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인형을 통해 미국의 사회사를 훑어내린,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다큐멘터리이다. 195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마텔사가 만들어낸 바비 인형은 대중문화의 스타로 군림했으며,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변신을 거듭해왔다. 이 다큐멘터리의 통찰에 따르면, 바비는 더이상 소녀들이 가지고 노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바비는 어느새 여성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지주가 돼버렸다. (바비 인형의 제국)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인형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에다, 앞으로 4만년이 흐르면 바비 인형이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입구가 될 수 있음을 덧붙인다. 한갓 상품, 장난감으로 태어났지만 바비는 "미국의 연인"이 됐다. 2천개가 넘는 바비 클럽이 존재할 만큼 미국에서 바비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비 예찬론자, 바비 몸매에 강박증을 가졌던 전직 모델, 바비 수집가, 바비를 가지고 노는 8살짜리 소녀 등을 인터뷰해 바비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다양한 시각을 생생하게 전한다.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바비의 모양새도 가지가지여서 "미국에는 사람수보다 더 많은 바비 인형이 있다"고 한다. 바비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넘었다. 얼굴 화장조차 유행의 물결을 탔다. 최소의 "직업여성" 바비가 등장한 것은 63년으로 스튜어디스가 처음이었다. 이후 여성과 흑인의 사회적 지위가 신장함에 따라 흑인 바비, 대통령 바비도 등장했다. 바비 인형은 여성들을 억압하기도 한다. 바비의 얼굴선, 아름다운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는 성형수술을 받고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의 목표이다. "내가 얼마나 총명한지는 상관하지 않아. 바비처럼 보이기 위해서 모든 걸 다 버릴 수도 있어"라는 인용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요컨대 바비는 육체에 대한 여성의 판타지를 요약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우선 소재의 참신함에서 찾을 수 있다. 툴라 아셀라니즈 감독은 여성이라면 한두번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흔하고 일상적인 사물로 여성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그는 3살 때부터 바비 인형과 놀았던 경험을 토대로 조사기간 6년과 제작기간 2년의 작업 끝에 "11과1/2인치짜리 미국 연인에 관한 비공식적 자서전"라는 부제가 달린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씨네21 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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