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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되기 위해 대상을 온전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그랬다. 그의 비밀과 꿈, 환상과 비틀린 현실은 이해를 넘어서는 매혹을 불러일으켰다. <꿈의 방>은 데이비드 린치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대기적으로 나란히 두고 당신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평론가 크리스틴 매케나가 린치의 주변 인물 100여명을 인터뷰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집필한 <꿈의 방>은 린치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한 회고록이자 평론가가 취재를 통해 완성한 전기가 된다. 여러 면에서 재미있는 책이다. <이레이저 헤드>를 완성했지만 칸영화제 출품도 뉴욕영화제 출품도 거절당한 뒤 “나는 할리우드의 핵심에 들어갈 준비가 됐어. 변두리를 전전하는 건 이제 신물이 나”라고 했다는 대목에서는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 적은 없어도 제대로 일이 돌아가는 바닥에서 일을 도모하고자 한 린치의 욕망이 느껴진다. <엘리펀트 맨>을 만들던
씨네21 추천도서 - <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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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매일이 무탈하도록 공들여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부가 있고, 급식 노동자가 있고, 청소 노동자가 있고, 노동 변호사가 있으며, 요양보호사, 배우,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어떤 일은 창작이라고 불리며 노동 취급을 하지 않아 생업으로는 오히려 어려운 일이 되는가 하면, 어떤 일은 그림자 취급을 받아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제대로 인정을 받기 어렵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생업>은 그 지난하고도 어려운, 보람되지만 만만찮은 생업의 순간들을 길어올린다.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와 같다는 인식이 저절로 찾아온다.
스물일곱에 귀향한 ‘전업 농부’ 김후주씨가 말하는 청년 승계농의 어려움은 단순히 농사일의 어려움만으로 말할 수 없다. 승계농, 후계농들이 농사를 중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가족간 갈등이라는데, 일은 하고 돈을 제대로 못 받아서다. 그래서 ‘금호미’라고 불린다. “금호미는 일을 안 하면 거지가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
씨네21 추천도서 - <생업(生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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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읽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페이지에 그림이 전부고 글자는 몇줄 되지 않으니 쓱쓱 넘기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같은 그림책을 더 풍성하게 읽어내는 방법이 있다면 솔깃할 수밖에. 김소영 작가의 <숨은 어린이 찾기>는 어린이책 편집자로 시작해 어린이를 위한 독서 교실을 오래 운영해온 저자의 즐거운 책읽기를 담은 에세이다. 어린이의 사소한 순간을 크게 보여주는 장면을 곰곰이 뜯어보고 기쁨이 탄생하는 순간을 발견하거나(<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 바느질로 표현한 새가 날아가는 모습에, 강아지의 졸린 눈에 경탄하거나(<나는 매일 그려요: 꼬마 무 지개와 구름 강아지>), ‘가짜 뉴스’의 시대에 ‘소문’ 대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그랬구나!>) 하는 대목들을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책만큼이나 현실의 자그마한 좋은 일들이 팡팡 소리를 내며 느낌표와 함께 폭발하는 느낌을 받는다. 성실한 독자
씨네21 추천도서 - <숨은 어린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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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의 각 시 제목들에는 대부분 ‘그’라는 지시관형사가 달려 있다. 그 파란 차, 그 당나귀, 그 염소, 그 구조물, 그 아파트와 같은 식이다. 그러니까 실재하는 파란 차의 보편성, 실제 염소를 정의할 때 설명하는 말, 우리가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공통적인 성격 같은 것은 이 시집에서 그다지 중요치 않다. 시인 김유림이 본 파란 차, 시인이 본 구조물, 시인이 설명하고자 하는 아파트, 시인이 본 시점의 바다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시집 제목처럼 이 시집의 시들은 모두 시인이 탐구한 새로운 단어의 설명, 시인이 만든 세계의 단어 사전과도 같다. 시집에 대한 소개글 중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경관의 발명’에 대한 글이 무엇보다 적절한 예시이다. 곰브리치는 “알프스의 경관은 산맥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회화보다 앞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발견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알프스를 그린 회화가 있었기에 알프스의 풍경이 발견됐다라는 주장이다. 그 산이 거기 있었기에
씨네21 추천도서 -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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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극심한 빈곤에 놓인 194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에 사는 소년이 매일 하는 일은 쓰레기장에서 누더기를 거둬 노점으로 가져가 파는 것이다. 공산당 여성 조합원 주도로 남부의 가난한 아이들을 북부의 여유로운 집에 보내 돌봐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아메리고 역시 기차를 타고 북부로 향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아메리고의 엄마에게 ‘아들을 팔아먹는다’고 비난하지만, 더는 아이를 굶길 수 없었던 엄마는 “그곳에 가면 아이가 배불리 먹고 토실토실 살이 찔 거”라는 말을 믿고 북부로 가는 기차에 아들을 태운다. 전쟁과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진 가난과 북부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돌봄은 이 책의 먹먹한 감동 포인트다. 보상 없는 나눔을 기대하기 어려운 요즘 세태에서는 남의 집 아이를 대가 없이 돌봐준다는 그 시절 정책을 선뜻 믿기 어려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이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은 아닌
씨네21 추천도서 - <칠드런스 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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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스 트레인> - 비올라 아르도네 지음 김희정 옮김 문학동네 펴냄
<탐구> - 김유림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숨은 어린이 찾기> - 김소영 지음창비 펴냄
<생업(生業)> - 은유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꿈의 방> - 데이비드 린치, 크리스틴 매케나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 숨은 재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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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진을 컬러 톤이 다른 두 가지 표지로 만들었다. 아니, 제목이 다르다!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의 블루와 그 스핀오프격인 <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의 핑크는 같은 이야기의 다른 얼굴 같은 느낌을 준다.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를 수식하는 가장 솔깃한 말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원작자 이치조 미사키가 쓴 소설이라는 것이다. ‘오세이사’라는 줄임말을 애칭처럼 쓰는 팬들을 보유한, 소설과 영화가 두루 사랑한 책의 작가가 출간한 소설, 그리고 영화화된 작품의 개봉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미즈시마 하루토는 시골 마을의 공무원을 목표로 평범하게 살던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하루토는 아야네로부터 “함께 노래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데, 아야네로 말하자면 눈에 띄는 예쁜 외모와 달리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지낸다. 방과 후 동아리방에서 둘만의 부 활동을 하다 보니 아야네는 글씨를 읽
씨네21 추천도서 -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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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정치학은 현대철학과 예술비평이 공들여 탐색하는 장소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웨인 케스텐바움이 쓴 <굴욕>을 읽으며 떠올린 책은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이었다. 비슷해 보이는 감정에 대한 책이지만 누스바움이 법철학의 관점에서 수치심을 다룬다면, <굴욕>은 문화예술비평의 형식을 빌려 굴욕의 연대기를 써내려간다.
라틴어 어원에서 굴욕(humiliatio)과 인간(humanus)은 같은 접두사를 공유한다. 굴욕이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감정이자 인간다운 감정이라는 뜻으로 읽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라틴어 어원을 언급했다고 해서 어려운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화예술비평을 업으로 하는 저자의 책답게 읽다 보면 한국의 문화예술에 적용시켜 이야기하고 싶은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왜 사람들은 굴욕적 역할과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리얼리티 TV쇼에 나오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에 이르러 연애 프로그램 <나는 SOLO>가 생각난 것이
씨네21 추천도서 -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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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일러스트가 이 시대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로봇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바쁘게 두들기는 한편, 옆자리는 빈 책상만 남아 있고 소지품들이 흩어져 있다. 메타 같은 거대 IT기업은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선 신입 채용이 얼어붙었다. 클로드 코워크 같은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하는가 하면 피지컬 AI, 즉 로봇이 본격적으로 공장에 투입된다고 한다. 통번역이나 일러스트, 영상 제작 등 인공지능이 침투한 분야에서는 생태계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일자리들이 벌써 사라지고 있다. 빅테크 회사의 거물들은 이같은 변화가 인간에게 급진적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만, 당장 몰아치는 실업 앞에서 막막하지 않을 사람 누가 있을까. 앞으로 남은 시간이 10년쯤이라니 그때까지 돈을 모으자고, 주식을 할까 결심해봐도 미국 대통령 발언 한번에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주식을 모으기가 쉬운 일 같진 않다. 국가에서
씨네21 추천도서 - < 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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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방구에서 병아리며 메추리 새끼를 팔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동안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고 장롱을 뒤져 반짇고리 같은 것들을 만지던 시절이 있었다. 건물이든 관습이든 한국의 많은 것들은 과거가 싹 다 밀려나가고 새로운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다. 그렇지만 사람의 삶이, 내면의 풍경이 얼마나 달라질까. 단편 <통신광장>은 영화 <접속>의 두 주인공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 아이디 ‘여인2’와 ‘해피엔드’로,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나눈 두 사람. 가까운 듯 먼 듯 모호한 사이버 관계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되살아난다. 두 사람이 오류처럼 남아 있는 유니텔의 두 아이디에 접속하여 허공에 손을 뻗듯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현실에 접근한다. 가족은 가족대로 멀어지고 일터는 일터대로 파편화된 지금, 외로움은 투명한 그림자처럼 우리를 붙어다닌다.
친척끼리 돈 문제로 얽히면 안되고, 같은 가족이라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이미 세
씨네21 추천도서 - <너의 나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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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힘이 생긴다. 너 요즘 예뻐진 것 같아, 라고 느닷없이 주변 사람들이 얘기할 때에는 높은 확률로 연애 중이거나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을 때였다. 상대가 나로부터 제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귀가 그쪽으로 쫑긋 세워져 청력이 무시 못하게 좋아진다거나, 그의 입모양만 보고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볼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없던 초능력이 생긴다거나 하는 식은 아니었고 온전히 감각이 하염없이 발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사랑에 빠져 신체 기능이나 지능이 발달하게 된다면 어떨까. 박서련의 연작소설 <사랑의 힘>은 바로 그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인류에 사랑의 미생물 ‘로로마’가 발생해 사랑을 한 사람들은 로로마로 인해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능력은 제각각이라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아져 수능이 몇 등급 상승해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후각이 예민해져 냄새에 민감해지기도 한다. 점프력이 좋아져 농구
씨네21 추천도서 -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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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고민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자기 삶에서 결핍과 허무함을 느끼기에 상담가들의 그 많은 고민 타파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방송되는 것일 테다. 회사 동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할 때에도, 일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괴로울 때에도, 심지어 일과 가정생활 모두가 지나치게 평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조차 우리는 내 삶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지 불안해한다. 난해한 질문에도 명확한 해법을 내놓는 멘토들이 토크콘서트형 강연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바로 릴케의 명언인데, 삶의 고독과 고통에 있어 많은 잠언을 남긴 릴케의 글과 유명한 시구의 상당수는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됐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 낸 편지>는 릴케가 무명의 시인 지망생 카푸스와 주고받은 서한집이다. 카푸스는 릴케에게 매번 자신을 지배하는 각종 고민과 혼탁한 상황에 대해 털어놓는다. 물론 매우 구체적으로 “제발 답을 달라”고 매달리진 않는다.
씨네21 추천도서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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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사랑의 힘> - 박서련 지음 문학동네 펴냄
<너의 나쁜 무리> - 예소연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 - 김대식, 김혜연 지음창비 펴냄
<굴욕> -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모모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 봄날의 책선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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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갖지 않은 사람만큼 특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소유하기, 소유되기>에 나오는 이 문장을 생각하면 율라 비스는 특권에 대해 쓰기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백인, 교육받은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 그가 소유에 대해 썼다. 학교부터 장례식장까지 관계와 문화로 이야기되던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 정체성이 압도하는 시대에, 율라 비스는 삶 전반에서 소유와 관련된 감정의 역동을 이야기한다. 집을 산 뒤 그 집을 채울 가구를 사려는 참에 돋아난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멋지지 않아?’에서 시작해 짧은 사유들을 이어간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엘리자베스 친의 책 <물건과 함께한 내 인생: 소비 자 일기>에는 막 유산을 겪고 하혈하는 몸으로 매장에 가서 그간 사고 싶었던 의자를 두개 구입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친은 가난한 흑인 아동들을 연구했던 인류학자이며 교수인데 가계소득이 9만달러가 넘으며 이 액수는 세계 최고로 부유한 나라에서 상위 20%에 해당한다. 자신이 누리
[culture book] 소유하기, 소유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