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말하지 못했던, 굳이 아무도 묻지 않았던 당신의 이야기
일흔셋 아버지가 남긴 일생의 첫 고백이 세상을 두드린다!
‘컴맹’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일 년간 둘째 딸인 ‘나’에게 마흔세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다시 열어본 메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족 모두에게 건넨 자신의 이야기였다. 6.25전쟁, 월남전, 88올림픽 그리고 아파트 재개발 광풍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질곡마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작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당신의 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 가족의 삶도 함께 흔들렸다. 당신의 삶은 나의 가족사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에게 한번도 묻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야 나는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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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셋 아버지가 남긴 일생의 첫 고백이 세상을 두드린다!
‘컴맹’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일 년간 둘째 딸인 ‘나’에게 마흔세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다시 열어본 메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족 모두에게 건넨 자신의 이야기였다. 6.25전쟁, 월남전, 88올림픽 그리고 아파트 재개발 광풍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질곡마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작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당신의 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 가족의 삶도 함께 흔들렸다. 당신의 삶은 나의 가족사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에게 한번도 묻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야 나는 아버지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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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OVIE 1]more
먼 길을 돌고 돌아 당신에게 닿았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당신에게 닿기를...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이야기
우리에겐 이미 참 많은 아버지들의 편지가 당도해 있다. 대개가 딸아, 아들아 이렇게 살아라, 를 주문하는 정약용 같은 저 유명한 조선시대 선비 아버지들의 편지이거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공과 처세의 길을 알려주는 유형의 가르침과 당부의 편지가 그것들이다. 혹자는 그것들을 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라고도 칭송하곤 한다. 2014년 4월 24일, 우리 앞에 당도할 편지는 이보다 위대하진 않지만 그 어떤 편지보다 특별하고 뭉클한 삶의 유산이다.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아버지의 위엄이나 인생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편지가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가족의 아버지이자 한 남자의 일생을 기록한 43통의 이메일. 일흔셋 아버지가 죽기 일 년 전부터 독수리 타법으로 딸에게 보낸 일생의 첫 고백이자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편지,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이 바로 그것이다. 2008년 컴맹이던 일흔셋 노인이 생의 끝자락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일생을 1년 동안 43통의 이메일로 딸에게 남겼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딸인 감독이 그 아버지의 이메일을 단초로 아버지가 살아온 73년의 역사를 거슬러 가며 당신이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그 안에서 그들 가족이 함께 겪었던 불운한 시간을 소환하고, 우리시대 부모들이 관통한 삶을 이해하고자 그 출발점에 서는 이야기이다.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혹은 그 세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6.25전쟁, 보릿고개, 유신시대를 모르는 자녀세대들에게 그저 우리 부모세대들이 되풀이 하던 변명 “그땐 그랬다.” “먹고 살기 바빴다.” 우리 부모세대들이 비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언제나 느슨하지만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들은 쉽게 면죄부를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메일>은 그런 식의 어설픈 이해와 화해의 시도가 아닌 좀 더 세밀하게 대한민국 사회의 특수성 안에서 홍성섭이란 개인의 삶을 추적하며, 가부장이란 권위를 획득했지만 소외되어온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라는 존재를 탐구한다. <아버지의 이메일> 속 화자이며 딸인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토록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고, 그 꿈이 좌절되었을 때 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는지 그 내밀한 진실에 닿았을 때의 전율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이메일>은 특별한 개인으로서의 아버지의 초상이 아닌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의 위엄을 부여받는다. 아버지 세대와의 소통에서 명확한 한계로 보여지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은 조금 늦게 당도한 아버지 세대의 참회이자, 자녀 세대가 그들에게 건네는 아직은 늦지 않은 따뜻한 응답이다.
[ABOUT MOVIE 2]
개인의 삶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조우하다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개인의 이야기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 故 홍성섭 씨가 작고하기 전, 일 년 동안 딸에게 보낸 43통의 이메일과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 개인의 사적 다큐멘터리로 출발했지만,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아버지의 삶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아온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부장제도의 모순과 현실을 사려 깊게 들여다 보며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금 ‘가부장’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죽을 각오로 열다섯 살에 홀로 3.8선을 넘어 북을 탈출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6.25전쟁을 겪고, 미군부대의 파지 장사로 젊은 시절 큰돈을 벌었지만 사기를 당해 완전히 망한 후 평생을 돈에 집착하며 떠돈다. 오직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독 광부를 자청했고, 미군부대의 기술자로 베트남 전쟁의 복판에 있었고,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는 건설 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래바람을 맞았다. KBS 이산가족 찾기 열풍 속에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누이들을 찾으려 여의도 광장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닌 실향민이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십여 년을 한 평 방에서 두문불출하다가 한때 88올림픽 자원봉사에 지원하여 외빈 초청 팀에서 활동했고, 공인중개사 1회로 합격한 후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가 사기를 당해 다시 망했으며, 트럭 운전수가 된 후 사고를 내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출옥 후에는 비정규 용역 노동자로 빌딩을 청소하며 쓰레기를 줍고 유리창을 닦았다. 그리고 종내 생의 마지막 꿈이었던 아파트 주민으로 사는 대신 남의 아파트를 지키는 초라하고 늙은 경비원이 되었다. 독서실 청소 노인 봉사로 늘그막을 소일하며 자신의 일생을 책망하던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호동 구옥 집 한 채를 아파트 재개발 광풍에서 지키려다 처절한 회한 속에 결국 술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했다. 한 개인의 역사가 이토록 드라마틱하게도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역사의 흐름과 닿아있다는 것이 공교롭지만 이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세대 모두가 관통한 시대사였다. 영화 속 ‘아버지’는 특정 인물이지만 곧 그는 대한민국의 아버지, 대한민국의 남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질곡의 역사 그 자체기도 했다. 그 굵직굵직한 질곡마다 아버지의 삶은 그 모든 순간에 흔적을 남기며 관통한다. 이렇듯 <아버지의 이메일>은 희망과 절망을 넘나든 대한민국의 근현대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낸 역사 다큐멘터리의 층위로도 읽어낼 수 있다. <아버지의 이메일> 속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그가 남긴 그 시절의 사진들과 가족들의 증언, 감독이 연출한 몇 개의 재연 시퀀스를 통해 구성된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소재지만 극영화로 연출의 내공을 쌓은 감독답게 홍재희 감독은 이 인상적인 재연씬들과 드라마틱한 사진들의 배치로 관객들의 마음에 방점을 찍어준다. 아버지가 남긴 두 개의 가방. 거기에는 아버지 개인의 역사와 그가 그토록 꿈꿨던 삶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버지가 평생토록 찍어온 수많은 증명사진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관객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개인의 꿈을 버리고, 비록 그 방식이 잘 못 되었을지언정 삶을 지탱하기 위해 분투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ABOUT MOVIE 3]
‘추억’의 소환이 아닌 ‘기억’의 알리바이를 찾아 나서다
용서 보다 이해, 그리고 치유의 이야기
프로이트는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는 상상은 지나치게 이상화된 부모상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환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상상 혹은 인식이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가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결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지라도 자신이 스스로의 가족을 부정하는 상상 혹은 인식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버지의 이메일>의 홍재희 감독과 그녀의 식구들은 어렵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 놓는다. 자기 경험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곧 거리를 의미하고 거리는 이내 객관화의 과정을 거쳐 이해를 가져다 준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명쾌할지언정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 故 홍성섭 씨의 실제 이야기이자 감독 본인의 이야기인 <아버지의 이메일>은 드라마틱한 개인사를 통해 결국 개인의 상처, 복잡한 가족사, 나아가 시대사가 한데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가 영화화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바로 ‘거리’가 있다. <아버지의 이메일>이 여느 다큐멘터리와 구분되는 특이성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닌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취하고 있는 형식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담긴 이야기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열린 상태로 놓아두는 태도에 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홍재희 감독의 전언처럼 영화는 이미 고인이 된, 화해하기에 늦어버린 아버지와 가족들간의 관계를 집요하리만큼 추적한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나 한 개인에 대한 앎. 그리고 그 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 앎과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해짐을 영화는 피력한다. 결국 영화는 쉽사리 누군가를 용서하지도 그 용서의 차원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이지도 않는다. 홍재희 감독은 가장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버지가 남긴 삶의 흔적을 통해 그의 생의 알리바이를 찾아 그곳에 아직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기억해낸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의 이메일>의 가장 빛나는 미덕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족 폭력과 자신이 받은 상처로만 남아 있는 큰딸과 아버지랑 대화를 나눈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도 안 된다는 막내아들, 정이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는 엄마까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은 포장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증언한다. 결국 영화 속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故 홍성섭 씨와 홍재희 감독의 가족들 또한 영화를 빌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행하는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이메일>은 감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아픈 상처를 떠올리는 기억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 모두를 위한 영화가 된다. 강요된 이해, 강요된 깨달음, 강요된 용서가 아닌 ‘용서’를 향하는 어렵고도 두려운 작은 걸음걸음에 관한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묘하게 겹쳐지고 투영되는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와 가만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진정성으로 말미암아 가족이란 존재로 상처 받은 또 다른 개인들, 혹은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이메일>은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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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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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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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이야기보따리영화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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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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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
http://blog.naver.com/fathersemail
수상내역
- [제38회 서울 독립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
- [제38회 서울 독립 영화제] 장편경쟁부문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