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은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간다. 바쁜 엄마는 센터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버스만 태워 보내는데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이 행방불명된다. 센터에도 왕따는 있다. 광수는 일을 잘 못하고 기분이 나쁘면 자해를 하기 때문에 다른 회원들이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수는 5천원을 잃어버리고 범인은 경수로 밝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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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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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악장애인재활센터에 가기 전까진 장애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처음 접한 다큐멘터리는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작품들이었고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것은 <22일간의 고백>이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에 정치활동가를 꿈꾸었던 것처럼 난 영상활동가이기를 바랬다.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것은 나의 카메라가 무기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함 때문이었다.more
99년 10월, 관악장애인센터의 정신지체인들을 만나면서 난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 그들은 나를 반겨주었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세상에 치여있던 시간들이었나보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내 친한 친구에게, 잡담하듯 내가 겪은 일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첫 작업은 평생의 화두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오랜 주눅을 잠시 잊고, '난 그냥 잡담을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관악장애인재활센터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난 지금, 센터에서 살고 있다.
산다는 것은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분명한 마디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10살의 나, 20살의 나, 30살의 나. 그 모든 시간들을, 그리고 시간 속의 변화들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 난, 사는 건 그저 길모퉁이를 걷는 것처럼 미지의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홍보물 때문에 센터를 찾고, 우리 회원들을 만나고, 영화를 만들고, 그러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그리고 남편이 장애인목회를 계획하는 성직자이듯 난 장애인영화를 만드는 영상활동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