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드라마의 일반문법을 뒤집어 변호사가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하려 애쓰는 파격적인 설정이 이채롭다. 퍼티그는 병원의 태만으로 아들을 잃어버린 뒤 간호사.의사.직원을 보복살해하고 자수한다. 퍼티그의 고용주인 레이노블은 막대한 돈을 써가며 블리키에게 변호를 맡긴다. 퍼티그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의사의 진단만 있으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는데도 정직한 성품 때문에 스스로 유죄라고 주장한다. 레이노블은 퍼티그의 정신분열상태를 입증하기 위해 의사를 매수하는 일도 마다지 않는다. 블리키는 레이노블의 노력 뒤에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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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ercap2005-02-16 17:40:571그의 매력에 쏙 빠지고 싶다.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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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py92004-09-10 17:08:46컨페션....미국의 속성과 강박을 알구 잇는...mor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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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아마 모르긴 몰라도 미국을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아닐까..내가 머 글타고 미국문화에 엄청 조예가 깊은건 아니지만..
레퀴엠....볼링 포 컬럼바인....머머 생각이 안난다만 티비라는 매체를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룰땐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 하는것 같드라마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왜 부기 나이트 라든가 래리 플랜트 같은 영화들이 오버랩 될까나...
미국문화의 이해..흠...그 참 안살다 와봐서뤼..
하지만 그들도 대중문화 , 대량생산의 문화라고 밖에 애기할수 없는 그 물량공세에 스스로 지방 비계도 엄청 불리엇지만 거의 지방간 수준으로 질이 아닌 양으로만 채워진 지네들 멘탈리티를 걱정하고 잇는 영화들 아닐까 싶어...
귀엽게 보긴 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러프하게 말해 미국을 규정하는 두 가지
티비가 심어주는 마비감과 동시에 우매한 중독성과 불쾌한 포만감과
그 대중조작의 후면에 서잇는 이데올로그들 (씨아이에이같은)
의 정치공작...
내가 볼땐 티비는 자국민을 공포와 강박증에 찌들은 .. 그걸로 더많은 소비만을 충동시키는 .....
싸이이에이는 타국민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며 언젠가 그들의 시장으로 만들고픈 ......
한마디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두가지를 잘 풀어낸 그리고 모티브를 잘잡은
죠지 클루니의 연출력과 사회의식을 모두 존경하게 되었다. 이상. -
fuggy2004-07-08 15:20:42컨페션 - 쇼 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빚어지는 아이러니mor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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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이택림이 진행하던 ‘화요데이트’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즘도 종종 볼 수 있는 짝짓기 프로그램인데, 한 명의 여성과 3~4명의 남성이 출연하였다. 그 프로그램은 얼굴을 마주할 수 가 없으며, 대화로만 서로의 가치를 판단하고, 마지막에 가서 여성이 선택을 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형식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인기프로그램은 뽀빠이 이상용이 진행했던 ‘우정의 무대’이다.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라는 말은 국민적인 유행어가 되었고, “엄마가 보고플때~ ”로 시작되는 노래 또한 지금도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리얼리티 쇼’라 하여 요즘에는 ‘사람’에서 ‘동물’로 그 폭을 넓히고 있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미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만들어진 형식이다.
영화 ‘컨페션’은 그 리얼리티 쇼의 창시자인 ‘척 베리스’의 자서전을 기초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 나타난 쇼와 우리가 봐왔던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팁이다.) 그는 미국에서 텔레비전의 저속함을 가속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제작자이다. 하지만, 그가 고백(conffesion)하고 있는 것은 그 비판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자 이면에 있는 33명의 사람을 죽인 국가비밀요원으로서의 이중생활을 고백하고 있는 것.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리나라로 치면 ‘주철환’이나 ‘쌀집아저씨 이영희’가 이러한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것인데... TV로는 자신들의 오락을 만족시켜주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국가의 이데올로기 수호를 위한 살인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면, 역시 이것은 믿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고백이다.
‘척 베리스’ 자신도 그러한 반응을 염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겨둔 것일까? ‘위험한 마음의 고백’이란 제목의 이 자서전은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작자 자신도 ‘거짓말 일지 모른다’는 단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짓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컨페션’은 영화의 시작에 앞서 “척 베리스의 인터뷰와 일기 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며 사실에 기초했다는 자막을 내세운다. 영화가 본질적으로 허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컨페션’은 사실의 변조 이전에 그 사실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아이러니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실의 진위를 떠나서 ‘척 베리스’는 분열된 자신의 과거를 재현했거나, 혹은 그것을 은유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열은 개인의 심리상태만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가 회상한 1960년대부터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래한 1980년대까지 미국은 어땠는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기운과 히피문화가 깔려있던 미국은 발전과 그로 인한 부작용이 함께 공존하던 시기에 있었다. 또한, 그 발전을 향유하던 미국인들은 TV와 영화,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미국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한편, 냉전이데올로기에 발맞춰 자아와 타인을 냉혹하게 구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척베리스는 그런 대중들앞에 전면으로 나서서 그들을 위한 오락을 제공하던 사람이었다. 음치인 사람들을 모아서 노래를 시키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땡쇼”를 제작하면서 그는 “비웃음 당하길 즐기는 미국인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한다. 척 베리스는 미국인의 분열된 모습을 가지고 다시 미국인에게 봉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인 것이다.
영화속에서 그의 위조된 유언장으로 만들어진 “난 그대들이 아는 내가 아니다” 라는 문구는 다르게 보면 미국은 그대들이 아는 미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인물과 시대에 대한 선험적 정보가 이러한 해석을 유도한다면, 배우인 ‘조지클루니’의 감독데뷔작이고 게다가 ‘스티븐소더버그’가 제작한 영화라는 사실은 ‘컨페션’에 대한 선입견을 제공한다.
‘팀 로빈스’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고, 헐리우드 배우들의 영화연출이 일종의 자기과시로 평가받는 과정에서 ‘조지클루니’가 연출을 한 작품이라는 사실 또한 안좋은 선입견으로 작용한다. ‘소더버그’가 제작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 “클루니가 뭘 했겠어?“ 이런 생각이 앞설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영화속에는 ‘소더버그’의 그림자가 짙다. 그리고 그의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스타배우들이 조연과 까메오를 가리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더버그’가 ‘클루니’옆에서 잔소리를 했다고 할지라도 ‘컨페션’의 연출은 탁월한 경지에 있다. 롱테이크로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연출은 흔히 수평으로 이루어지지만, ‘컨페션’은 수직까지 아우른다. 또한, 장면의 전환에 앞서서 한 템포 빨리 나오는 ‘알렉스 워먼’의 음악은 ‘이중생활’에서 빚어지는 긴장을 더 극적으로 승화시킨다.
무엇보다도 처음과 사이사이, 그리고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하는 ‘척베리스’의 주변인물 인터뷰는 매우 영화적인 완결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첩보영화’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영화로서 드러내는 배신과 음모, 반전 등은 장르적 컨벤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나, ‘패트리샤’(줄리아 로버츠)를 만날 때 마다 흐르는 ‘월광소나타’는 어떤 때는 ‘우스꽝스런 비장감’을 전해주면서 코믹적인 요소로 기능하지만, 어떤 때는 여타 흔한 첩보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만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런 약간의 아쉬움도 ‘조지클루니’에 대한 기대를 주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감독으로서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 혹은 ‘소더버그’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아닌 헐리우드의 배우 겸 감독으로서 ‘조지클루니’의 행보에 대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