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의학, 철학… 그리고 신학까지도… 나는 열정을 다해 공부했다.
하지만 지금 얻은 것 하나 없는 바보가 되었다!’
진리추구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은 박사 파우스트. 인간의 근원을 파악하겠다며 인체 해부도 마다 않지만, 그가 얻은 것은 극심한 생활고뿐이다. 어느 날 돈을 마련하고자 전당포를 비롯한 마을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던 중, 파우스트는 신비한 처녀 마가레테와 맞닥뜨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어떡하면 마가레테를 가질 수 있지?”
“여기 서명만 하면 그녀는 당신 것이오!”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에게 유혹의 순간이 찾아온다. 대금업자 뮐러가 그에게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 테니 영혼을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파우스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안을 수락하는데… 당신이라면 이 치명적인 유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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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얻은 것 하나 없는 바보가 되었다!’
진리추구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은 박사 파우스트. 인간의 근원을 파악하겠다며 인체 해부도 마다 않지만, 그가 얻은 것은 극심한 생활고뿐이다. 어느 날 돈을 마련하고자 전당포를 비롯한 마을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던 중, 파우스트는 신비한 처녀 마가레테와 맞닥뜨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어떡하면 마가레테를 가질 수 있지?”
“여기 서명만 하면 그녀는 당신 것이오!”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에게 유혹의 순간이 찾아온다. 대금업자 뮐러가 그에게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 테니 영혼을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파우스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안을 수락하는데… 당신이라면 이 치명적인 유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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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MOVIE 1more
스크린에 쓴 불멸의 고전
요한 폰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16세기 독일에는 파우스트 전설이 유행했다. 학식과 재주가 뛰어난 한 남자가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자 악마와 계약하고, 파멸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스토리는 중세시대에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유혹에 빠진 대가로서의 징벌’을 강조하며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는 데 주로 활용됐다. 반면 이 전설에는 주인공이 ‘학문의 수단을 이용해 세상의 근본이치를 파헤친다’는 새로운 모티프가 등장한다. 파우스트는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앞서가는’ 인물이었다. 명성이나 재물보다 인식을 중요시하고 운명에 따르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이자, 신과 내세만을 추구하는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현세의 가치를 인식하는 근대적 인간이었던 것이다.
종교적•사회적 규범과 인습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新인간상은 18세기에 이르러 여러 문인들에 의해 다양하게 형상화되었다. 다섯 살 때부터 파우스트 인형극을 접한 괴테도 1772년 집필을 시작해 1832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마지막 장면을 수정하며, <파우스트> 완성에 평생을 바쳤다. ‘독일의 문화적 정신성의 총체’라 일컬어지는 이 거인巨人은 ‘인간을 시대 상황 안에서 묘사하는 것’을 주된 사명이라 여기며, 파우스트를 숭고한 삶과 세속적 쾌락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순된 존재로 그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 괴테의 히어로가 겪는 필연적 운명이다.
계몽주의 사상과 인본주의가 등장한 이래로, 유럽을 하나의 전체로서 기능하게 했던 기독교는 그 권위를 잃었다. 개인은 사유의 자유와 모든 사회적 규범과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동시에 기존 전통과 제도의 와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요컨대 현대사회는 하이네Heinrich Heine가 언급한 바와 같이, 결집되지 않은 이질적 집합체인 ‘고아원’이었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된 고아원처럼 결집되지 않은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인간은 숱한 실패와 갈등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괴테가 그의 ‘미지의 바다를 향한 모험담’에 ‘한 편의 비극’이라는 부제를 덧붙인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 영원히 열망하는 인간의 드라마는 어떻게 결론 지어질까. 1부에서 학문이나 사랑과 같은 개인적 진리추구에 몰두하던 파우스트는 2부에서 이상적 공동체 건설을 도모하는 지도자로 변모하는데, 그가 사업확장을 위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도덕성과 야수성을 동시에 지닌, 우리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주인공이니만큼 그의 인생에도 분명한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다. 소쿠로프 감독은 살기 좋은 이상향 건설이라는 목적실현을 위해 점차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바로 이 ‘비극적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사람을 도취시키는 권력의 속성과 그로 인한 타락을 묘사하며 그는 ‘21세기형 파우스트’를 창조했다.
ABOUT THE MOVIE 2
권력 4부작의 완결편
영원히 갈구하는 인간의 드라마
영화 <파우스트>는 <몰로흐Moloch>, <타우르스Taurus>, <더 선The Sun>에 이은 ‘권력에 대한 4부작’의 완결편이다.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은 독재자와 권력자를 다룬 4부작을 기획하여 1980년 작업에 착수했고, 히틀러를 주인공으로 한 <몰로흐>(1999), 레닌을 주인공으로 한 <타우르스>(2001), 히로히토를 주인공으로 한 <더 선>(2005)을 발표한 데 이어, 작년 <파우스트>(2011)를 선보이며 무려 30년에 이르는 대장정을 끝마쳤다. 이토록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은 앞의 세 작품이 방대한 양의 역사적 연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더 선>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 정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역사가, 정치가, 작가, 황제의 인척들을 만났고 자료조사에만 10년을 투자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집필에 버금가는 필사必死의 작업인 것이다.
<몰로흐>, <타우르스>, <더 선>은 공통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의 우울한 말로를 그리고 있다. 권력을 맹렬히 추구하여 한 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지도자들은 어느새 늙고 쇠약해져 지배체제의 종말을 목도한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했던 그들은 자신도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쿠로프는 산 속 은신처에 피신한 히틀러, 몸져누운 환자 레닌, 일본의 전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히로히토를 묘사하며 권력의 자기파괴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들과 문학적 주인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감독은 ‘속기 쉬운 말에 현혹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병적으로, 불행하게 보낸 것’이라고 답한다. 괴테가 남긴 “불행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경구는 4부작을 관통하면서, 일상의 불행으로 시작된 인간의 욕망이 자신과 주변 세계에 고통과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재앙의 모습으로 변주되며, <파우스트>에서는 실제 등장인물의 대사로 반복되어 인용되기도 한다. 4부작의 주인공들은 모두 주변인들의 욕망, 자신의 나약함 혹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권력을 추구한 이상주의자라는 것이다. 다만 앞의 세 영화가 권력의 종말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우스트>는 주인공이 권력에 매혹되는 과정에 치중한 것이 그 차이점이다. 즉, 파우스트가 악마를 처단(?)하고 홀로 길을 떠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권력의 획득’을 향한 서막인 셈이다.
한편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괴테의 어록과 문학작품에서 상당부분을 인용해 대사에 녹여 넣었는데, 특히 주인공 파우스트와 조수 바그너가 주고 받는 말에서 독일 문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극의 구성과 맥락을 뒤섞고 때론 산발적으로 흩어놓으며,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냈다. 형이상학적 갈망으로 악마와 계약했던 원작의 파우스트와 달리, 소쿠로프의 히어로는 극심한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전당포 주인’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아간다. 여기서 고르스키Peter Gorski 감독이나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감독의 작품에서 보았던,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고전적 악마는 사라지고, 아무 때나 방귀를 뀌는 배불뚝이 전당포 영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괴테의 작품의 경우, 이야기는 주인공 파우스트의 죽음으로 종결되는데, 파우스트는 죽기 직전 환상 속에서나마 조화와 균형을 이룬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확인한다. 이 장면은 해석에 따라 ‘인류 발전의 이상향’이 되거나 ‘현실에서 유리된 망상’으로 여겨졌다. 소쿠로프는 원작의 비극적 속성에 더욱 공감한 듯하다. 그는 ‘역사 발전이라는 허구적 믿음’에 차가운 시선을 견지하며 파우스트를 20세기 독재자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켰고, 마침내 권력 4부작을 완성했다.
ABOUT THE MOVIE 3
제6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유려한 영상미의, 회화를 닮은 영화
일찍이 <일식의 날들The Days Of Eclipse>(1998)과 <몰로흐>로 베를린과 칸의 간택(!)을 받은 바 있는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파우스트>로 2011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정작 감독 자신은 ‘영화제의 경쟁체제를 즐기지 않는다’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감독들이 젊은 영화인들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심사위원장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는 “당신을 영원히 바꾸는 영화가 있다. <파우스트>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라며 극찬했다.
이 러시아 명장은 시적 이미지, 철학적 주제와 롱 테이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 없지만, 영화사상 가장 긴 쇼트로 이루어진 그의 2002년 작 <러시아 방주Russian Ark>는 영화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어왔다. 영화는 18세기 초,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박물관인 에르미타주 궁을 배경으로 200년에 걸친 러시아역사를 시간 여행한다. HD카메라와 스테디캠을 활용하여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90분간 촬영한 끝에, 소쿠로프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쇼트만으로 이루어진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이는 200명의 배우 및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어, 겨울 궁전의 서른 세 개 방에서 촬영된, 경이로운 기술적 성취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 김기덕 감독이 영화 <실제상황> 촬영 시 One Scene One Cut을 시도했다.)
<파우스트>에 이어진 영화적 실험은 사뭇 충격적이다. 필름손상 혹은 영사상의 실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울어지거나 일그러진 화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나몰픽 렌즈를 사용해 얻어진 효과인데, 소쿠로프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2009), <아멜리에>(2001), <인게이지먼트>(2004)로 아카데미에 세 번이나 노미네이트된 바 있는 촬영감독 브루노 델보넬과 손잡아, 몽환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창출해냈다. 그는 렌즈의 앞과 옆에 유리와 거울을 부착시켜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한편, 존재의 질감과 색채까지 변형시켰고, 중간 톤의 색조와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활용해 비현실적인 느낌을 배가시켰다. 독특한 효과가 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영화의 예술적 깊이가 더해진 것이다. 현대영화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1:1.33의 화면비율도 인상적이다. 스크린을 보고 있자면 마치 몇 세기 전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로써 우리가 괴테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평론가들은 <파우스트>가 지닌 독특한 영상미에서 회화의 영향을 찾기도 한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화가는 16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주자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이다. 그는 주로 종교와 인간의 사소한 일상을 주제로 그림 그렸는데,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색채가 영화에 드러난 명암의 부드러운 대비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후반부 숲 속 씬과 관련해서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를 연상한다. 멜랑콜리한 정서,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은 영화의 초현실적 분위기와 제법 닮았다. 한편, 마가레테의 매혹적인 클로즈업 씬에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우리에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신비로고 매혹적인 화풍의 대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혹자는 요하네스 자일러의 얼굴에서 강렬한 성격묘사가 두드러진 아드리안 브라우버르Adriaen Brouwer의 풍속화를 발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