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늑대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모두가 치명적인 음모를 뒤덮으려 할 때 입을 연 단 한 명의 목격자!!묻힐 뻔 했던 ‘소라야’의 끔찍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다!!
1986년,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사헤브잠’이 차를 고치기 위해 이란의 한 마을에 머문다.
이 때 그에게 접근하는 낯선 마을여자 ‘자흐라’. ‘자흐라’는 조카 ‘소라야’의 잔혹한 폭력 남편과의 정략 결혼 생활과 비극적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사헤브잠’은 점점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잔혹하고도 슬프게 죽어간 ‘소라야’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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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수상more
로스앤젤레스영화제 관객상 수상
겐트 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
하트랜드 영화제 수상
네티즌 리뷰 (5명 참여)
리뷰 남기기-
cdhunter2012-07-09 16:26:399끔찍한 투석형의 시작과 끝을 리얼하게 보여준다.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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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him2012-06-24 10:58:007투석형도 끔찍하지만, 투석형까지 가는 과정이 더 살벌하다.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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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ill52012-06-17 22:57:3010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는 괴물들이 있다. 보편적인 살인의 금기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살인 행위가 그저 세상의 시선에 발각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이코 패스들이 그 괴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였어도 어떡해든 공권력의 포위망에 걸려들면 그
죄과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광기는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 패스들에게만 나타나지 않는다. 국내 역사를 보더라도 왕권 교체
시기가 도래 했을 때 정적간의 권력 다툼은 상대방을 모함해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게 관례였으며 근대에 정권강화를 위해 아무런 혐의가
없는 무고한 이들에게 간첩 혐의를 덧씌워 사형을 언도하거나 그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저지르는 등 일개 사이코 패스가 아닌 사이코
패스와 같은 조직이나 집단에 의해서 민중에 대한 살인이 벌어지기도 한 것이다.
엄격한 이슬람 주의인 이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86년 우연히 들른 쿠파이예 라는 마을에서 이란계 프랑스인 사헤브잠(짐 카비첼)은
자흐라(쇼레 아그다쉬루)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그녀의 얘기에서 드러난 인간의 최악의 모습은 남성 우월주의의 만연, 종교적
극단주의로 인한 맹신, 사법정의가 눈곱만지도 없는 집단 학살의 자행이다.
알리(네이비드 네가반)는 자신의 아내 소라야(모잔 마르노)를 염두지 않은 채 14살짜리 소녀와 결혼하려고 한다. 그런데 소라야가 순순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알리는 소라야를 모함에 빠뜨리고 죽이려고 한다. 쿠파이예 마을의 인심은 이런 때 집단적인 광기로 변한다.
전과자 출신인 물라(알리 포타시)가 소라야에게 알리와 이혼 하라고 종용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거둬 줄테니 행복하게 살자며 꼬드긴다. 한
집안의 개인적인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들에게 공유 되는 것도 끔찍한데 사이비 종교 지도자라는 인간은 알리의 비정상적인 욕심을
지적하기는커녕 그 비정상적인 현상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는 것이다. 소라야의 이모 자흐라는 소라야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조카를 보호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시장이라는 에브라힘(데이비드 디안)은 공무원으로서 이 현상에 대해 공정한 시선을 갖지 않는다. 알리가 이 남자들을 무엇으로 매수했는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 이웃 남자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그와 일말의 피부 접촉도 없었던 소라야는 알리의 농간에 간통혐의의 누명을
쓰고 노상에서 알리에게 폭행을 당하가 결국 제목 그대로 투석 형에 처해지는 끔찍한 종말에 직면한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개입이나 이런
광기를 외부에 알릴만한 마땅한 소식통은 없다. 남자들만이 참여한 회의는 그 결과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없으며 더 암담한 것은 소라야의
부친마저도 자신의 딸의 입장을 대변하기는커녕 남성 중심적 시선에 함몰돼 소라야를 보고 창녀라고 욕하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광기는 종교로 이 종교는 그 종류를 불문하고 지극히 권력자 중심적이며 그런 시선 탓에 어떠한 비판과 반박을 허락지 않으며 심지어
상식에 해당하는 항목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무고한 여인의 하반신을 땅에 묻고 두 팔을
결박한 뒤 마을사람들이 마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죄목으로 소라야 에게 무수히 던지는 돌들은 코란을 악용한 행위이자 사이코 패스들이
휘두르는 칼과 다를 바가 없다. 더 끔찍한 모습은 소라야의 아들이 남자들 특히 아비인 알리의 강압에 못 이겨 엄마에게 돌을 던지는
모습이다. 이란 사회의 여성 천시 악습은 단순한 여성 인권 문제뿐 아니라 심지어 기본적 애정 조건으로 맺어진 혈육관계조차도 경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라야의 투석 장면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반 공포영화에서 흔히 보아오던 스플래터의 모습이다. 그 수많은 돌에 맞아 계속 들썩이는
소라야의 상반신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인간 광기에 고통에 빠진 한 불행한 인생이자 심지어 고통을 당하는 소라야의 모습이 영화 속의 연출이
아닌 실질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은 인간의 광기와 어그러진 욕망이 한 개인의 삶을 끔찍하게 끝낼 수 있다는 공포다.
자흐라의 얘기를 다 들은 사헤브잠은 별 다른 말없이 그 사안의 중대함을 표정으로 나타내고 그가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자 사건의 주모자들이
그를 막으려고 혈안이 된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아는 이 최악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치장하던 순간을 잊은 채
세속적 사법정의가 자신들에게 내려질까 노심초사한다.
기존까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란 영화들은 그 온화함으로 자극적인 헐리웃의 시선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감성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해
왔으나 ‘더 스토닝’은 그런 온화함과는 거리가 먼 이란의 끔찍한 현실을 아무런 검열 없이 보여줌으로써 이란 내에도 최악의 인간들이 있음을
보여줬다. 종교적 억압을 차치하고 남성들에 의해 그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란 여성들은 인간적 존엄이 훼손되었고 그 구제방법 또한
전무한 상황이었다.
규모의 중ㆍ경과 무관하게 살인범뿐만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는 이 극악무도한 사회도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된 최악의
인간들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아야 하지만 이런 최악의 인물들이 배후에서 현장 상황을 조정 한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현실이
공통적인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도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함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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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ack2012-06-12 18:29:051021세기에도 이런일이 벌어지다니 종교가 끼치는 무서운 죄악이네요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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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yoon472012-06-12 10:10:138너무도 끔찍하여 순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간음한 여자에게 가하는 투석재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고한 여인에게 가해지는 이런 처참한 형벌은 그것이 종교적인 단죄라 할지라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잔인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친정아버지는 물론 남편도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증오의 눈빛으로 행해지는 아들의 돌팔매는 도저히 인간이기를 거부한 짐승의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시종 숨을 죽인 듯한 객장의 분위기는 암울함 바로 그 자체였다. 이것이 실제로 이란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났던 실화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more 신고
이 작품이 토론토 영화제를 비롯 세계의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포함 많은 상을 받았다는 것에 충분한 공감이 간다. 특히 희생자의 이모 역을 했던 쇼레 아그다쉬루의 연기는 가히 이 작품에 방점을 찍고도 남음이 있다. 이란 영화들이 각종의 영화제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된다.
비록 안타까운 내용을 다룬 이야기지만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