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지도에도 없는 산골 마을,
아무도 모르게 걸어둔 문을 열고 손님이 왔다
1950년대의 어느 날,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영남(구승현) 부자는 서울로 가던 길에 우연히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들어선다.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달리 촌장(이성민)의 강력한 지도 아래 모든 게 평화롭고 풍족한 마을이지만 단 하나,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쥐떼들이 골칫거리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떼를 쫓아주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 영남이의 폐병을 고칠 목돈을 준다는 약속을 믿고 우룡은 피리를 불어 쥐떼를 쫓아낸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마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룡과 마을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부르지 않은 손님이 온 그 날 이후, 너희들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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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걸어둔 문을 열고 손님이 왔다
1950년대의 어느 날,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영남(구승현) 부자는 서울로 가던 길에 우연히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들어선다.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달리 촌장(이성민)의 강력한 지도 아래 모든 게 평화롭고 풍족한 마을이지만 단 하나,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쥐떼들이 골칫거리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떼를 쫓아주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 영남이의 폐병을 고칠 목돈을 준다는 약속을 믿고 우룡은 피리를 불어 쥐떼를 쫓아낸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마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룡과 마을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부르지 않은 손님이 온 그 날 이후, 너희들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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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리뷰 (12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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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wer2019-07-18 15:39:1855분마다 뚝뚝 끊긴다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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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y20032016-10-02 20:34:405이 허접한 영화를 두고 관객들이 행간을 못 읽는다고 말하는건 뭔가..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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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mjh2015-08-28 20:40:346어떤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는지는 알겠으나 연출이 성공하지는 않은 듯.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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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idea2015-08-03 23:40:456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어색함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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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ill52015-07-26 22:55:2710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괴롭히는 게 정당하다고 맹신하는more 신고
이들이 현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주특기는 자신이 한 공약을 언제 그랬냐고
안면몰수 하고 자신들의 심기만 불편하면 직선적이고 날선 반응을 언론을 통해 ‘내 성질 건드리면 가만 안
놔둔다.’고 엄포를 놓을 뿐이다.
해방된 지 고작 5년이 지난 이후 다시금 패권 국가들의 먹잇감이 된 한반도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친일 행적을 보인 인사들이 독립 운동가들보다 더 잘살고 큰소리를 치는 비정상의 사회로 돌아섰다.
조선시대에도 항상 자신들의 사리사욕 이외엔 관심 없는 이들이 승승장구하고 타인의 고통으로 잘 살았듯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이 만연한 비정상성은 지속되는 듯 보인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동기로 제작한 ‘손님’은 밥 먹듯이 나쁜 짓 밖에 할 게 없는 기득권들의 맨
얼굴을 전면에 부각시킨 작품이다. 촌장(이성민)은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의 등장을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로만 치부했다가 골치 아픈 쥐떼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강한 경계심을 지니게 된다. 단순히 그가
지닌 뛰어난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해결하는 문제가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의도치 않게 그가 촌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데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무당인 미숙(천우희)과 우룡의 로맨스는 촌장이 고수했던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되고
촌장은 아들 남수(이준)와 함께 우룡을 빨갱이로 몰아 내좇을 생각을 하게 된다.
‘손님’엔 비겁하고 이기적인 정치인, 그 선동에 놀아나는 주민들, 열등감을 증오심으로 바꿔 자신들에게
혜택을 줬던 이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피 비린내 나는 한국의 현대사가 다 축약돼 있다. 마을의 존재부터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운명은 결국 촌장과 무지몽매한 마을 사람들의 죄로 복수가 완성된다. 이
복수가 꼭 복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현실에도 쥐떼에게
뜯어 먹힐 이가 한 둘이 아닌데도 아직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온갖 고통을 선사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