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엄마는 일어나 나를 위해 점심을 준비한 후 집을 나선다. 저녁마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 씻은 후 안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9시쯤 잠자리에 든다. 우리 모녀는 몇 십 년 동안이나 같은 공간을 공유해 왔음에도, 한 지붕 아래 사는 남보다 못한 존재로 서로를 대해 왔다. 반갑다는 인사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더더욱 없다. 침묵이 집안을 감돈다. 귀청이 터질듯한 침묵의 저편에는 엄마를 강하게 짓누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고, 꽉 다문 입술의 저편에는 엄마를 숨 막히게 하는 수치심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엄마와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과연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과연 우리 모녀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것일까?
(2017년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more
(2017년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