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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berry

1985 한국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멜로·로맨스, 코미디 상영시간 : 114분

개봉일 : 1986-02-08 누적관객 : 353명

감독 : 이두용

출연 : 이미숙 나정옥 more

  • 네티즌6.90
일제치하의 용담골에 투전꾼을 남편으로 둔 안협이란 여인이 살고 있는데, 남편은 몇달에 한번씩 들러 옷을 갈아 입고는 돈을 얻어 떠난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을 기다린다. 그녀는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는 그 댓가로 쌀이나 금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동네 머슴인 삼돌에게만은 몸을 허락하지 않아 남편인 삼보가 돌아오자 삼돌은 그녀의 방탕한 생활을 고한다. 그러나 삼보는 오히려 삼돌을 두들겨 패고는 안협을 위로해 주고 다시 먼길을 떠난다. 그러한 삼보를 안협은 다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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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리뷰 (11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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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nggary07
    2008-04-06 08:06:27
    7
    삼돌이의 그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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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40
    2008-04-03 07:52:47
    6
    안 보고도 애로영화로 치부된 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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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e000
    2008-04-03 07:39:56
    6
    유명한 뽕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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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ngusal79
    2008-03-27 01:35:07
    4
    애마부인과 쌍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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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llyears
    2008-03-13 14:17:35
    10
    20세기 초 조선의 말레나

    =======================
    이두용이 연출한 1985년 작품 『뽕』을 디브이디로 봤습니다.

    대중매체에서 『뽕』은 한 중년 탤런트와 묶여 자주 우습게 말해집니다. 디브이디로 영화를 보니 좋던데요. 그렇게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놓고 그냥 지나친다면 조금 억울해 할 영화입니다.



    작품의 주인공 안협댁(이미숙)은 분석심리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마을 여성의 그림자입니다. 여러 남성과 대가를 받고 몸을 섞는 것은 일제 치하 촌 아낙네들이 감히 의식에 올리기 힘든 행동입니다. 마을 여성들이 부도덕하다고 여겨 무의식에 억압한 행태를 안협댁은 몸소 행합니다. 안협댁은 원초적인 여성성입니다. 생계 때문이라지만 여러 남성과 몸을 섞으면서도 죄의식은 보이지 않고 관계할 때도 남성을 이끕니다. 안협댁의 행동은 마지못해 하는 매춘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 작품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삼돌이(이대근)는 마을 남성의 그림자입니다. 윗마을 아랫마을 통틀어 안협댁과 몸을 섞지 못한 남자는 삼돌이뿐입니다. 삼돌이는 열등한 남성성을 뜻합니다. 안협댁은 삼돌이를 그냥 싫다고 말합니다. 원초적 여성성이 이런 열등한 남성성을 받아들일 일이 없죠. 시도 때도 없이 손가락에 침 발라 창호지 문을 뚫어 안협댁을 훔쳐보고 툭하면 덮치려 드는, 안협댁의 행실을 남편에게 이르겠다고 협박하는 삼돌이의 행태는 열등한 남성성을 더합니다. 영화 초반에 마을 술자리 장면이 있습니다. 그 술자리에서 삼돌이는 무거운 맷돌을 들고서 여러 발짝을 걸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합니다. 힘은 남성성입니다. 하지만 삼돌이의 힘은 우등한 남성성에 이르지 못합니다. 삼돌이는 영화 후반 집에 돌아온 안협댁의 남편 김삼보에게 패대기쳐집니다. 안협댁의 남편 김삼보가 바로 우등한 남성성입니다. 원초적 여성성에 맞는 짝이죠.

    무의식에 억압된 그림자는 폭력적인 집단투사를 일으킵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유대인에게 투사해 대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성적이 유일한 가치인 교실에서 성적 이외의 모든 열등한 가치는 모두 억압됐다가 조금 떨어지는 아이에게 투사돼 집단 따돌림이 일어납니다. 이 작품에서도 칠성댁의 은가락지가 문제가 돼 마을 여성들의 집단 투사가 일어납니다. 안협댁은 집단구타를 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날 처지가 됩니다. 하지만 원초적 여성성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짐을 싸 마을에서 나가라고 통보하러 온 임 초시를 안협댁은 자신의 여성적 매력으로 굴복시킵니다. 근방 몇 리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수그린다는 윤리적 권위는 여성성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무릎을 꿇습니다. 이후에 우등한 남성성인 남편이 자꾸 치근대는 열등한 남성성인 삼돌이를 패대기침으로써 안협댁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림자의 폭력적인 집단투사로 처참하게 구타를 당하고 쫓겨날 뻔하다가 우등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남편과 귀환하는 이야기는 낯익습니다. 바로 『말레나』가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말레나』는 바로 이 작품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원초적 여성성이 삶에서 승리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모니카 벨루치와 이미숙의 아름다움은 여신이 풍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이 작품 속 촌락의 성윤리는 조선의 전근대적 성윤리와 현대의 개방적 성윤리의 과도기에 있습니다. 임 초시가 안협댁에게 무릎 꿇었을 때 전근대적인 성윤리도 함께 고개 숙입니다. 제게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을 남성들의 태도입니다. 안협댁이 마을 여성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뒤 안협댁을 마을에서 쫓아낼 것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마을 남성들은 이중적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일이 벌어지면 음란성을 모두 여성에게 돌리며 공격하는 조선 남성들의 이중적 행동을 이 마을 남성들에게선 볼 수 없습니다. 마을 남성들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안협댁에게 투사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태도입니다. 안협댁에게 치근대는 마을 남성들의 행동은 부도덕하지만 사악하진 않습니다. 활력이 넘칩니다.

    이 작품은 활력이 넘치는 삶을 해학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이 작품의 특성은 또 한 편의 동시대 토속 성애영화인 『어우동』과 비교됩니다. 『어우동』에는 이 작품이 보인 활력이 없습니다. 『어우동』은 보여주기보다 주장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주장마저 제대로 하는 데 실패합니다. 활력이 넘치는 민중의 삶을 도덕적 기준으로 재지 않고 해학으로 보여 준 이 작품은 『어우동』보다는 몇 수 위의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작품에 아쉬워한 점은 단 한 가지입니다. 마을 여성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뒤 안협댁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플래시백 장면에서 처녀인 안협댁은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맏딸입니다. 안협댁은 고구마 몇 개를 훔치다가 순결을 잃습니다. 이 장면은 안협댁이란 극중 인물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안협댁이란 극중 인물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을 돕지 못합니다. 필요 없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없어도 관객은 충분히 안협댁이란 극중 인물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에 가득한 활력을 조금 갉아먹습니다. 안협댁의 남편 김삼보는 팔도를 돌아다니는 노름꾼입니다. 웬일인지 김삼보가 마을에 돌아올 때면 헌병 하나가 따라붙습니다. 이 헌병의 존재는 김삼보가 단순한 노름꾼이 아니란 것을 암시합니다. 아마 김삼보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절제된 암시가 김삼보란 극중 인물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런데 왜 안협댁의 과거는 늘어지게 늘어놓았을까요? 제가 아쉬워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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