공유하는 두권의 책이 나왔다.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인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다>는 “내가 탐욕스레 읽었던 책 몇권을 노트 필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재일한국인 2세의 청춘의 궤적을 알 수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이 그렇듯, 재일조선인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해주고, 그들의 눈으로 본 한국의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시간을 뛰어넘어 도쿄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T.K.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말하는 강상중의 목소리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최인훈의 <광장>을 말하는 유시민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책읽기가 자기 개발의 수단일 수도 있고, 남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기 위한 주춧돌일 수도 있
[도서] 청춘이 책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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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은 대개 책 말미에 평론가의 서평을 싣는다. 모든 서평을 다 읽는 건 아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내용도 있는 법이니까. <북쪽 거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는 달랐다. 재빨리 서평이 있을 다음 페이지를 폈다. 누군가의 설명에 기대서라도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지를 정의하고 싶었다. 김형중 평론가의 글이 마침 작은 위로가 되어줬다. “사력을 다해 읽거나, 혹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읽기를 포기해야 할 책.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실험정신으로 유명한 문제작이 되거나, 독자라고는 몇몇 평론가들과 운없는 다독 시민 몇과 소수의 문창과 학생들밖에는 갖지 못하게 될 저주받은 책이 되거나 할 수 있도록.”
그러므로 지금부터 쓰게 될 내용은 단단히 각오가 되어 있는, 문학적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북쪽 거실>은 정체불명의 수용소로부터 석방된 여자, 수니로부터 시작한다. 수니는 전직 오디오북 성우로, 수용소에 남겠다
[한국 소설 품는 밤] 읽거나 포기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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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틴 레비는 프랑스 좌파 지식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딸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석학인 장 폴 앙토방의 아들 라파엘 앙토방과 사귀고 21살에 첫 소설을 발표해 성공을 거두었고, 그와 결혼을 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시아버지의 연인 카를라 브루니가 남편과 잠자리를 함께하고,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기 전까지는. 사르코지의 아내가 된 카를라 브루니의 전 애인이 바로 <심각하지 않아>를 쓴 주스틴 레비의 남편이었던 라파엘 앙토방이었다는 말이다. <심각하지 않아>가 프랑스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를 누르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이 책이 그 소설 같은 실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와 어머니(공교롭게도 둘 다 부유하고 아름답고 유명했던), 소꿉장난처럼 시작해 들불처럼 타올랐고 마침내 통속극보다 못한 결말을 맺은 결혼, 낙태와 약물중독, 그리고…. 주스틴 레비는 자신이 겪은 일과 느낀 일을 적고 있음을 감추
[도서]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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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 요청 금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같은, 주류 음반사에서 상상도 못할 기획으로 지루함에 시달리던 청각을 한껏 자극한 음반사 붕가붕가레코드 주변인들이 쓴 책. 2000년대 초 ‘붕가붕가 중창단’이 결성되어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붕가붕가레코드가 창립 작품 <<관악청년포크협의회>> 1집을 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붕가붕가레코드라는 음반 레이블 이름 작명부터가 걸작인데, 거기에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라니. ‘지속 가능한’이라는 단어의 최초 출몰지가 친환경주의였음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제목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딴따라질이 꼭 필요하다는 가열찬 주장을 하는 중일 테다. 또한, ‘지속 가능한’은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듣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렇다고 프로가 될 자신은 없었다. 우리가 지향했던 곳은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어딘가였
[도서] 딴따라 없으면 지구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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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지수 ★★★★★
고전 지수 ★★★★★
그러니 안 보면 후회할 지수 ★★★★★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최고 걸작이 드디어 정식 발매됐다. 사실 데즈카의 걸작들은 지난 90년대 후반 학산문화사에 의해 하나씩 국내에 소개가 된 바 있다. 데즈카의 최대 대작인 <불새>는 물론이거니와 <키리히토 찬가>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데즈카의 성인용 만화들까지 출간됐다. 사실 <우주소년 아톰>은 데즈카 세계의 아주 지엽적인 대륙을 대표할 따름이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진가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문제는 그의 최고 걸작인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불법 복제본으로만 90년대 만화방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만화방에서 <아돌프>라는 제목의 이 걸작을 읽고는 가슴이 너무 뛰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절판된 그 복제본을 몰래 훔쳐가지 않은 걸 얼마나 오랫동안
[도서] 만화의 신, 그의 최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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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2009년 한국 인디신의 승자는 붕가붕가 레코드와 루비살롱 레코드일 것이다. 양쪽 모두 독특한 정서를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붕가붕가는 복고와 키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교차시키며 독보적인 감수성을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생각의 여름≫은 서정성 면에서 돋보이는 앨범이다. 거리의 소음을 배경으로 어쿠스틱 기타가 강물처럼 흐르는 <동병상련>과 인트로를 생략한 채 갑자기 도약하며 시작하는 <서울하늘>, 이장혁의 헛헛한 목소리가 연상되는 <허구>와 꺼끌꺼끌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래서>로 이어지는 앨범 중반부의 정서가 특히 그렇다. 간결한 가사와 그에 맞춘 짧은 길이의 노래가 담백하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긴다. 얼핏 들으면 기존의 이런저런 인디 포크 송과 큰 차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당부하건대 노랫말에 온 감각을 집중해서 들어보기를. 그제야 이 앨범은 특별한 소리를 만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어
[음반] 그 가사 치명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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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던 김진규가 두 번째 소설을 출간했다. 그런데 심각한 어조의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술술 읽히는 대중성이 두드러진다.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독자에게 마당놀이 한판을 보는 듯한 유쾌함을 선사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배경은 조선 영정조 시대의 한성부 중 ‘명례방’ 즉, ‘남촌’이라 불리는 곳인데, 당시 정치적·사회적인 흐름보다는 현대에도 충분히 적용될 법한 다양한 인간들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것도 양반보다는 중인이나 노비, 귀감이 될 만한 선비보다는 아둔하고 삽질을 일삼는 중년 사내들로 가득하다. 하나같이 한심한 인생들이지만, 왠지 밉지가 않다.
제목에서 말하는 ‘280일’이란 공생원의 아내인 ‘마나님’이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기간이다. 공생원은 올해 마흔다섯살의 한량인데, 마나님이 결혼한
[한국 소설 품는 밤] 마나님의 애인 찾아 28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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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적힌 대로 ‘동서양 기괴 명화’이고, 부제는 ‘눈으로 보는 방랑 여행담’이다. 하지만 이 책을 설명하는 데는 그 둘보다는 책을 구성하는 각 장의 제목들이 더 적당해 보인다. 뒤섞이는 이형, 공간의 유희, 동물들의 여행, 일상의 사건. 유럽 중심의 명화 산책이 아니라 인도, 중국, 일본과 유럽 각국의 이형(異形)과 특색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경이의 서>에 삽입된 삽화에는 거대한 외다리를 올린 괴물 왕발이가 등장하는데, 그 상징적인 번쩍 하늘로 들고 있는 거대한 외다리의 그림은 이후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 새로이 그려졌다(원래 왕발이는 외다리로 이동하다 햇살이 뜨거워지면 다리를 거꾸로 세워 그늘을 만들어 휴식을 취하는 녀석이라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남다르게 소화하는 구석이 있다. 광장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을 동시에 일으킬 듯 끝없이 넓은 곳에 빈틈없이 인간이 들어찬 그림의 이상한 매력을 말하는 대
[도서] 그 기괴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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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봐, 넌 건강해지고”라고 노래부르는 ‘그분’의 외다리 깡충댄스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잊어버릴 만하면 이슈를 만드는 그의 천재적 재능에 감탄하다가도, 내 나이 64살이 되면 세상이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기억하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 잊혀진 이름이라고 아무도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유머러스하고 기상천외한, 독특한 논픽션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그런 잊혀진 자들, 패배자들에게 주목한 책이다. 부제를 빌려 설명하면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다. 역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누락해버린, 하지만 그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 이를테면 프랑수아 수드르는 보편 언어를 꿈꾸었다.
1787년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뒤 음악 강사가 된 그는 음악으로 보편 언어를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글자를 음으로 바꾸는 언어체계, 독립적인 음악 언어가 아니라 현존하는 언어를 옮긴 신호 체계를. 엉뚱한가? 그런데 정말
[도서] 잘나갔노라, 잊혀졌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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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쓴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은 그의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그 자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받은 500여 질문 중 간추린 84개의 질문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성실한 답변을 담은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작가로 살아온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당장 그의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쓸 수 있습니까. 예술을 하는 데 재능과 노력은 어느 정도 비율이어야 합니까.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 공통적으로 전달하고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황홀한 글감옥>은 그에게 묻고 싶은 거의 모든 질문이 총망라된 책이다.
[도서] 조정래에게 묻고 싶은 84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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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매된 도나웨일의 1집은 꽤 깔끔한 사운드와 정서로 주목받은 앨범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이다. 1집에서 로하게 들렸던 감성이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밴드와 팬들 모두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변화일 것이다. 특히 마시멜로처럼 말랑하면서도 탄력있는 멜로디의 <도레미>와 스산한 가을바람에 떨리는 가슴을 대변하는 것 같은 <스노우 드립>의 아득함, <Bye Bye Waltz>의 아기자기함과 불현듯 삽입된 파도소리가 인상 깊을 것이다. 물론 도나웨일이 한국 인디의 바로미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한국 인디, 혹은 한국 록의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듣기 좋다. 믹싱이 어떻네, 사운드가 어떻네, 음질이 어떻네 같은 딴생각을 안 하게 된다. 멜로디에 집중하게 되고 노랫말을 살피게 된다. 감상적인 밴드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성취는 드물 것이다. 곧 겨울이
[음반] 위로가 되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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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18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총 79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기록만으로도 머라이어 캐리의 ‘포스’는 압도적이다. 이번에는 6년 만에 한국에도 온다.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이 한국이라는 건 그만큼 한국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인기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Memoirs Of An Imperfect Angel≫이란 제목대로, 새 앨범은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 천사’란 수식이 허세처럼 보일 수도 있겠고, 나이와 무관하게 줄기차게 헐벗고 있는 커버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머라이어 캐리다. <Hero>의 그녀란 말이다. 빌보드 차트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솔로이자, 빌보드 50년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앨범이 팔린(1등은 물론 비틀스다) 가수다. 첫 싱글 <Obsessed>와 두 번째로 싱글 커트된 그룹 포리너의 1985년 빌보드 팝 싱글 차트
[음반] 빌보드 여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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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은 은밀하고, 아주 거의 외설적이다.” ‘쉬었다’ 가는 커플에게 그 은밀하고 외설적인 모텔의 특성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것이겠지만 맨송맨송하게 ‘자고’ 가야 하는 일행 없는 여행자나 출장을 간 사람이라면 모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은밀함과 외설에 다소간 치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물며, 눈먼 개와 함께 여행하는 남자는 어떻겠는가.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그런 생활을 3년이나 해왔다. ‘아라비안’, ‘달과 6펜스’, ‘바나나’처럼 제멋대로의 이름을 가졌지만 그 속살은 대동소이한 고만고만한 모텔을, 늙고 눈먼 개와 함께 전전해왔다. 세면대 아래,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2009년 8월3일, 나와 와조가 다녀감”이라고 네임펜으로 적어놓는 작은 비밀을 만들면서.
아, 소개가 늦었다. 와조는 지훈이 데리고 다니는 늙고 눈먼 개의 이름이다. 와조는 그의 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던 맹인안내견이었다. “녀석에게 이리 와조, 도와조란 말을 주로 하다보니”
[한국 소설 품는 밤] 눈먼 개와 나의 모텔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