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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딕티드

Addicted

2014 미국 청소년 관람불가

스릴러, 드라마 상영시간 : 105분

감독 : 빌리 우드러프

출연 : 보리스 코드조 브랜던 곤잘레스 more

모든 여성이 그리는 다정하고 능력있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둔 '조이'는 화가 에이전시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외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한 여성이다.
하지만, 남편과의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허전함을 느낀다. 어느날 갤러리에서 만난
젊은 천재 화가 '퀸튼 카노사'에게서 설레임을 느끼고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위험한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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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리뷰 (25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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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urfier
    2010-12-24 16:12:50
    10
    칠수와 만수.1988.박광수

    =======================

    추락의 아찔한 감각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완성된 고소의 공포는,
    그 시대적 삶의 감각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추락을 가능케 하는 불안한 장면들이
    등장할 때마다, 흡사 카메라가 바람에 날려
    스탭들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으로
    곤두박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는데

    고소의 공포는 연기자라는 예민한
    안테나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이 압도적인 위태로움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긴장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특히 칠수와 지나의 러브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흡사 차이밍 량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영화에서 대사가 없다는 것.
    이상하게도 그것은 내게 가장 영화적인 무엇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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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rill5
    2010-12-09 19:26:44
    10
    높으신 분들의 못된 짓거리가 우리에게 벌어질 때

    =======================


    역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하나다. 그래서 배우기 되게 싫다. 일상에서 굳이 필요도 없을 지식을 시험

    탓에 머리에 억지로 욱여넣고 시험만 끝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역사가 우리의 삶에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이건 단순한 어르신들의 고리타분한 교훈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연관도 없을 것 같던 역사는 우리의 삶에 깊숙이 관여돼 있다. 소위 말하는

    높으신 어른들인 정치꾼들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에 삶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항상 지방의 모든 걸 흡수한다. 인구도 흡수하고 세금도 흡수하고 전반적인 생활, 문화까지

    흡수해 서열을 만들고 지방을 식민지화 시킨다. 그런 서울의 모습에서 칠수(박중훈)와 만수(안성기)는

    도장공으로 일용직의 삶을 버티는 주변인들이다. 그들이 일반인들에게 비춰지는 시선은 대부분 이럴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별 공부를 안 해서 저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시골에서 서울 올라와서 능력 없으니까 저런 일 하지.’

    이런 선입견이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박광수의 시선은 이런 주변인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사연이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인생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만수는 환환 미소로 자신에게 여권이 발행되기를 기대했던 70,80년대 해외 개발 사업의 파견될 산업역군의 꿈을

    꾸던 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원조회는 그의 여권을 발행해 주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단순한 전과자가 아닌

    일종의 정치범으로 보이며 그 덕에 그의 사회생활에 멍에를 씌운 것이다. 원천적으로 부친의 행위로 그 가족

    모두를 싸잡아 직업선택의 자유나 해외여행의 자유를 억압했던 시대의 무게가 그에게 작용해 그를 일용직

    도장공으로 전락시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TV 뉴스를 보며 세상에 던지는 냉소나

    칠수의 허영에 프랑스 출신의 화백으로 분해 클럽에서 대학생 지나(배종옥)와 그녀의 친구를 질타하는 그의

    모습은 사회의 억압에 희생당한 무기력한 이의 항변이라고 볼 수 있다.

    칠수는 민방위 훈련으로 통제된 도로에서 만난 대학생 지나를 꼬시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책 없는 청춘으로

    나온다. 지나를 꼬시기 위해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콜라 한 잔 사마신걸

    부장(남포동)과 싸운 걸 계기로 그는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그만두고 만수의 집에 얹혀산다. 만수는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칠수는 막무가내로 만수의 집으로 들어와 만수의 도장공 조수로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칠수가 부리는 허풍은 단박에 알아챌 정도로 티가 나지만 만수는 그런 칠수의 허풍에 속는 척 한다.

    여기서 칠수의 출생지인 동두천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동두천은 국내에서 미국의 식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 기지의 존재 자체가 이미 그 주변의 소비지로서의 상권을 형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두천에서

    칠수의 부친은 하우스 보이라는 주변인이었고 심지어 자신의 누나는 미군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임신 뒤

    미국으로 건너가 아무런 소식이 없으며 모친은 세상을 떠난 상태다. 그래서 칠수의 허풍에 동두천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미국이다. 현재에도 그 위용을 자랑하는 미국의 촉수가 개인의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칠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며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국내의 상황이 허풍만 늘어놓는 암울한 청춘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성은 다르지만 이름 끝 자가 ‘수’자 돌림인 이 두 명은 친 형제와 같은 관계로 까지 발전하며 우애라기보다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칠수와 만수가 처음 대면하는 장소는 극장의 간판을 그리는 곳이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광고용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역할을 하며 그 본질에 있는 부작용을 은폐한다. 일종의 눈속임과 같은 그림은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허상에 다름 아니며 무기력한 이들이 이런 포장술 역할을 하는 그림을 그리는 설정은 거대

    권력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을 대변한다.

    어느 한 기업의 위스키 광고 그림을 그리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소주를 들이킨다. 그러다

    갑자기 만수가 광고탑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권력층들에게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소리치며 토로한다. 칠수도

    그런 만수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며 지나에게 당한 실연과 집안의 환경에 절규하며 같이 소리를 지른다.

    그들이 소리치는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미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로 스모그 현상이 일상화 된 공간이다. 숨이 막히고 답답한 풍경은 이들의 시선을 통해 들어오고

    이들은 이 답답한 환경을 만든 이들을 향해 질타와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분풀이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분풀이와 스트레스 해소 성 행사는 이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엄청나게 커져만 간다. 높은

    광고탑에 올라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밑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자살을

    암시하는 듯 보이지만 이들은 단지 자신들의 울분을 토로할 공간에서 소리만 지른 것일 뿐이다. 이런 사연을

    모르는 일반 대중은 우선 빌딩 옥상 높은 곳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다. 소리 지르는 모습만을

    보고 하나 둘씩 모이다가 급기야는 경찰에 눈에 띄고 그 이후 노사관계의 악화가 언급되며 방송국의 카메라가

    이들을 비추기 시작하고 광고탑에 있는 그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신들의 의사를 무시한 세상의

    시선에 버티기 시작한다. 만수는 아래와 밑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고는 항상 이런

    식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의사를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권력자들의 시선만 일방적으로 통용되는

    시선이라고 말이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에게 비친 이들은 자살 퍼포먼스를 벌이는 미치광이들로 규정되고

    판정된다. TV라는 제한된 시선이 제공한 영상만을 보며 판단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는 권력자들에게 길들여진

    모습이 포착되며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해보지 않은 모습이 발견되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이들에게 하나의 확성기라도 전달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와 판단으로만

    이들을 판단한 세상은 급기야 만수 부친의 일까지 들춰내며 상처만을 안겨준다. 모두 그들의 의사는 논외

    대상으로만 삼고 일방적인 강요만 하고 있을 뿐이다.

    권력자들의 못된 짓거리로 피해를 입은 무기력한 이들은 자신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했을 뿐인데 이런 작은

    자유는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박탈당한다. 소시민들의 패배로 결론을 맺는 작품은 탈출구 없는 일반

    대중을 대변하며 권력, 도시, 매체가 소시민을 어떻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지를 과장 없이 보여줬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박광수 감독의 시선은 현재에도 유효하며 소시민들의 무기력함의 원인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사회에 더 많이 있음을 폭로했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게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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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orite29
    2010-02-27 02:28:53
    7
    두 남자의 대화에 귀 기울여야한다. 인생사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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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gyption11
    2009-01-24 12:33:23
    7
    시대가 그들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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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hangel
    2008-12-19 23:28:15
    8
    진실이 왜곡되던 사회상을 잘 표현한 사회파 감독의 멋진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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