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꼬마 비랄의 세상 살아가는 법
가난한 맹인 부모와 살고 있는 세 살짜리 꼬마 비랄과 갓난 동생은 앞을 볼 수 있다. 불빛이 필요 없는 부모님과 살다 보니 아이들 또한 어둠에 익숙해져버렸다. 작고 어두운 방에서 ‘보기, 안보기’라는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일년 이상 관찰하면서 사랑과 즐거움, 잔혹함, 희망 등을 공유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경이롭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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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맹인 부모와 살고 있는 세 살짜리 꼬마 비랄과 갓난 동생은 앞을 볼 수 있다. 불빛이 필요 없는 부모님과 살다 보니 아이들 또한 어둠에 익숙해져버렸다. 작고 어두운 방에서 ‘보기, 안보기’라는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일년 이상 관찰하면서 사랑과 즐거움, 잔혹함, 희망 등을 공유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경이롭게 포착했다.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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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ovie]more
맹인 부모와 살아가는 꼬마 비랄의 세상 살아가는 법!
강렬한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품은 성장 드라마
맹인이 주인공이거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비교적 많이 접할 수 있는 소재다. 그들의 삶이 정안인들 보다 드라마틱하고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주인공이 맹인을 부모로 둔 꼬마라고?! <비랄의 멋진 세상>은 맹인부모를 둔 아이 꼬마 비랄과 그의 갓난 동생 함자의 일상을 세밀하게 좇은 사려 깊은 다큐멘터리다.
<비랄의 멋진 세상>은 수라브 사랑기 감독이 우연히 병원에서 생후 8개월 된 갓난 비랄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비랄은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친 상태였는데, 그 아이의 부모가 모두 맹인인 점이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이후 감독은 이제 막 세 살이 된 비랄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면서 일년여 동안 비랄과 동생 함자, 그리고 맹인 부모의 일상을 지켜본다.
꼬마 비랄과 함자 형제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은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전혀 카메라를 의식할 수 없는 맹인인 비랄의 부모와 카메라를 놀이기구인양 인식하는 비랄와 함자의 모습이 유난히 천진하다. 사랑기 감독은 진정 인내심을 가지고 가족의 일상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비랄 가족의 일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개입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세살배기 개구장이 꼬마와 걷지 못하는 아이를 돌보기란 맹인 부모가 아니라도 녹록히 않은 법. 비랄 형제는 불을 켤 필요가 없는 부모와 함께 어두운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동생과 짓궂은 장난을 치고, 그러다 떨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의 행동과 사건이 부모의 영향력 밖에서 일어난다. 그렇다고 비랄의 부모가 비랄과 그의 동생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비랄 형제를 키워낸다. 때때로 일어나는 작은 사고가 생기지만, 비랄의 부모는 자신들의 장애를 탓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오히려 그들의 가난은 자신들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사업 실패 때문이라고 여긴다.
영화는 카메라를 모르는 어린아이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부부로 인해 강렬한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품어낸다. 관객은 시종일관 맹인 부부의 불편한 거동과 아이들의 위태로운 행동들에 마음을 조리며 안타까움을 발산한다. 하지만 이처럼 보이지 않은 부모와 보이는 아이들 사이의 묘한 긴장을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지만, 낯선 매혹을 선사한다.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인도 거리의 소음, 축제의 흥겨움은 <비랄의 멋진 세상>의 다채로운 감성을 부여하며, 일상의 크고 작은 소음들은 비랄 가족의 삶에 공기처럼 존재하며 이들을 지켜낸다. 어쩌면 그 소음들만이 앞이 보이지 않는 비랄의 부모가 세상을 느끼고, 자식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인 까닭이다. 비랄은 가난하지만 삶에 대한 긍정을 품은 따뜻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그렇게 건강하고 밝게 성장해간다. 그리고 비랄과 함자 형제는 학교에 입학하고 예쁜 여동생도 생긴다. 비랄에게 세상이 멋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