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한 여자는 일을 하러 핸드백 공장에 출근하고 한 남자는 집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여자가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남자가 장을 보러 다니거나 빨래를 너는 모습들과 교차하여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남자는 어디론가 외출을 하고 여자는 퇴근을 한다. 이 두 명이 동일한 집을 공유하는 부부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시점은 남자가 외출하며 숨겨놓은 집 열쇠를 여자가 찾아 들어 집 문을 열면서부터다. 영화는 다시, 집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자와 인쇄소에 출근하여 밤 노동을 하는 남자의 모습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잠에서 깬 뒤 아침 요리를 시작하는 여자와 이제 막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남자, 이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이른 새벽의 조우는 그 어떤 멜로영화 속 남녀의 조우보다도 훨씬 큰 감동을 자아낸다. 거의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살고 있지만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들 부부는 오로지 음식이나 빨래, 선풍기, 커피 잔, 식기 등의 사물들을 매개로만 이어져 있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본주의 시대 노동의 물질적 조건과 영화 매체, 이미지와 사운드의 활용,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
(박진희_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more
(박진희_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