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달라요?
비정규직 사위는 절대 안돼!그 놈이 바로 그 놈!?
대한민국 최대의 노동자들이 있는 공장. 대한민국 최대의 민주노동조합이 있는 곳.
이곳에서 대의원 대표로 안정적이고 잘나가는 정규직 노동자 허대수! 그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 그에게 최근에 살짝 마음이 불편한 것이 생겼다. 회사가 20명 인원감축하는데 대의원 그가 대표 자격으로 잠정합의를 했는데, 그 20명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당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비정규직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특히 같은 라인의 젊은 비정규직 박세희의 눈길은 원망과 조롱이 섞인듯해서 기분이 몹시 상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자신이 비정규직 대의원도 아니고....애초에 비정규직은 이럴 때 써먹는거 아닌가. 이렇게 애써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동딸이 어느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들떠서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서 말하는 딸에게 섭섭하기도 하고 은근히 질투도 나지만, 아버지로서 다 큰 딸이 결혼을 하겠다는데 축하 해줄 일이다.
그런데 허대수! 딸이 결혼을 하겠다는 남자를 우연하게 보는 순간 뒤로 넘어간다.
그 놈이 바로 그 그놈 이었던 것이다......!!!
동영상 (1)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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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의 첫 번째 극영화more
노동자뉴스제작단은 1989년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평등세상을 위해서 투쟁하는 노동운동의 예술전문제작집단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1989년 3월 14일 <노동자뉴스 제1호>(72분)를 노동자전국회의에서 처음으로 상영한 이래 현재까지 11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20여 년간 일 년에 평균 5편이 넘는 중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작품들은 노뉴단에게 언제나 같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제대로 내용을 담았어?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날 보다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만난 노동자들과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나?
20년간의 제작활동은 사실 이런 고민들을 조금씩 해결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극영화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제작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미 내딛었고 그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노뉴단은 자신의 노동자대중과 만나는 새로운 방식의 창을 만든 것이다. 이 창문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노동자가 계속 있는한 그렇게 쉽게 닫히지 않을 것이다.
기획 장편독립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노동영화
1990년 제작된 독립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 <파업전야>는 운동적 필요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되어 당시 사회운동을 토대로 한 제작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졌다. <파업전야>는 제작방식과 작품성, 배급사례에서 1990년대 장편 독립영화 운동을 대표하는 성과이다. 그러나 파업전야를 제작했던 장산곶매가 1994년 해체되면서 제작과 배급의 노하우를 독립영화 진영에 남기지 못했다. 극영화 진영의 진보적인 역량의 재생산이 단절되고 말았다. 동시에 기획장편독립영화 운동도 사실상 단절되었다.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감독을 중심으로 한 개인 창작자들의 노력으로 그 개인의 예술적 성취가 가장 주요한 목표가 아니라,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집단적 이념적 목표를 갖고 기획제작 되었다. 이런 점에서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파업전야>가 남겨준 성과를 잇는 기획 장편독립영화의 부활이다.
다르지만 또 같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광우병만큼이나 무서운 비정규직의 꼬리표. 비정규직으로 사회 첫걸음을 내딛는 대다수 한국의 젊은이들의 미래는 밝지만 않다. 또 전체 노동자의 54%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현실은 잘만 피해가면 닥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확률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더 이상 그들의 문제가 아닌, 진정 우리의 문제로 다가설 수 없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영화는 탄생했다. 그래서 영화는 이 문제를 무겁고 어려운 문제로 그리기 보다 엉뚱하지만 다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가려 했다.
또한 한국 최대의 공장이라는 최대의 민주노동조합이라는 현대자동차를 배경으로 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노동자가 비정규직의 문제를 만나가며 겪는 좌충우돌의 모습을 다루었다.
노동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여느 영화들과 달리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을 통해 비정규직의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우리는 가족 속에서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있는가. 끊임없는 경쟁과 성공만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다르지만 또 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공감하고 함께 해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나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노동자가 영화제작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노동영화
영화 속에서는 진짜 노동자들의 일상을 볼 수도 있다.
비록 짧은 순간 스쳐지나가지만 카메라는 현대자동차 공장 안 곳곳을 담았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모습, 휴식시간에 족구하는 모습, 노동조합 사무실, 노동자들의 회의실 등 노동자들 일상생활 공간도 만나 볼 수 있다.
처음에 이 영화는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접해있는 방송으로 기획되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에 식당에 설치된 TV에서 방송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제작된 영화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족극이란 틀 속에 담았기에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다.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노동자들과 함께 만든 영화이다.
공동제작자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수년 전부터 노동조합 사내방송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노동자 영화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 했다.
또한 노동조합 사내방송을 책임지고 영상제작만을 전담하는 활동가인 영상위원들이 있어서 영화제작 실무를 함께 할 수 있다.
또 하나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공장 안에서 영화 촬영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현대자동차노동자들은 중요한 제작 주체로 영화제작 전반의 실무도 함께 했다.
노동조합 교육 선전실 간부, 영상실 간부들이 영화 기획 단계부터 제작부로써 함께 일했고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단역과 엑스트라의 대부분을 맡아서 출연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활동가 등 수 십 명의 현장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에 시나리오가 탄생할 수 있었고, 울산지역에서 파업투쟁 중인 중앙케이블 노동자들도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제작과정
2007년 5월, 노동자뉴스제작단은 극영화 한편을 만들 작심을 했다.
그것이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시작이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첫 번째 극영화 작업, 처음해보는 일이기에 낯설고 두렵기도 했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더 많고 더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함께, 또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 한 편의 노동영화를 완성해 내는 일.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할 보다 많은 관객이 노동영화를 보게 하는 일.
도전이다!
어려웠다. 실수도 많이 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할만 했다. 재밌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계속할 것이다.
왜냐면...
세상은 언제나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에 만만하지 않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의 삶은 더 팍팍해져만 간다.
노동자 시련의 시대, 20년 된 노동문화단체 노동자뉴스제작단의 노동자 좌절금지 프로젝트! 노동극영화 제작!
노동자의 이야기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한편의 소중한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영화를 만들고 향유하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새로운 노동문화를 만들어 내는 일.
진정 도전해볼만하지 않은가?
1. 프리프러덕션
1) 판짜기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첫 번째 극영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지금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비정규직! 고용불안? 건강?
어디서 찍을까?
공장 내부 촬영이 가능한 곳. 힘 쎈 노조가 있는 공장!
무슨 돈으로 만들까?
노뉴단이 지난 20년간 만든 모든 작품을 영상자료원에 팔아서 만든 목돈!
그걸로 안 되는데?
그럼 모자라는 제작비 일부를 보탤 수 있는 노조는?
대공장 노조!
그 중에서도 조합원에게 극영화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노조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현자노조와 함께 작업을 하려면 주인공은 현대자동차 노조 조합원으로.
이렇게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공동제작자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배경으로, 100% 울산 올로케로,
50대 정규직 대의원을 주인공으로,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번째 주인공으로,
비정규직과 고용불안, 건강문제를 다루는 영화로 판이 짜여졌다.
2) 시나리오.
일반 노동자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
심각한 주제들을 이야기하지만 밝고 따뜻한 영화,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스스로를 반성하는 영화,
비록 비정규직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영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감동이 있는 영화.
딱 여기까지만 하면 됐다면 시나리오 작업이 좀 더 행복했을까?
두 가지가 더 있었다.
하나는 저예산 영화.
예를 들어 야외 밤씬을 최대한 줄일 것. 왜? 조명 많이 칠 돈이 없으니까!
또는 컷 수를 최소화하라! 컷 많으면 촬영 일정 길어져 돈 많이 드니까!
둘은 현대자동차 노사 양측이 맺은 단협을 지키는 영화.
영화 제작에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안녕? 허대짜수짜님!>이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찍은 영화라서 겪은 일이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2007년 5월부터 9월까지 넉 달 동안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시작은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활동가 등 현장 노동자 인터뷰.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다음은 현대자동차 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시나리오 수정 작업.
수정은 두 가지였다.
우선, 쉬운 것. 현장을 제대로 그려냈나?
다음은 여러모로 힘들었던 것.
사측으로부터 촬영허가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인가?
현대자동차 노조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공장의 주인은 현대자동차 자본이다.
외부인이 공장에 출입하는 것조차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하는데 영화촬영이야 오죽할까?
애초에 그런 촬영을 가능하게 한 것이 현자노사 양측이 맺은 사내방송에 관한 단체협약이다.
사내방송?
현대자동차는 매일 점심시간에 사내방송을 내보내는데 매주 금요일은 노조가 만든 방송이 나가게 되어있다.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는 노조의 사내방송용 영화였다.
이 사내방송과 관련한 단협 중 하나가 노사 공히 사내방송을 통해 서로를 비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공평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측이 방송시설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때로 검열 장치가 된다.
2006년 초 노동조합이 공중파에서 이미 다 보도된 정몽구회장 비자금 사건을 사내방송에서 다루자 사측은 상호 비방금지 조항을 들어 방영을 거부했고 이 일로 노사가 충돌해 2006년 내내 양측의 사내방송이 모두 중단된 사례도 있다.
바로 그 상호비방금지 단협은 <안녕? 허대짜수짜님!>에도 걸림돌이 됐다.
노조는 촬영 교섭을 위해 사측에 시나리오를 공개해야했다.
사측은 현대자동차는 신차투입을 빌미로 인원감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우기며 시나리오 첫 장부터 트집을 잡았다.
사측 담당자는 노동자들이 회사에 대해 투쟁하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촬영허가를 내주냐며 자기 좀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사 협상에서 다른 부분은 다 지켜냈지만 사측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끝내 문제가 됐다.
심각했다.
촬영허가를 못 받으면 영화제작이 불가능하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느냐, 아니면 사측이 현장에서 무슨 내용을 찍는지는 모를 테니 사내방송용과 상영용 두 가지 버전을 촬영하느냐.
어렵게 내린 최종 결정은 시나리오 수정이었다.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촬영하기에는 제작비와 제작 역량 모두 역부족이다.
당시엔 감정을 앞세워 무모하게 덤비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며 내린 결론이었다.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제작비를 구하는 것보다, 제작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려운 일이란 걸 그땐 몰랐던 거다.
3) 스탭진 구성
일가친척, 친구, 선배, 후배, 아는 사람...
주변을 모두 동원해 영화 스탭을 찾아라.
거의 없다. 또는 있어도 다른 일 때문에 같이 할 여건이 안 된다.
영화과 학생들 또는 영화에 관심 있는 대학생을 찾아라.
방학도 아닌데 울산에서 한 달이나 있을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필름메이커스란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져라.
보수를 거의 못주면 지방에서 촬영하는 장편영화 스텝구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게 겨우 조감독과 연출부 4명, 제작부 2명을 구했다.
구원투수는 한국독립영화협회 PD분과장 김일권PD였다.
기술 스탭들을 소개해주었다.
분장팀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연줄로 울산에서 구했다.
하지만 미술감독, 의상, 소품은 끝내 구하지 못하고 연출부가 떼우기로 했다.
역시 떼우는덴 한계가 있다. 담당이 없으면 꼭 구멍이 난다.
4) 배우 섭외
처음에 세웠던 배우섭외의 원칙 :
주인공은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배우일 것
조연은 극단 한강이나 일터 같은 노동극을 해왔던 극단원에서 뽑을 것.
단역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로 할 것.
1. 주인공 허대수 역 섭외
노동운동진영에서 연극을 했거나 노동자뉴스제작단과 인연이 있는 속칭 ‘뜬’ 배우들에게 연락을 했다.
뜻이 좋아 참여하고는 싶으나 역시 일정이 맞지 않았다.
극단 한강의 어연선 대표의 소개로 파업전야에 출연했었고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왔던 배우 엄경환을 캐스팅했다.
2. 조연 섭외
촬영 일정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극단 한강과 일터의 자체 공연일정과 겹쳐 극단차원에서 참여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대거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부인과 딸역은 주연배우 엄경환이 김명화와 박서빈을 소개해 캐스팅했고
동기역은 <00씨의 하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 강방식을 캐스팅했다.
영조역의 홍석연은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제작 소식을 듣고 직접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3. 단역 섭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로 캐스팅한다는 원칙을 초과달성!
현자노조 신문에 단역배우 오디션 공고를 냈다.
딱 한명이 연락을 했다.
영화의 유일한 악역?인 세희반장 역할을 맡은 최상일 조합원이다.
나머지 조단역은 제작부장인 현대자동차 이병삼 영상위원과 제작실장 유홍렬 교선실장이 발로 뛰고 설득해 캐스팅했다.
모두 **명의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노조 대의원역을 맡은 최병승씨는 영화에 출연한 유일한 비정규직이다.
세희역은 감독과 알고 지내던 극단 백수광부 단원 윤혁중을 처음부터 캐스팅했다.
5) 촬영 준비
100% 울산 올로케.
첫째 이유는 영화의 반 이상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조단역 거의 전부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니까.
두번째 이유는 제작비.
한곳에서 모든 촬영을 하면 촬영 일정을 줄일 수 있고
울산에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기본적인 숙식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
우선 현대자동차 사측에 30여명의 제작진, 승용차부터 봉고들, 5톤 탑차들까지 차량들, 촬영 허가와 공장 출입 허가를 받고,
울산공장 인근에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김봉윤 가족의 아파트를 주인공 허대수의 집으로 섭외하고(이틀 동안 집을 통째로 빌려준 가족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노동조합의 요청에 흔쾌히 촬영협조를 해주신 울산씨티병원(병원 관계자분들 고맙습니다),
공장 정문 앞, 공장 전경이 보이는 건물 옥상을 내어준 학원 원장님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정상 가동되고 있는 대규모 자동차 공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것,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컨베어벨트 라인에까지 들어가 촬영할 수 있었던 것.
모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공동제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 울산 1공장 엔진서브라인 노동자들이 촬영에 적극 협조해주지 않았다면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지금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6) 고사
현자노조 대회의실에서 치러진 역사상 첫번째 고사는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촬영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고사였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간부, 활동가들, 영화 스탭, 배우들 모두 함께 모아놓으니 고사자리는 어째 서먹서먹했다.
노조간부들은 영화제작 고사를 지내는 게 처음이고,
영화스탭들은 노동조합 사무실이란데 들어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란 사람들을 만나기도 거의 처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2. 프러덕션 2008. 10. 8. ~ 10. 29.
2008년 10월 8일, 크랭크 인!
장소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사무실.
졸지에 노동조합 간부들은 자리에서 다 쫓겨나 엑스트라로 동원되는 신세가 됐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스탭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그곳이 공장에서 가장 조용한 촬영장이었다.
1) 소음과의 전쟁.
주야 맞교대, 잔업 특근으로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건물 안이든 밖이든, 사무실이든 현장이든, 공장 어디를 가든지 소음은 제작진을 따라 다녔다.
특히 조업 중인 공장 안에서 촬영할 때는 무전기 이어폰 소리가 들리지 않아 스탭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뛰어다니며 서로 악을 써가며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가장 심했던 곳은 엔진사업부 수동공정.
세희가 일하고 있는 영조를 찾아오는 장면이다.
동시녹음 소스를 도저히 쓸 수 없어 결국 그 씬 전체를 후시녹음으로 갔다.
심지어 소음 때문에 촬영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
실제 점심시간에 노동자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촬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동시녹음기사가 소음 때문에 대사 녹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점심시간이 끝난 후 텅 빈 식당에서 스탭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해 촬영했다.
그러니 현장 노동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제작진들은 특근이 없는 주말, 잔업이 없어 라인이 서는 4시간이 가장 반가웠다.
그때는 조용해질 테니까.
하지만 오산이었다.
일요일 잔뜩 기대하고 나간 공장에 청소용역업체 아줌마 아저씨들이 대거 나타났다. 공장 대청소란다.
아줌마들이 라인 안으로 기계 속으로 들락거릴 때마다 울려대는 경보장치 소리로 마치 소방차가 온 공장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제작부원들이 아무리 온 공장을 뛰어다니며 경보 해제 버튼을 눌러도 바지런한 청소아줌마 부대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터득한 깨달음, 공장촬영에서 소음은 운명이다!
2)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에서 촬영
주인공 허대수와 박세희가 일하는 곳, 1공장 엔진서브라인.
1공장에서 생산하는 소형차에 들어가는 엔진을 조립하는 라인이다.
1공장 17A반 노동자들은 평소와 똑같이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배우들을 끼워 넣고,
카메라, 조명기, 마이크는 노동자들과 부품 파레트 사이사이에 세우고
그 틈새를 스탭들이 왔다갔다한다.
노동자들이 평소 듣는 라디오 음악 방송도 녹음에 방해되니 꺼달라고 한다.
작업 중인 노동자들에겐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웃는 얼굴로 촬영에 협조해주셨다.
배우들의 어설픈 작업 동작도 고쳐주셨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봐 반장님 조장님은 사실 잔뜩 긴장하고 계시지만 겉으로 표현은 안하신다.
이런 고마운 분들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3) 노동자 배우 일정 조정
20명에 가까운 조단역, 대부분의 엑스트라가 모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노조위원장 선거와 촬영 일정이 겹쳐서 비정규직 활동가 1명만이 어렵게 짬을 내 배우로 출연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 배우들의 경우 일을 빠지고 촬영에 오려면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 회사로부터 근태처리를 받아야만 한다.
계획된 일정대로 촬영이 진행되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촬영 일정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변경되기 일쑤이다.
근태 날짜를 몇 번 씩이나 바꿔야 했던 노동자들도 있었다.
게다가 촬영은 예정된 시간을 몇 시간씩 넘겨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것이 다반사다.
그 바람에 개인적인 약속이나 공적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노동자도 많았다.
주말에는 빠짐없이 촬영을 했기에 휴일을 반납하고 촬영장에 나온 노동자 배우 또한 많았다.
워낙 공장이 넓고 복잡한 탓에 촬영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다 촬영에 늦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런 노동자 배우들 모두가 진지하게 연기에 임했다.
현실에 맞게 자신의 대사를 수정하고 연기에 관한 의견도 제시하고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대수의 동료로 출연한 김영섭과 의사역의 장규호는 직업배우 뺨치는 연기를 선보여 스탭도 놀랄지경이었다.
촬영은 이런 현장 노동자들 한명 한명의 노력을 <안녕? 허대짜수짜님!>에 더하는 과정이었다.
4) 날씨가 도와주다
17회 차의 촬영, 절반은 실내, 절반은 야외.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영화촬영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전날 기상 예보에 따라 촬영 일정을 바꿔가면서 용케 비를 피해갔다.
실제 야외촬영에서 비가 온 날은 딱 하루,
그것도 빗방울이 굵지 않고 간간이 그쳐주시기까지 해서 촬영을 강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새벽동이 터올 무렵.
제작진 모두 현대자동차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차가운 밤바람에 덜덜 떨었던 밤샘 촬영을 마지막으로 크랭크 업.
모두 17회차의 촬영을 계획했던 일정대로 마치는 뿌듯한 순간이었다.
3. 포스트프러덕션
아침까지 뒤풀이를 하고 몇 시간 쪽잠을 자고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사내방송에 내보내야 한다!
곧바로 후반 작업에 들어갔다.
1) 편집
파나소닉 HD카메라 베리캠으로 찍은 DVCPRO HD 테이프 26개를 편집을 위해 디지털 파일로 캡처 받는 일이 후반작업의 시작이었다.
가장 좋은 화질로 가장 안정적인 데이터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캡처를 받는 데만 1주일 이상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사내방송 일정에 맞추기 위해선 시간이 촉박했다.
짧은 시간에 좋은 품질을 얻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동원됐고, 3일 밤을 꼬박 새웠다.
매주 10분씩 현대자동차 노조방송에 내보내기 위한 1차 편집은 감독이 직접 했다.
편집작업을 위해서 600만원을 들여 HD편집용 애플 맥 컴퓨터를 마련했다.
한달 동안 총 4회의 노조방송 방영을 끝낸 후 본격적인 본편집에 들어갔다.
감독이 가편집을 토대로 편집자가 새로운 편집본을 만들었고 이를 다시 감독과 제작진이 함께 보면서 수정했다.
2) 작곡
<저 평등의 땅에> 등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온 작곡가 류형수.
그가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음악감독이다.
아주 오랫만에 두번째 영화음악 작업에 나섰다.
작곡은 프러덕션 단계에서 시작됐다.
영화 주제가를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이 직접 노래 부른다는 목표였다.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주제가 <한걸음씩>은 촬영 바로 전날밤 완성돼 악보와 mp3 녹음 파일이 메일로 보내져왔다.
배우들은 밤중에 악보를 인쇄해 들고 mp3를 들으며 노래연습을 했다.
촬영장에는 울산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가요 강사를 초빙해 엑스트라들에게 노래연습을 시켰다.
그래도 가사를 완전히 외우지 못해 합판에 크게 가사를 써서 세개나 카메라 뒤에서 들고 있었다.
그러나 완성본에서 현장녹음된 그 노래를 쓰지 못했다.
정말 아깝다.
작곡가 류형수는 <안녕? 허대짜수짜님!>을 위해 2곡의 노래와 15곡의 음악을 작곡했고 실제 영화에는 3곡의 노래와 15곡의 음악이 쓰였다.
3) 믹싱
대여료가 비싸지 않은 녹음실과 성심껏 독립영화 후반 녹음 작업을 해 줄 작업자 구하기.
우선 녹음실은 한독협 회원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녹음실.여러 사람들이 사용신청을 하는 곳이라 녹음실을 독점하고 쓸 수가 없다.
미디액트의 표용수기사가 소개해 준 후반 녹음 작업자 김강오씨.
직장이 쉬는 날이나 야간에밖에 일을 할 수 없다.
결국 일정이 길어졌다.
14회에 걸친 믹싱, 후시 녹음 작업에 두 달이 넘게 걸렸다.
4) 색보정
처음엔 전문 작업실에 맡기려고 했다.
비용이?
아무리 깍아도 400만원이 넘는다.
우리 편집 시스템으로 직접 하자!
그리고 3차에 걸쳐 색보정을 했다.
처음 1차는 편집자가 소개한 작업자가.
2차는 <그리고 필름&드라마>에 기술자문을 해주고 있는 한경훈 촬영감독이 소개한 작업자가.
그 결과물을 다시 3차로 수정해서 색보정을 끝냈다.
이렇게 2007년 연말 전에 완성하려고 계획했던 영화는 해를 넘겨 2008년 4월 완성되었다.