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 선생은 YH사건을 “유신체제의 폭력 앞에서 하나의 명작”이라고 표현했다. 일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던 그녀들이 노동자의 위치를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며, 주장하기까지의 과정은 YH사건이 미친 영향들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선배들의 입으로 담담히 풀어나가는 70년대의 노동조합, 한없는 순수의 이야기.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단결을 외치던 김경숙. 그녀는 신민당사에서 주검이 되어 나왔고, 열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열사일 뿐이었을까. 한줄 한 줄 그녀가 열심히 TJ 내려간 일기로 주변 지인들의 추억으로 풀어내는 인간 김경숙. 어린 가장으로 초등학교 6학년부터 영세한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던 그녀에게 YH는 꿈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다. YH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노동조합이 있었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야학이 있었고, 고향조차 못 가는 가난을 위로해 주는 벗들이 있었다. 22살 꽃다운 누이의 기록. 그리고 30년. 대학 졸업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지상의 스튜어디스’가 된 오미선. 자신이 이렇게 노동운동을 하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던 그녀는 현재 KTX승무원 노조 지부장이다. KTX승무원들의 투쟁은 3년이 넘어가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투쟁 자체에 익숙해져서 투쟁이 생활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노동운동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YH 선배들을 보면, 자신의 30년 후를 떠올린다. 과연 30년 후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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