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도올!
시간을 초월한 숨결이 생생히 살아있던 고구려,바람 불고 추웠던 만주벌판에서 느껴본 발해,
나이 칠십에야 처음 찾아왔다고 한탄했던
우리 모두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뜨거운 여정!
도올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황홀한 시간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동영상 (5)
- 제작 노트
-
Prologuemore
“이게 바로 내가 살던 고향이었어!
자동차가 사라진 텅 빈 종로와 질풍노도와 같은 인파의 홍류는
해방된 고조선의 영고·동맹제와도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곳은 억압도, 착취도, 사기도 없었단다!
조그만 밭뙈기 하나 있으면 못 살 일도 없었고,
잘 살게 해준다고 꼬시는 사람도 없었단다!”
도올 김용옥(‘한겨레’ 특별기고문 중 발췌)
Hot Issue 1
“대한민국에 덮인 구름이 모두 걷히길 바라겠습니다”
2016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단 하나의 영화
올가을, 최고의 감동을 선사할 감성무비의 탄생!
JTBC 프로그램 [차이나는 도올]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국보급 철학자, 도올 김용옥의 첫 스크린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연이은 정치사회적 이슈들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희망을 선사할 감동적 영화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그간 사안을 명확히 꿰뚫는 ‘사이다 일침’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해왔던 도올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중국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부정부패를 처단해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이렇게 지도자들이 타락해왔는지 참으로 비참하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 도올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삶이고, 새로운 학문이고, 새로운 철학이고, 새로운 의식이다. 지금부터 단군 이래 없었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 국민들의 함성이야말로 진정한 헌법이다”라며 전국민의 참여를 독려하여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이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고구려’를 제시하여 또 한 번 주목 받았다. “고구려사는 곧 현대사다. 고대사를 마치 대한민국의 옛날 역사처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대사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문제! 고구려의 모습을 현장에서 바라볼 때 눈물이 났다. 왜 이제껏 이 역사를 모르고 살았나 하는 회한. 문헌으로 보는 역사와 그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역사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 역사를 통해 우리의 인식구조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도올의 혜안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오는 11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이러한 도올의 인생철학이 응축된 작품으로, 그간 역사 책에서만 보아왔던 고구려, 발해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껴보는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고구려, 발해인들의 삶의 모습을 반추하여 앞으로 나아갈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2016년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역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에만 갇혀서, 전 우주를 배경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고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을 통해 우리의 자산인 ‘고구려’를 되찾고, 넓은 무대로 나아갈 포부를 젊은이들로 하여금 갖게 함으로써 헬조선을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재인식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도올의 이야기처럼,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이 전 국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갈 희망을 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Hot Issue 2
“차이나는 도올? 고구려는 도올!”
도올 김용옥의 70평생 인생철학의 완결판!
인문교양 베스트셀러 [도올의 중국 일기] 전격 영화화!
우리 모두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가슴 벅찬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중국 연변대학에서 객좌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일기 형태로 기술한 [도올의 중국 일기]를 전격 영화화한 작품. 총 5권으로 출판, 광범위한 역사인식과 깊이 있는 관점으로 다이내믹한 중국읽기를 담아내고 있는 [도올의 중국 일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는 ‘중국 견문록’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에 대한 감상을 넘어, 광활한 대륙에서 느끼는 우리 역사의 실상을 고스란히 전함으로써 인문교양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고구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책”, “막연한 역사인식이 새롭게 뒤집어진다”라는 호평을 받았다.
주몽의 도읍지 흘승골성에서부터 고구려의 상징 광개토대왕비, 발해의 터전이었던 만주벌판 등 고구려, 발해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한 <나의 살던 고향은>은 ‘신화’로만 알고 있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완벽히 뒤바꿀 신선한 영화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현장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도올이 “우리 민족의 숨결을 한번 느껴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사를 천 번 가르치는 것보다 단 한 장면 이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것이 바른 교육이다”라는 감회를 전하는 대목은 역사교육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명장면. 또한 영하 20도를 웃도는 만주벌판의 추위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고구려 때부터 발해를 거쳐서 최근의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축적되어 있는 역사를 이 눈길을 걸으면서 한 번에 느끼게 된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 대륙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추위를 터전으로 삼았던 발해인들은 참 용감했다는 것을, 또한 이런 추위 속에서 독립군들이 얼마나 힘들게 독립운동을 했을지 그대로 느껴진다. 이 동북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라는 소회를 전하는 장면에 이르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역사’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올가을, 찬란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의 여정을 눈앞에 펼쳐낼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우리 모두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가슴 벅찬 순간들로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
Hot Issue 3
“일제시대, 조선시대가 전부가 아니다?”
역사영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명량>에서부터 <밀정>까지, 대한민국 흥행 열풍 코드는 ‘역사’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역사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관객 수 1300여 명 동원,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에 없던 전무후무한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명량>을 시작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비극을 송강호, 유아인 두 배우의 호연에 힘입어 왕과 세자가 아닌 부자의 관계로 섬세하게 풀어내어 호평을 받았던 <사도>, 1930년대 조국이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천만 관객 돌파, 역사영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암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담아내어 예상치 못한 흥행 이변을 일으켰던 <귀향>, 친일과 항일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2016년 하반기 극장가를 장악한 스파이 영화 <밀정>까지, ‘역사영화’는 극장가의 검증된 흥행 공식이 되었다. 주로 조선시대, 일제시대 등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여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아냈던 역사영화는 스크린 밖에서의 역사교육 열풍까지 불러 일으키며 새로운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영화 최초로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나의 살던 고향은>은 이러한 역사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써내려갈 화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주로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시선으로 재구성하여 극적인 몰입도를 선사했던 기존의 역사영화들과 달리, <나의 살던 고향은>은 고구려, 발해인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역사적 공간들 속에서 삶의 풍경들을 상상하게 하는 독특한 영화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매력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세계의 중심축이라 생각했던 고구려인들의 거대한 세계관이 우리 역사의 진행과 더불어 축소되어 내려간 것을 반성해야 한다. 과연 오늘날 조선왕조를 거쳐서 오늘의 문명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우리들이 과연 우리 자신을 이 거대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기개만이라도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역사이자, 현재를 살아갈 또 하나의 교훈이 될 ‘고구려’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잊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 극장가에 ‘역사’ 열풍을 일으켰던 <명량><사도> <암살><귀향><밀정>의 바통을 이어받아, <나의 살던 고향은>이 이번엔 ‘고구려’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Travel Diary
10월 2일 목요일
상상력의 여행을 떠나다
여행의 시작! 연길에서부터 안도-> 동청-> 열다섯 시간을 거쳐 ‘환인’으로!
나이 칠십에 처음 발 디딘 고구려, 나는 첫날 확신을 했다. 고도로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행이라는 것을. 고분을 쳐다보면 다 똑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분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를 돌아보시고 이 주변의 성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상상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
10월 3일 금요일
고구려, 신화가 아니었다
주몽의 최초 도읍지인 환인 지역 도착! 흘승골성 -> 상고성자 -> 미창구 장군묘
주몽이 여기를 왔다가 이 뿌연 비류수 가에서 안개가 걷히면서 저 성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고 저기다! 내가 바로 도읍할 곳이 저기다! 외쳤던 곳이 바로 내가 서있는 이곳 흘승골성이 아닐까?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곳을 와서 보시고 그야말로 통곡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되찾아야 되겠다고 외친 그 감회가 바로 이곳에 서린다. 게다가 비석에는 방대한 내용이 적혀져 있고 이 지명, 인명을 그대로 추구할 수 있는 무덤이 있고 그 옆에 성이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신화일까? 내가 신화 속에 살았구나. 주몽이 신화 속에 산 게 아니라 내가, 나의 인식이 신화 속에 살았구나.
10월 4일 토요일
삼배가 아니라 오배다
집안시. 환도산성에서 믿기 힘든 스케일의 무덤떼,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국내성벽과 압록강변을 따라 거닐다
천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 환도산성. 남쪽 광활한 초원 위에는 방대한 4천7백기의 고분군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다 더 광활하고 우주적인 느낌. 고구려인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군사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성 곳곳의 모습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누가 계승했는가? 그 선조들을 향해서 삼배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오배. 나는 다섯 번 절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10월 5일 일요일
미천왕을 만나다
감격스러운 환도산성에서 만난 파헤쳐 진 미천왕의 서대묘
어제는 환도산성에서 너무도 감격스럽고 그 빛이 좋아서 엄청난 거리를 거닐었다. 오늘은 고구려가 대국이 될 수 있는 최초의 전기를 마련한 미천왕, 미천왕의 묘를 찾았다. 고구려의 역사가 중원과 결별하게 되는 그러한 갈림길. 만약에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지 않고 국내성에서 그 역사가 끝났다고 한다면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10월 6일 월요일
통일이여 오라!
가장 아름다운 요리가 있는 곳 모두루총에서 가슴 시린 압록강변을 지나,
고구려인들의 삶의 모습이 그러져있는 장천1호분 그리고 다시 연길로
압록강변을 거닐다 눈물겨운 것은 북한 사람들하고 내가 같이 걸어간다는 것. 자전거를 타고 가고 애들이 천변에 나와서 놀고 뛰놀고 이런 모습들이 그대로 보인다. 눈물이 나왔다. 이게 우리 민족의 모습인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장천1호분에 올라와 보니까 너무도 감개무량한 것은 저기 바라보이는 저 산하, 양쪽으로 이렇게 같은 산하가 있는데 저쪽은 못 가는 산하고 이쪽은 우리가 갈수 있는 산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옛사람들이 여기서 이 개울을 국경으로 인식했겠냐는 말이다.
12월 5일 금요일
천 년 왕 국
다시 돌아온 연길. 발해의 두 번째 수도 서고성
연길 지역은 발해 수도가 있었던 지역이다. 고구려 고도이면서 발해의 중심지 중에서 하나인 곳. 오늘은 유난히 추운데 이 바람이 한국에서 맞는 바람하고 질적으로 다르다. 내가 영하 20도되는 추위를 많이 겪었지만 벌판에서 밀려들어오는 바람의 느낌은 이 질감이 다르다. 거대한 대륙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추위. 아! 발해인들은 역시 그 용감했다. 이런 추위 속에서 이렇게 멋있게 살았구나.
12월 6일 토요일
걸어가는데 그냥 눈물이 나온다
중국 동북에서 가장 큰 평원 훈춘벌, 온특혁부성 -> 배우성 -> 신생사 -> 팔련성 -> 살기성으로
훈춘은 모든 간판이 러시아어, 중국어, 우리말로 되어있다. 그래서 러시아, 중국, 북조선 모두가 만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온특혁부성. 걸어가는데 얼마나 추운지 그냥 눈물이 나왔다. 이런 추위를 생각하면 이 추위 속에서 항일투쟁을 한 모든 사람들, 동북 사람들이 여기 모든 이 지역에 살면서 얼마나 고생했고 우리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나는 지금 이 추위 속에서 절감한다. 팔련성을 지나 살기성에 다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우리 독립군들이 힘들게 독립운동을 했겠는가? 그리고 나보고 여기서 하룻밤을 자라 그러면 잘 수 있겠는가! 정말 고구려 때부터 발해를 거쳐서 최근에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축적되어 있는 역사를 눈길을 걸으면서 한 번에 느끼는 감회가 밀려왔다. 산새와 평원은 참 아름다웠다.
12월 7일 일요일
역사는 감이다
영안시에서 발해의 황궁 상경용천부, 발해인들의 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흥륭사까지
처음에 여기를 와서 상경이라고 찾아왔을 때 이거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이 발해의 고성을 떠나면서 이곳이 그 어마어마한 장엄한 궁궐의 터 였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런 감이 없었다. 역사라는 건 감을 잡는 것이다. 역사는 현장에 와서 그야말로 감을 잡지 않으면 역사는 우리의 살아있는 우리의 역사가 되지 않는다.
12월 8일 월요일
아! 고구려 아! 발해
마지막 여정, 가자 성자산성으로!
해란강과 뿌얼허통허가 만나 두만강으로 빠져가는 그곳에 있는 성자산성. 산성을 걸으니 고구려 옛 성을 걷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정말 거의 데시벨이 제로에 가까운 이 태고의 환경과도 같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아야 할 고구려의 옛 모습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일 것인데… 고구려, 발해기행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고구려인들 발해인들은 세계의 주축을 자기네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거 하나만은 꼭 기억을 해야 될 것이다.
Director’s Note
Q. ‘고구려, 발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과정을 영화로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A. 2014년 도올 선생님이 연변대학교 초빙교수로 계실 때, 고구려 유적을 찾아가는 여행에 함께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실로 장난이 아니었다. 찾아볼수록 엄청난 고구려의 느낌을 일행 모두가 느꼈고 그로 인해 여행 일정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Q. 거대한 대륙에서 고구려, 발해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촬영 과정은 어떠했는지?
A. 촬영이 가을, 겨울에 집중되어 있어서 해가 짧았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이 빨라 오후 세시면 벌써 해가 기운다. 새벽부터 점심 식사도 거르면서 촬영했지만 이동거리가 길고 봐야 할 곳이 많아 엄청 서둘러야만 했다. 거기다 우리가 보고 싶은 유적들을 현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어려움도 많았다. 현지의 택시기사들을 섭외해서 따라다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연변대학교의 전공교수와도 계속적으로 통화하며 찾아 다녔다. 발해 지역을 촬영할 때는 정말 처음 겪어 본 추위와 싸워야 했다.
Q. 영화를 구성하는 데에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A. 도올 선생님이 느낀 그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했다. 나이 칠십에야 찾아왔다고 한탄하고, 거대한 스케일에 놀라고 감격하고, 강 건너 북한 모습에 눈물 보이던 노학자가 보고 느낀 고구려 발해. “제 인생을 바꾼 사건” 이라고 말하는 도올 선생님이 찾은 고구려 발해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싶었다.
Q.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고구려, 발해가 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년왕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너무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광활한 만주벌판을 누비던 고구려 발해인들의 진취적인 기상 그 기개만이라도 다시 한 번 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더불어 '고구려'가 현재 시대에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A. “우리가 코리안인데, 이게 고구려 아닙니까?” “고구려사는 곧 현대사다. 고대사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문제다. 헬조선을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재인식할 기회다”라는 도올 선생님의 말씀으로 답을 대신한다.
Epilogue
“고구려 사람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오늘의 문명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우리들이
과연 우리 자신을 이 거대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기개만이라도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도올 김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