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인공위성 쏘면서 꿈과 희망을 전파하고 있어…”
티셔츠 1만 장을 팔아 1억 원의 인공위성 발사비용을 충당, DIY 방식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띄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도전한 아티스트 송호준. 오늘도 그는 자신만의 별을 쏘아 올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망원동 지하 작업실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티셔츠는 도통 팔리지 않고, 발사 일정은 거듭 연기된다. 까다로운 기술적 문제까지 돌파해야 하는 인공위성 DIY 작업 속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는 점차 벅찬 도전이 되어가는데… 과연 송호준은 성공적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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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1만 장을 팔아 1억 원의 인공위성 발사비용을 충당, DIY 방식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띄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도전한 아티스트 송호준. 오늘도 그는 자신만의 별을 쏘아 올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망원동 지하 작업실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티셔츠는 도통 팔리지 않고, 발사 일정은 거듭 연기된다. 까다로운 기술적 문제까지 돌파해야 하는 인공위성 DIY 작업 속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는 점차 벅찬 도전이 되어가는데… 과연 송호준은 성공적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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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 걸까?”
촬영감독으로 일해온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한테 좋은 촬영, 좋은 기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고 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우리는 완벽한 영화를 원하는가? 그 질문과 고민은 결국 ‘나’는 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깊어질 무렵 잡지에서 머리 긴 청년의 사진을 보았다.
“당신은 왜 인공위성을 쏘려고 하나요?”
2010년 가을, 잡지 <1/n>의 한 페이지에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러시아 소유즈 로켓에 DIY로 제작한 큐브샛(cube satellite)을 실어 우주로 쏘아 올리고, 1억 원의 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 1만 장을 판다는 기발한 아이디어. 잡지에 나온 송호준의 사진을 보며 그는 ‘왜 인공위성을 쏘려는 걸까?’ 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트위터를 팔로잉했다.
2010년 겨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송호준을 처음 만났다.
“왜 인공위성을 쏘나요?”
“음악을 듣거나 산을 오르는데 이유가 있나요. 그거와 같죠.”
나는 그에게 한 번의 질문으로 진짜 대답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의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 - OSSI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담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내년 5월에 발사합니다!”
송호준과 첫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망원동의 지하 작업실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망원동 사거리에서 환하게 웃으며 송호준이 등장했다.
“결정됐어요! 발사가 결정됐어요! 내년 5월에 발사합니다!”
2011년 6월, 송호준은 노바나노와 가계약을 체결하러 프랑스로 떠난다. 송호준은 노바나노가 제작한 인공위성 발사 어댑터 ‘플라이메이트(FlyMate)’을 사용하기로 계약하고, 노바나노가 러시아 측과 로켓 발사에 대해계약한다는 것이다. 계약식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만들고 싶어 했던 송호준은 이를 위해 휘장, 깃발 등을 준비하느라 밤을 꼬박 샜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송호준은 여전히 신나 있다.
“돌덩이라도 쏘아 올릴 거예요!”
2011년 늦가을, 호준과 나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에코파티(ekoparty)’라는 해커 보안 컨퍼런스와 트리마치(trimarchi)라는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하도록 초청받았던 것이다. 컨퍼런스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온 호준은 프랑스에서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발사일이 최종 결정되었다는 전화였다. 애초 5월 중순으로 예정되었던 발사 일정이 러시아에서 최종 조율, 승인이 되었다는 것. 바로 2012년 8월 31일.
“돌덩이라도 쏘아 올릴 거예요.” 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드디어 시작인가 라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런데 오히려 호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드러누우며 내뱉은 그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왜 하는지 모르겠어….’
“티셔츠를 사주세요”
송호준이 맞닥뜨린 커다란 난관은 발사비 문제였다. 티셔츠는 잘 팔리지 않았다. 호준은 백화점이나 IT 기업 등 외부 후원도 알아보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11년 겨울, 노바나노와 러시아의 계약이 마무리되고, 발사일인 8월 31일 전까지 1억 원의 발사 비용을 4번에 걸쳐서 분할 납부해야 한다. 게다가 2012년 5월 말까지 인공위성을 완성해 프랑스 노바나노로 전달해야 한다. 남은 기한은 5개월. 호준은 티셔츠 판매와 인공위성 제작이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인공위성만 만들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송호준은 ‘OSSI 인공위성 티셔츠 책임자 구인 동영상’이라는 영상 작품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티셔츠 판매를 도와줄 자원봉사자 설유연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인공위성 제작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박동희와 함께 본격 작업을 시작했다.
위성 발사일이 8월 31일에서 10월 3일로 밀렸다. 그러나 노바나노에 위성을 전달해야 하는 5월 말의 데드라인에는 변화가 없었다. 너무나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호준은 노바나노에 연락해 위성 전달일을 6월로 연기한다. 서서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티셔츠를 팔면서 인공위성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계속 밤을 새가며 끊임없이 납땜하고 측정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상황, 스스로 벌인 일에 점점 치이는 송호준. 저렇게 힘든데 왜 인공위성을 쏘려고 하는 걸까. ‘자기가 벌인 일’을 하는데 왜 정작 당사자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꼭 해야만 할까. 송호준은 왜, 인공위성을 쏘려고 했을까?
"2013년 4월 19일 소유즈 로켓 발사 확정"
결국 마감일까지 인공위성을 완성하지 못한 채 모든 부품을 싸들고 프랑스 리옹 노바나노 본사에 도착한 호준과 나. 송호준은 프랑스에서도 밤을 새가며 위성을 조립했다. 드디어 마감을 하루 놔두고 이제 곧 위성을 완성해 넘길 수 있게 되었을 때, 러시아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발사 연기.”
프랑스 파리에서 호준과 나는 “소유즈 로켓이 무기한 발사 연기” 되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해 세느 강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해는 지고 컴컴한 세느강에 서치라이트를 단 유람선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호준이 나에게 물었다. “감독님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온 송호준. 부품들을 정리하고 계절이 바뀌어갈 때 미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화성착륙에 성공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연락이 왔다. “2013년 4월 19일 소유즈 로켓 발사 확정.”
"<망원동 인공위성>을 끝내야 한다"
소유즈 로켓 무기한 발사 연기로 호준의 프로젝트가 오리무중에 빠졌을 때, 나 역시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 역시 찍고자 하는 의욕도 예전 같지 않고, 생활을 위해 일도 해야 했고,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망원동 인공위성>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포기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 너무 익숙하게 느껴왔던 감각이었다.
<망원동 인공위성>을 제작하기 전에 몇 편의 영화가 엎어졌던, 제작이 중단되었던 기억들이 당시에 계속 떠올랐다. 시작했던 일이 끝맺음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한 죄책감, 패배감으로 퍼져있는 이 현실을 나도 부인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중압감으로 시간이 흐르고 결국 발사일이 다가왔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나는 결국 가지 못했다. 대신 카메라를 호준과 동희에게 맡겼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바이코누르에 가서 카메라를 들었다면 지금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찍히지는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희망은 모르겠지만 위안이 되는 영화였으면 한다"
송호준은 인공위성을 왜 쏘려고 했을까?
정말로 국가와 개인, 프로와 아마추어, 기술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고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쏜다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을 거고, 로켓 발사 현장을 보고 싶었을 거고, 우주에다가 무언가를 띄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공위성을 그의 ‘꿈’이라며 부추긴 미디어와 모든 사람들… 모든 것이, 아니 이 모든 것보다 더 복잡하게 많은 이유가 그가 인공위성을 5년 동안 작업하게 한 원동력이자 원흉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복잡한 욕망과 그것을 부추기는 무언가에 떠밀려 수없이 새웠던 밤과 무수히 많은 스트레스, 그리고 날아가버린 시간들,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호준은 마침내 자신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띄워 보냈다.
그리고 1년도 더 지난 지금, 난 영화를 완성했고 이제 관객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려 한다. 꿈과 도전을 부추기고 실용적 가치와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지금, 영화 속 동희의 말처럼 “희망은 모르겠지만 위안이 되는” 영화였으면 한다. 나의 시선에 동의하는 관객들, 나의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 관객들 모두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