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한 손은 검은색 가죽가방의 벌어진 틈을 거머쥐고
나머지 손으론 핸드폰을 쥔 채 울먹이며 간증하는 그녀,
"하지만 언니... 무엇인가가 우리를 사로잡아줘야만 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관리 업무를 맡은 산업의학 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되어있다. 이 영화는 위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1년 여간 촬영한 기록물에서 출발한다.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
마네킹 공장의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루 종일 분진과 소음에 시달리는 그의 몸은 의사의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쇠해 있다. 가장 좋은 치료약은 휴식임을 알고 있지만, 의사도, 환자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네트워크 시스템을 관리 해주는 거죠.
만지고 IP 조절 해주고… 뭐 그게 단데?
전 우주를 연결한다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서버는 용산의 어느 구석진 사무실에서 돌아간다. 24시간 빈틈없는 초고속 서비스를 위해 작고 네모진 그 곳에서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은, 컵라면과 채팅창을 친구 삼아 디지털 세계를 ‘관리’한다.
“하드가 인식이 안 되더라구요,
안에 있는 데이터들… 다시 살릴 수가 있을까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수많은 기억들은 하드디스크와 메모리카드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한 일상의 순간들을 SNS를 통해 타인과 공유하고, 때로는 경쟁적으로 프로페셔널한 장비들을 구입하는 사람들. ‘글로벌’하고 ‘디지털’해지는 세계에 열광할수록 현실의 풍경은 스산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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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은 검은색 가죽가방의 벌어진 틈을 거머쥐고
나머지 손으론 핸드폰을 쥔 채 울먹이며 간증하는 그녀,
"하지만 언니... 무엇인가가 우리를 사로잡아줘야만 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관리 업무를 맡은 산업의학 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되어있다. 이 영화는 위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1년 여간 촬영한 기록물에서 출발한다.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
마네킹 공장의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루 종일 분진과 소음에 시달리는 그의 몸은 의사의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쇠해 있다. 가장 좋은 치료약은 휴식임을 알고 있지만, 의사도, 환자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네트워크 시스템을 관리 해주는 거죠.
만지고 IP 조절 해주고… 뭐 그게 단데?
전 우주를 연결한다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서버는 용산의 어느 구석진 사무실에서 돌아간다. 24시간 빈틈없는 초고속 서비스를 위해 작고 네모진 그 곳에서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은, 컵라면과 채팅창을 친구 삼아 디지털 세계를 ‘관리’한다.
“하드가 인식이 안 되더라구요,
안에 있는 데이터들… 다시 살릴 수가 있을까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수많은 기억들은 하드디스크와 메모리카드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한 일상의 순간들을 SNS를 통해 타인과 공유하고, 때로는 경쟁적으로 프로페셔널한 장비들을 구입하는 사람들. ‘글로벌’하고 ‘디지털’해지는 세계에 열광할수록 현실의 풍경은 스산해질 따름이다.
동영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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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01more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새로운 다큐를 보라!
기존의 관습을 거부한 용기 있는 이단 선언이자
한국 독립다큐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문제작
<보라>는 산업재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피아노 공장, 마네킹 공장, 채석장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통해 노동환경과 산업재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하지만 <보라>는 단순히 그 실태를 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명시되어 있으나 인정 받을 수 없는 구조, 인체에 피해를 주는 유해물임이 분명하나 그 역시 인정되지 않는 이상한 법적 체계,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육체 노동이 중심이 되는 현장에서 나아가 하드 디스크, 인터넷 서버 등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향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시스템들을 ‘관리’하는 사람들, 매우 거대하고 치밀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술하고 빈약한 방식으로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사회.
보이지 않는 구조와 시스템의 이면을 보게하는 <보라>의 이러한 태도는 그 자체로 매우 신선하다. 기존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이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의 열악한 노동, 인권 등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 일반적이라면, <보라>는 어떠한 입장이나 태도를 취하지 않지만, 그를 통해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현상의 이면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저 묵묵하고 집요하게 관찰함으로써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들을 드러내고, 그를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보라>를 특별하게 만드는 첫번째 지점이다.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실험 다큐멘터리, 파격 다큐멘터리 등의 수식어를 얻었을 만큼 <보라>는 다양한 형식적 실험들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를 철저히 배제하고, 영상과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불일치 시키는 등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낯선 자극들을 전하는 것. 이는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를 단순한 ‘사회 드라마’가 아닌 ‘영화’의 차원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이자,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자각을 끊임없이 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의 안과 밖을 분리,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재해석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반추하게 하는 기능까지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안과 밖에서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는 <보라>를 두고, “독립 다큐멘터리의 존재방식에서 벗어난, 용기있는 이단 선언”, “한국 다큐멘터리의 낯선 미학적 영역을 답사한 모험적인 작품” 등 전문가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Focus 02
시퍼렇게 멍든 이 세계를 보라!
초자본주의, 글로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전하는 무심한 위로
흔히 보라색은 ‘통증’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에서 따온 제목처럼 <보라>의 세계는 그 자체로 거대한 통증의 세계다. 거대한 소음과 유해물질이 가득한 공장에서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이어가는 노동자들, 일당 5,000원에 하루 종일을 쪼그리고 앉아 딸기를 따는 소작농들은 각종 질병에 고통스러워 한다. 이는 하드 디스크를 복구하고, 인터넷 서버를 관리하는 이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의 장비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거하는 공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들을 관리하며 육신이 쇠해가는 삶의 모습은 별다를 것이 없다. 이강현 감독의 관심은 이러한 노동의 현장에서 시작하여 고통의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는 ‘그 외의 시간’들에 도달한다. 특히 그는 어느샌가 전국민적 취미로 발전한 ‘사진 찍기’가 무엇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도큐멘트화 하는 사진을 찍고 블로그 등에 올려 타인과 소통하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프로페셔널한 장비를 끊임없이 구입하며 전문적인 사진을 찍으려는 일종의 ‘집착’의 양상까지, 무언가 자신의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그래서 결국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아무리 그러한 노력을 해도 그것이 영화의 전반부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삶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자기 삶으로부터의 소외는 그대로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후반에서 묘사되는 풍경들은 안타깝고 무기력한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화된 사진이 담긴 하드디스크(사람들의 열망과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쇳덩어리!) 를 수리하는 곳의 풍경은, 스산하다.”
- 감독의 변 중에서
육신 혹은 정신이 거하는 네트워크 망 속에 촘촘히 엮여있는 현대인의 삶, 첨단의 카메라, 컴퓨터 장비들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도큐멘트화 하려 할 수록 세계는 점점 멀어지고 그 속의 나는 외로워만지는 풍경… 강도 높은 육체노동, 질병과 재해는 어떤 이들에게는 ‘나와는 상관 없는’ 매우 특수한 국면일지 모른다. <보라>는 바로 그 특수함이 극도로 평범한 일상 속에 배치되어 있는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삶’이라 통칭되는 어떤 ‘보편적인 삶의 결’을 마주하게 한다. 각자가 살아가는 모양은 모두 다를지언정, ‘사는 게 내 마음만은 같지 않더라’는 허망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맨 얼굴을 맞닥뜨리는 순간 느끼게 되는 묘한 안도감. 어떠한 주장이나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 없이 시종일관 건조하기만 한 이 불친절한 영화를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되는 낯선 경험은 오직 <보라>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Focus 03
세계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문제적 다큐를 보라!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상 수상에 이어
아시아, 유럽 대륙까지 전세계가 <보라>에 주목하다!
지난 해 말, 서울독립영화제에서의 첫 상영과 동시에 단 번에 화제작으로 떠오른 <보라>. 그 후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포럼, 시네마디지털서울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물론,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마르세유 국제영화제에 국제 경쟁작으로 선정되었고, 11월 극장 개봉 즈음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 영화제, 필리핀의 시네마닐라 국제영화제 상영도 예정되어 있는 상황. 이 외에도 세계의 각지에서 <보라>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